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사령관' 이다영이 국대주전세터다운 활약을 해줘야 흥국생명은 비로소 '슈퍼팀'이 될 수 있다.

이다영 ⓒ 한국배구연맹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 '흥벤져스(흥국생명+어벤져스)'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배구판 슈퍼팀으로 기대를 모았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한순간에 와해될 위기에 놓였다.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올해의 흥국생명은 '배구 역사상 전대미문의 팀'으로 남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흥국생명은 현재 최악의 분위기에 놓여 있다. 팀의 주전이었던 쌍둥이 자매 이재영-이다영이 '불화설' '학폭논란' 등 여러 가지 구설수를 일으키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들은 현재 숙소를 떠나 자택에서 머물고 있는 상태이며 앞으로 언제 복귀하여 다시 경기를 나설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쌍둥이 자매로 인한 전력 공백과 각종 논란으로 팀 분위기에까지 치명타를 입은 흥국생명은 지난 11일 열린 한국도로공사와 경기에서 0-3(16-25, 12-25,14-25)으로 완패했다. 경기 시간은 고작 1시간 17분으로 시즌 최단 시간 패배였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인지 배구 여제 김연경을 비롯한 나머지 흥국생명 선수들도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17승 6패(승점 50)을 기록한 흥국생명은 초반 벌어놓은 승수 덕분에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는 있지만, 최근 시즌 첫 3연패에 빠지며 우승에 적신호가 켜졌다. 시즌 개막 전 해보나마나 우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팀이 이렇게 한순간에 몰락 위기까지 놓인 것도 프로스포츠에서 전례가 드문 일이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자유계약(FA) 신분을 얻은 이다영을 영입했고, 해외리그에서 활약한 김연경까지 11년 만의 국내 복귀를 결정하는 호재가 겹치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김연경과 쌍둥이 자매 모두 현재 여자배구계를 대표하는 간판 스타이자 국가대표팀에서도 핵심 전력이었기에 '리그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파장이 컸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흥벤져스는 이미 구성 단계부터 '절차적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던 팀이었다. 샐러리캡 제도가 정해져 있는 프로배구에서 벌써 FA로 이다영-이재영 등을 보유하게 된 흥국생명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김연경까지 영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연경과 흥국생명은 이를 '페이컷(고의적인 연봉삭감)'이라는 변칙적인 계약수단으로 해결했다.

해외무대에서 세계 최고 몸값인 약 20억 내외의 최고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던 김연경이 흥국생명의 유니폼을 입으며 합의한 금액은 놀랍게도 3억 5000만 원. 김연경은 자신의 국내 복귀로 인하여 동료 선수들이 피해를 받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본인은 1년 뒤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본선에 최상의 몸상태로 임하기 위해 연봉 삭감을 감수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흥국생명 측도 배구 여제로 불리던 김연경의 높은 인기를 내세워 '착한 페이컷' ' 슈퍼스타의 자기 희생'이라는 측면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선의'와는 별개로 수단만 놓고봤을 때, 엄연히 샐러리캡 제도의 기본 취지를 왜곡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꼼수'였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제도의 허점까지 이용하며 슈퍼팀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흥국생명이 추락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슈퍼팀의 부작용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팀스포츠에서 화려한 스타들만 모아놓는다고 위대한 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래는 한 팀에서 절대 모일 수 없었던 스타 선수들을 억지로 모아놓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올해의 흥국생명은 훌륭한 반면교사에 해당한다.

이다영이 지난해 연말부터 개인 SNS를 통하여 팀 선배와의 갈등을 암시하는 글을 계속해서 올리면서 불화설의 막이 올랐다. 개막 후 파죽의 연승행진을 이어가던 흥국생명은 이다영의 SNS 논란 이후 분위기가 급격히 흔들리면서 부진에 빠졌다. 흥국생명은 4라운드 들어 잠시 팀 분위기를 수습하는 듯했으나 논란의 근원지인 이다영의 경기력은 여전히 올라오지 않았다.
 
 김연경이 '배구여제'로 인정 받는 건 단지 공격만 잘하는 선수이기 때문은 아니다.

김연경 ⓒ 한국배구연맹

 
여기에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의 부상 이탈도 흥국생명에게는 또 다른 악재였다. 루시아는 지난 12월 5일 GS칼텍스전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뒤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흥국생명은 대체 선수로 브라질 출신의 브루나 모라이스를 영입했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기량을 드러내며 오히려 루시아를 빨리 교체한 것이 악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결정타라고 할 수 있는 바로 이다영-이재영 자매를 둘러싼 학폭 논란까지 터졌다. 쌍둥이 자매로부터 학창 시절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상습적인 폭언-폭행-협박-금품갈취에 이르기까지 그 수위가 높았다.

논란이 점점 커지자 쌍둥이 자매는 결국 SNS에 사과문을 올리며 학폭 사실을 인정했지만 이미 여론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 쌍둥이 자매가 논란 전후로 보여준 행적들을 감안하면 사과의 진정성조차 의심된다는 시선이 많다. 한때 배구계를 대표하는 인기 스타로서 수많은 방송에도 출연했던 쌍둥이 자매지만, 이번 논란 이후 많은 방송에서 그들이 출연한 VOD 다시보기를 삭제하는 등 벌써 흔적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많은 팬들 사이에서는 흥국생명과 배구연맹이 쌍둥이 자매에 대하여 엄중한 징계를 내려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 징계가 아니더라도 여론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당분간 쌍둥이 자매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한편으로 피해자로 보일 수도 있는 흥국생명 구단을 향한 여론이 곱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학폭 논란이야 프로 입단 전에 선수 개인이 저지른 과실이라고 하지만, 선수 교육과 사후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흥국생명도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흥국생명은 이다영이 이미 예전부터 무분별한 SNS 활동과 돌출적인 언행으로 여러  차례 팀 분위기를 흐렸음에도 제대로 된 통제를 하지 못했다. 팀 내분이 선수들의 입을 통하여 외부로 만천하에 공개될 때까지도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흥국생명은 팀 성적과 스타급 선수들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이래저래 눈치만 보느라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고 사태를 조기에 진화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리고 이제는 학폭 사실이 드러난 이다영-이재영 자매의 처분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피해자나 팬들보다 '가해자 보호'에만 신경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명색이 프로 구단이라면 그에 걸맞은 팀 고유의 문화와 규율, 기강이 바로 서 있어야한다. 그래야 어떤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원칙에 따른 대처가 가능하다. 좋은 선수를 끌어모아 우승만 많이 한다고 명문구단이 아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이번 사태 내내 아마추어같은 대처로만 일관했다. 사건이 극도로 악화되고 나서야 뒤늦게 사과문을 올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은 공허한 뒷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흥국생명이 처한 지금의 위기도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 흥국생명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당장의 연패 탈출이나 올시즌의 우승 같은 게 아니다. 야구나 축구, 농구 등 다른 종목의 프로 구단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했는지 전례를 참고해야할 필요도 있다. 단지 흥국생명만이 아니라 배구계 전체의 이미지와 신뢰가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흥국생명이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의 대처를 통하여 망가진 팀분위기를 '정상화' 시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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