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배우 류현경 인터뷰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얘는 왜 이럴까. (연기하면서) 매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얘는 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까. 누가 왜 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영화 <아이>에서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힘겹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영채로 분한 류현경은 이런 마음이 들었단다. 스스로 연기하면서도 "영채가 안쓰럽고 슬펐다"는 그는 그럼에도 영채를 자기 연민이나 슬픔으로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대신 피부에 와닿는 현실감과 생생한 생활 연기로 그 자리를 채웠다. 영화 속 영채가 현실 어딘가에 발딛고 있는 인물처럼 보였던 이유다. 지난 5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류현경을 만났다.

10일 개봉한 영화 <아이>는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꿈꾸는 보호종료아동과 싱글맘의 연대를 그린 작품이다. 이제 막 모유 유축을 중단한 초보 엄마 영채는 모든 것이 버거워 보이는 인물이다. 6개월 된 아들 혁은 왜 자꾸 우는지 도통 알 수 없고, 매일 주점에 일하러 나가지만 손님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사는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모나게 말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기도 하다.

베이비시터를 하겠다고 찾아온 아동학과 졸업반이자 보호종료아동 아영(김향기 분)에게도 "너도 고아냐?"고 묻거나 학교에 전화해서 학생이 맞는지 확인하는 등 뾰족하게 굴기 일쑤다. 류현경은 그런 영채를 '마음 속에 공백이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영채는 굴곡이 많은 삶을 살면서 힘든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촬영 전에) 메모를 썼는데, '매일매일 상실하는 인물'이라고 적어놨더라. 기억의 상실, 소중한 마음의 상실, 관계의 상실, 가족에 대한 상실, 사랑의 상실. 그런 상실감으로 가득찬 인물이 아닐까. '왜, 언제부터 이 일(성매매)을 시작했냐' 같은 변호사가 했던 질문을 영채는 그동안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했다. 항상 마음이 불안하니까, 모든 행동이나 말들이 되게 꼬불꼬불하게 나오게 되는 면에 집중했다. 대사로 말하지 않아도 영채의 마음 속에 있는 이런 정서들이 관객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류현경은 영화 속 영채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던 적도 많았다고. 그는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때가 있지 않나. 상실감을 자주 느끼게 되는 때. 배우도 마찬가지다. (영채를) 여러 가지 편견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동질감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마음이 풍요롭지 않은 영채의 모습에서 한때 제 모습도 떠올리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의 자신이 영채같았다고 말했다.

"제 마음에 여백이 있었을 때는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작품을 찍을 때 제가 만족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많이 질책했다. '현경아, 왜 이래. 정신차려? 이런 애였어? 왜 이러는 거야?' 이런 식으로.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왜 내가 나를 질책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그런 대로 잘 살아가고 있고,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과 열심히 작업을 잘하고 있는데.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렇더라. 그때부터 저를 좀 칭찬하게 됐다. 그게 연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을 대할 때도 있다. 그런 시간마다 저를 칭찬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영화 <아이> 배우 류현경 인터뷰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는 모유 수유나 단유 후유증 등 초보 엄마들이 마주할만한 고난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결혼하지 않은 류현경에게는 연기하기 쉽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었다. 류현경은 조카를 돌본 경험도 있었지만 지인인 가수 정인, 조정치 부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조카를 보면, 밥을 잘 안 먹는다. 밥보다 다른 생각이 더 많고. 어릴 때는 (그 아이에게) 당장 먹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중요하겠지. 그런 애를 어떻게 잘 다뤄야할까, 어떻게 해야 먹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저절로 하게 되더라. (조정치, 정인 부부의 아들) 성우에게 밥을 먹일 때도 그랬다. 밥을 조금씩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한입에 많이 먹게도 해봤다. 유튜브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서 그걸 따라하기도 했다. 

사실 시나리오에 모든 게 잘 묘사돼 있었다. 엄마에게 영양분이 없어서 유축 모유를 버리고, 이유식을 주니까 아기가 안 먹고. 그런 장면을 찍을 때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이 카메라를 세워놓고 그 과정을 쭉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담긴 것 같다."


특히 단유 후유증과 같은,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만이 공감할만한 에피소드들은 그동안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거의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류현경은 시나리오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면에 감탄해, 각본을 쓴 김현탁 감독을 처음엔 여성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을 만났을 때 '직접 쓰셨다'고 해서 놀랐다. 시나리오에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한 부분들이 잘 표현돼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이걸 남자인 감독님께서 쓰셨다니. 그런데 내 반응에 오히려 감독님이 의아해 하더라. 실제로 감독님께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워낙 섬세해서 자연스럽게 교감이 됐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편견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바라봐주시는 분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과의 호흡도 그랬고."

굴곡진 삶을 살아온 영채는 비속어와 욕설도 아주 차지게 사용하는 편이다. 특히 싱글맘에게 상습 불법 입양을 권하는 브로커가 집으로 찾아왔을 때, 영채는 식칼을 들고 심한 욕을 내뱉으며 한참이나 그와 실랑이를 한다. 류현경은 "욕을 랩처럼 외워서 했다"며 그 장면의 촬영 비하인드를 살짝 공개했다.

"욕설 대사가 정말 길었다. 이 긴 대사를 지루하지 않게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이 단어가 들어가면 그 다음에 나와야 하는 단어가 있고, 그 욕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음역대가 있다. 그 음역대까지 짚어가면서 랩처럼 할 수 있게끔 달달 외웠다. 그걸 흉내내다가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돼서, 못 찍은 장면도 있다. 브로커 현숙 역을 맡은 선배님께도 너무 죄송했다. 그때 임신 중이셨는데 (태아에게) '욕 이모 왔다'고 할 정도였다. 지금은 출산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계신다."
 
 영화 <아이> 배우 류현경 인터뷰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제목인 '아이'는 영채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영채와 아영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시사회에서 김현탁 감독은 "저를 포함한 영화 속 모든 캐릭터들이 아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류현경은 "나도 스스로 어른같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어릴 때의 습관을 아직 가지고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마음은 어릴 때랑 똑같은 것 같다. 즐겁게 일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어린 시절 사진을 많이 찾아봤다. 저는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늘 아이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을 보면서 4살 때의 기억도 나는데, 가끔 특정 장면들은 기억이 없더라. 주변사람들한테 물어보면 그때 제가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그런 기억을 잊는 습관이 생겼나 보다. 요즘도 안 좋은 일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런 게 제게 남아있는 내면의 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류현경은 '코로나 19'로 인해 요즘 최대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13살 때부터 배우 활동을 계속 해온 그는 오히려 일이 없을 때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이어 그는 요즘 조금씩 방법을 터득해나가고 있다며 "이대로면 코로나가 끝났을 때 더 밝은 미래가 오지 않겠냐"며 환하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작품을 계속 해오다 보니, 작품이 없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물며 코로나 시국인데. 집 안에서 어떻게 계획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요즘 고민하고 있다. 오늘은 운동을 했으니, 내일은 청소를 해야겠다. 작은 계획을 세우고 계속 성취해나가는 편이다. 앞으로의 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렇게 삶을 계속 살아가면, 코로나도 끝나고 더 밝은 미래가 올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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