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나는 늘 수요일 저녁이면 마음이 바빠진다. 다음 날인 목요일은 내가 남편보다도 먼저 집을 나서 일터로 향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요일 저녁부터 나는 아침에 뭘 먹어야 얼른 정리하고 집을 나설 수 있을지,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의 점심 식사는 어떻게 준비해 두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 날 아침에도 그랬다.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을 차리고, 아이의 점심까지 준비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종종 내게 짜증을 유발하지만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해 최대한 이런 감정들을 억누르려 애쓰면서 말이다. 그 때 남편이 보였다. 아침을 먹더니 소파에 앉아 여유 있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남편이. 내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같은 부모인데 아이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왜 맨날 나만 하는 걸까?"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이 말을 남긴 채 현관문을 쾅 닫고 집을 나섰다.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아침마다 그 놈의 밥 때문에 이게 뭐야? 진짜 찌질하다 찌질해.' 밥 먹는 일로 날을 세우는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때 문득 카카오 TV <며느라기>의 사린(박하선)이 떠올랐다. 6회에서 사린은 설거지 때문에 남편과 싸우고 이렇게 말한다.
 
"그지 같아. 출장가면서 설거지 때문에 싸우다니. 정말 시시해. 시시해 죽겠어."
 
도대체 왜 나는, 그리고 사린은 시시하고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힘들어하는 걸까? 나는 <며느라기>를 정주행하면서 사소한 것들에 눈물짓는 사린이의 마음을(어쩌면 내 마음을) 탐구해 들어갔다.
 
별것 아닌 그 일들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마친 사린에게 돌아온 것은 '남은 과일'을 먹어치우는 일이었다.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마친 사린에게 돌아온 것은 '남은 과일'을 먹어치우는 일이었다. ⓒ 카카오TV

 
드라마는 알콩달콩 신혼생활 중인 사린이가 결혼 후 겪는 아주 사소한 일들을 차근차근 카메라에 담아낸다.
 
막 며느리가 된 사린은 1회 시어머니(문희경)의 생일상을 차린다. 전날 음식들을 준비해 시가에서 하루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멋지게 생일상을 차려 낸 사린은 설거지까지 독차지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다른 식구들은 모여 앉아 과일을 먹는다. 사린이 설거지를 마치자 시어머니는 수고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랑 나랑 (과일 남은 거) 한 개씩 먹어치우자." 생일 이후 '네 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는 칭찬을 들은 사린은 3회 시부모의 결혼기념일을 챙긴다. 하지만 사린에게 돌아온 대접은 "너랑 나랑은 아침에 했던 밥 먹자"가 고작이다.
 
사린은 이런 말들에 서운함과 억울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한 채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러다 결혼해서 맞은 첫 추석에 마침내 사린은 구영과 자신의 완전히 다른 자리를 명확히 인식한다. 또한 거실 TV앞에 앉에 축구를 보는 사위와 그런 사위를 위해 떡과 과일을 내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대비시키며 뭔가 잘못됐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린은 그저 웃고만 있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민사린, 왜 웃고 있어? 좋다 싫다 왜 말을 못해?'(8회)
 
사소한 것들의 거대함
 
이처럼 사린이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던 순간들'은 모두 '사소한 일'로 채워져 있었다. 사린을 힘들게 한 것은 시가의 식구들이 모질어서도, 남편이 외도를 하거나 경제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서도 아니었다. 그깟 과일 남은 과일 몇 조각, 찬밥 한 공기, 설거지, 떡과 과일을 내오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사린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일들에 대해 사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왜 사린은 사소한 일에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걸까?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는 자신의 저서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자신들에게는 유리하지만 우리에게는 해가 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정의하리라'고 적었다. 결혼 제도를 떠받들고 있는 가부장제 시스템은 여성이 여성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하게 한다. 여성을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의 역할로만 규정하고 철저하게 대상화하는 가부장제는 수많은 철학 사조와 종교들이 쇠락을 거듭하는 가운데에서도 끈질기게 살아 남아 인간의 사고체계와 제도들을 지배하고 있다. 너무나 오래되고 견고한 이 체계는 많은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고 그만큼 일상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사린이 상처를 입은 순간들은 바로 이 가부장제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먹고, 치우고, 대화하는 일상 곳곳에서 가부장제는 여성을 대상화해 버린다. 때문에 여성들은 이런 작은 순간들에도 자기 자신을 정의내릴 수 없다. 즉, 나의 느낌과 생각을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여성들은 이런 순간에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가부장제는 오랫동안 분노는 여성에게 가당치 않은 감정이라고 세뇌시켜왔다. 때문에 여성들에게 분노를 인식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에 반하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 두려움은 너무나 크고 여성들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부인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감정을 뒤로 하는 게 당연하다'(12회, 사린)며 침묵하게 된다.
 
사린과 내가 한마디씩 내뱉은 후 '정말 시시하다'며 한탄했던 것은 이런 가부장제의 책략이 마음 안에서 작동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상까지 파고들만큼 가부장제는 거대하고 그 힘이 세다. 그 거대함을 잘 알기에 두려움은 더욱 컸을 것이고, 사린도 나도 마음 속 분노를 '시시한 것'으로 치부하며, 애써 부인하려 했던 것일테다.
 
왜 구영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걸까?
  
 결혼 후 처음 맞이한 추석. 사린은 자신과 구영이 얼마나 다른 처지에 있는지를 명확히 깨닫는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한 추석. 사린은 자신과 구영이 얼마나 다른 처지에 있는지를 명확히 깨닫는다. ⓒ 카카오TV

 
하지만 사린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구영(권율)은 사린과는 매우 다르다. 구영은 5회 제사를 지내고 힘들어하는 사린에게 "니가 막상 괜찮게 일하니까 괜찮은가 보다"며 "솔직히 좋았던 것 같아 니가 엄마를 돕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린이 억울함을 토로할 때마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짜증을 낼 뿐이다. 대체 왜 구영은 사린이가 그토록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것들을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이는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스스로를 정의내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고, 남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규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인 구영의 시선은 지배적인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영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고, 대상화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특권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특권은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특별히 인식되지 않는다. 때문에 가부장 사회가 부여한 가장이라는 역할에 짓눌리고, 감정을 억압한 채 반쪽짜리 삶을 살아 가면서도, 상당수의 남성들은 이런 것들이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
 
결국 구영은 여성들이 겪는 부당함의 실체를 자신의 가족들을 통해 경험한 후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한다. 10회 여동생 미영(최윤라)이 사린과 같은 불만을 갖고 있음을 알았을 때, 어머니의 고단함을 목도했을 때, 결정적으로 사린이 '니가 보기에는 별일 아닌 사소한 일들이 내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집을 떠났을 때(11회), 비로소 구영은 여성들을 향한 억압이 자신과도 관련 있음을 깨닫는다.
 
'시시함'에 주목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며느라기>의 사린과 구영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들은 변화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먼저 사린은 자신의 느낌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린은 사소한 일들에 상처받는 자신의 모습을 시시하다 여기면서도 이 시시함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억울함이 쌓여갈 때마다 곰곰이 생각하고, 때로는 이를 구영에게 알린다. 아마도 사린이 그냥 넘어갔다면 구영은 평생토록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변화의 첫 단계는 내 안의 감정들을 인식하고, 이를 알아주는 것이다. 남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그 감정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다음으로 사린은 자기 자신을 지키겠다는 분명한 태도를 보여줬다. 매번 주저하는 구영에게 사린은 홀로 여행을 떠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분명한 뜻을 전했다. 실제로 사린은 여행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회복한다. 그러자 구영 역시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사린을 며느리와 아내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아가 사린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사린에게 시어머니는 '시가 행사에 스케줄을 맞추라'고 요구하지만, 사린은 처음으로 주먹을 꼭 쥔 채 용기를 내어 "저는 빠지겠습니다. 밀라노에 가야 해서요"라고 자신이 뜻을 밝힌다(12회). 아쉽게도 사린의 뜻이 관철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당연한 기대를 만족시키는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은 시작되고 있었다.
  
 느끼고 성찰하고 두려움을 마주하면서 사린은 마침내 자신있게 말한다. "저는 며느라기를 받지 않겠습니다."

느끼고 성찰하고 두려움을 마주하면서 사린은 마침내 자신있게 말한다. "저는 며느라기를 받지 않겠습니다." ⓒ 카카오TV

 
<며느라기> 정주행을 마친 나의 눈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나의 지질했던 행동들을 후회하지 않기로 말이다. 사소한 일들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계속 침묵한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침묵은 12회 사린이 성찰한 대로 '당연한 기대와 기준 속에 스스로를 꽁꽁 가두고, 아픈데도 괜찮은 척, 결국 날 주저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분노를 느끼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성찰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나의 감정이 알려준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린이가 이렇게 당당히 말했듯 말이다.
 
"아니요, 저는 며느라기를 받지 않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며느라기 사린 두려움 분노 가부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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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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