영화 <승리호> 스틸 컷

영화 <승리호> 스틸 컷 ⓒ 넷플릭스

 
톰 행크스에게 권좌를 내줬다. 폴란드 로맨틱 코미디와 스웨덴 스릴러가 그 뒤를 이었다. 넷플릭스의 '오늘의 톱10'을 바탕으로 전 세계 81개국 스트리밍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12일 톰 행크스의 웨스턴 드라마 <뉴스 오브 더 월드>가 공개와 함께 전 세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폴란드의 <스퀘어드 러브>와 스웨덴의 <레드 닷>이 2, 3위에 올랐고, 지난 5일 국내에 이어 6일 전 세계에 공개된 영화 <승리호>는 4위로 내려앉았다. <승리호>의 넷플릭스 1위 점령은 이렇게 '1주 천하'로 그쳤다. 영화 박스오피스로 따지면, 2021년 6주차(2월 둘째 주) 일주일 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 만족해야 할까, 아니면 대수롭지 않다 여기는 게 맞을까.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실제 국내 반응은 영화 본편만큼이나 흥미로웠다. 한국의 VFX 기술에 대한 감탄이나 '넷플릭스 1위 점령'이란 소식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이 다수인 반면 전문가들이나 언론은 평이 확실히 갈렸다.

심지어 유튜브 방송을 통해 "아무리 생각해도 각본을 조성희 감독님이 백퍼센트 진짜 다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정도(다)"란 한탄(?)을 내놓는 전문가까지 등장했다. 애초 호평이 다수였던 전문가 평점과 공개 후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 것이다.

국내 영화 유튜브 채널 조회 수만 비교해도 이런 반응의 양분은 확연하다. 주로 '한류' 콘텐츠나 해외 반응을 다루는 채널들이 내놓은 '승리호 넷플릭스 1위' 소식 관련 콘텐츠들을 보통 수십만 조회 수를 가뿐히 넘겼다. 반면 <승리호>를 독하고 박하게 평가한 리뷰 채널들은 호응이 떨어졌다.

봐야 할 것보다 보고 싶은 것에 끌리는 대중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반응의 온도차는 꽤나 흥미롭다. 넷플릭스는 약 2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승리호>의 판권을 310억에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떠들썩했던 <승리호> 공개 후 1주일, 승자는 누구였고 논쟁은 무엇을 남겼을까.

기념비적 VFX vs. <디워> 떠올라
 
 영화 <승리호> 스틸 컷

영화 <승리호> 스틸 컷 ⓒ 넷플릭스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시리즈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따라하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조성희 감독형 SF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걸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승리호> 조능연 프로듀서, <씨네21>과의 인터뷰 중)

이 같은 '진실'을 제작진도 모를 바 없었다. 이미 '마블 세대'가 출현한 지 오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물론 <토르>나 <어벤져스> 시리즈 또한 우주 공간으로 진출했다. 그 만큼 관객들의 눈높이가 한껏 높아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관객들이 어디 240억 제작비를 하나하나 감안하고 봐주겠는가. 그 만큼 VFX의 완성도는 <승리호>의 영화적 완성도를 가르는 가늠자이자 관객의 몰입을 높이는 밑그림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터.

이를 위해 <승리호>는 덱스터 스튜디오를 필두로 국내 10여개 VFX 업체, 1000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며 VFX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중 덱스터 스튜디오는 <승리호> 전체 VFX 분량 약 2000컷 중 70% 수준에 이르는 1304컷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덱스터'가 할리우드의 4분1 수준의 제작비로 소위 '가성비' 으뜸의 영상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덱스터 측은 "지난 2019년 중국에서 개봉한 흥행작 <유랑지구> 우주선과 우주정거장 등 난이도 높은 시퀀스 장면의 VFX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쌓은 기술적 노하우를 이번 <승리호>에 그대로 입혔다"고 설명한 바 있다.

덱스터는 그간 <미스터 고>를 시작으로 <신과 함께> 시리즈, <백두산> 등을 제작했고, <기생충>, <부산행>, <반도> 등에 참여했다. 넷플릭스 공개 직후 전 세계 각 대륙 2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비결 역시 이러한 국내 '가성비 갑' VFX 기술을 통한 안정적인 시각효과가 바탕이 됐을 터다. 사운드에 대한 불만족이나 스크린이 아닌 TV 모니터 등과 같은 협소한 관람환경 등에 대한 불만과 달리 VFX 자체에 대한 논란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결과, 250억으로 이 수준의 시각효과를 구현한 것이 도리어 크나큰 성과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됐다. 공개 전 일었던 우려가 한국 영화계가 보유한 자체 기술력에 대한 환호와 놀라움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넷플릭스 공개는 신의 한 수?

반면 그 시각효과 구현에 몰두하기 위해 영화의 다른 기본 요소를 등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난무했다. 개연성은 물론 장면 하나하나, 편집 굽이굽이를 지적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송중기가 꼭 울어야 했나'라는 볼멘소리부터 '꽃님이의 능력을 처음부터 발휘했다면 그 고생은 안 했을 것'이란 비판까지.

캐릭터는 물론 이야기 구성조차 너무 평면적이란 가혹한 평가가 이어졌다. 심지어 '<디워>와 다를 게 뭐냐'한 혹평까지 나왔다. K-신파나 한국식 가족주의는 우주로 간 240억 대작에도 빠질 수 없었냐는 지적도 손쉽게 볼 수 있는 리뷰들이었다. <늑대소년>, <명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통해 장르를 비틀고 '조성희 월드'를 창조하던 조 감독만의 장점이 실종됐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 중 <디워>와의 비교는 뼈아프다. 장르의 특성에 맞는 시각효과나 제작비 대비 우리 기술력을 앞세운 채 이야기 전개나 구성, 캐릭터 등의 독창성이나 연기, 편집 등 완성도의 근간을 무시해 버렸다는 평가는 결코 '개인의 취향'이나 관객의 안목에 따른 '호불호'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반면 '넷플릭스 1위'란 후폭풍(?)이 이어지면서 'K-컬쳐', 'K-무비'에 대한 응원이 더해졌다. 그 결과 <승리호>를 향한 의문부호들이, 논쟁의 양상이 훨씬 더 풍성해졌다. 우주 SF 장르를 감안해 내수용과 수출용 장르에 대한 평가는 달라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기본 요소의 부실함을 눈 감아줘도 되는지, 이를 감안해 <승리호>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행'을 선택한 건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일각에선 우주 청소노동자와 대안 가족 등의 화두를 건드린 <승리호>만의 도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넷플릭스 영화인지 드라마 시리즈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승리호>를 '클릭'한 이들의 만족도야말로 이 250억짜리 블록버스터에 대한 관객들의 최종심급이 될 터. 애초 <승리호>의 손익분기점은 극장 수익만 약 600만 명을 동원해야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간 한국 영화계의 '텐트폴' 영화들의 신파성이나 완성도에 대한 재조명까지 불러온 <승리호>는 그 600만 넘는 관객들을 만족시킬 만한 눈높이에 맞춰졌을 터다. 각종 논쟁과 비판을 뒤로하고, 과연 <승리호>가 코로나19 이전 여름 텐트폴 시장에 공개됐다면 어떤 결과를 맞았을까. 논쟁과 논란이 배가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정말 <승리호>의 넷플릭스 공개는 '신의 한 수'였을까.

승자는 누구인가
 
 영화 <승리호> 스틸 컷

영화 <승리호> 스틸 컷 ⓒ 넷플릭스

 
<승리호>에 앞서 <사냥의 시간>이 있었고, <콜>이 그 뒤를 이었다. 그렇지만 두 작품 모두 <승리호>보다 훨씬 제한된 국가에서 공개됐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승리호>가 넷플릭스가 진출한 모든 대륙에서 공개됐고, 28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고르게 선택을 받은 반면 특히 <콜>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소화됐다.

이런 수치가 가리키는 사실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승리호>를 통해 장사에 성공한 넷플릭스의 영향력이요, 둘은 그에 부응하는 'K-컬처'의 이름값이라 할 수 있다. 1주간 전 세계 2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게 전부가 아니다.

차트를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승리호>는 홍콩이나 대만과 같이 한국영화를 '애정'하는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국가들 외에도 리투아니아나 세르비아 등 '굳이 여기서 왜 한국영화를?'이란 의문을 동반하는 국가들에서도 지난 한 주 차트 1위를 달렸다.

넷플릭스가 최근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주력하는 대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승리호>가 유럽 전역과 남미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넷플릭스의 홍보 탓이어도, 우주 SF라는 보편적인 장르 덕택이어도, 완성도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그 결과치는 변치 않는다.

<기생충>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위상이 달라진 것도 큰 몫을 했을 것이요, 지난 1년 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K-드라마의 활약이 축적된 것 역시 무시 못 할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터다. 

결과적으로, <승리호>를 구매한 넥플릭스는 (알려진 금액 그대로라면) 60억이란 '푼돈'으로 짭짤하게 장사를 했고, <승리호> 역시 <킹덤> 시리즈나 <부산행>의 경우처럼 한국 장르영화의 다변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승리호> 이후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의 <더문>과 정우성이 제작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 등 SF 장르가 다수 대기 중이다.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 감독이 할리우드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는 등 우리 감독들과 스태프들,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소식도 하루가 멀다하고 들린다. <승리호>는 분명 그러한 새로운 물결의 출발점에 선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장르물만 놓고 보면, 마치 <킹덤>이, <부산행>이 그러했듯이.
승리호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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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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