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싱어게인> 계속 보고 계신가요? 이승윤 가수 후속 기사 써보실래요?"
"음악 문외한인데, 제가 또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전문가의 기사가 낫지 않을까요?"

 
전화를 건 기자님이 원한 기사는 가수 이승윤에 대한 보통 사람의 감상이었다. 지난번 기사(관련기사 : "갑자기 음란마귀가?"... 이 노래 듣고 문득 깨달았다 http://omn.kr/1r8f6)를 쓰기 위해 머릿속에 가수 이승윤을 담고서, 며칠간 구상하고 사흘 내내 기사를 쓰고 다듬고 하다 보니, 나는 그만 '입덕부정기'에 들어서고 말았다. 또 그 과정을 반복했다가는 덜컥 '입덕' 해버릴까 걱정되었지만, 쓰기로 했다.

음악 전문가들은 음악을 평가하고 추천해줄 수 있지만, 결국 음악을 선택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나 같은 문외한을 포함하는 대중이고, 그 대중들이 만들어낸 시대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내 기사를 읽어주지 않을까 하는 '시커먼 사심'이 더 컸다는 건 인정한다.
 
묘한 중독성

<싱어게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처음에는 시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수 이승윤의 무대는 작년 12월 말 즈음에야 'Chitty Chitty Bang Bang(치티치티뱅뱅)' 동영상 클립으로 처음 접했고 '괜찮다'는 느낌만 받았었다. 그런데, 'Honey(허니)'를 듣고 가수의 재능에 놀라고 나서는, 이상하게도 'Honey'와 이 곡을 연속재생으로 계속 듣고 다녔다. 다음 경연곡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소우주'도 마찬가지였다. 심사위원들은 극찬을 했지만, TV로 본 내게는 '나쁘지 않네' 정도였는데, 이 곡들도 홀린 듯 계속 들었다.
 
그가 편곡한 경연곡들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들었을 때는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듣고 싶어진다. 어떤 요소가, 어떤 부분이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이가 그의 곡을 계속 듣는 것을 보면, 알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곡이 많으니 들어보라는 댓글을 보고 그가 만든 곡을 찾아보았다. 잔잔한 곡, 신나는 곡, 시끄러운 곡 등 다양한 느낌의 곡이 있었다. '게인주의'나 '영웅수집가'와 같은 풍의 음악은 사실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 가사와 함께 몇 번 들어보니 갑자기 취향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음악에 한껏 심취해 자유롭게 나오는 춤은 어색한 동작이 나올까봐 내가 불안해서 싫어하는데, 이승윤의 그 근본 없는(?) 춤은 싫지 않았다. 한 마디로 이승윤은 뭘 해도 예뻐 보였고, 그가 만든 노래는 어떤 곡도 다 맘에 들었다. 이해도 안 되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이것이 <싱어게인> 심사위원들이 말한 이 가수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가사가 예쁜 인디음악
 
 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이승윤은 오랫동안 인디음악 활동을 해온 가수라고 들었다. 나는 평소 인디음악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실험적인 음악, 높은 수준의 음악 애호가들이 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디음악을 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에서 찾아보니, 대형기획사에 종속되지 않고 음반 제작 및 모든 음악 활동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적 개념이라고 한다.
 
기사를 쓰다가 더 찾아보니, 나도 아는 '브로콜리 너마저', '체리필터', '허밍 어반 스테레오'도 인디밴드였다. 이 밴드들이 인디밴드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20세기에 만들어진 편견을 나만 21세기에도 갖고 있었지만, 인디음악은 이미 내 귀에도 멋진 음악이었던 것이다.
 
여러 곡을 들어보니 이승윤은 압운(押韻), 혹은 라임(rhyme)을 사용한, 언어유희에 가까운 작사에 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미를 알지 못한 하루 속에 / 음미를 하지 못한 시간 탓에 / 온기를 담지 못한 순간들에게 / 사과해야지 (이백서른두번째 다짐)
 
(누군) 실상을 감출 때 (누구누군) 심지를 붙잡고 / (누군) 심성은 식어들 때 (누구누구누군) 상심의 가시에 찔려 / 성인군자가 될 때 (누구누군) 작은 인성에 못 박혀 / 누군가가 될 때 누구누구누구누구누구누구누구 / 척도가 이렇게나 다른데 / 이해하는 척도 너무나도 잘하지 (누구 누구 누구)

 
그의 곡을 들으며 특히 마음에 든 것은 한국어로만 써내려간 가사였다. 나는 영어를 좋아하지만, 우리 말에 섞어 쓰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도 애매한 이야기이다. 한국어 단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 역시, 고대의 우리 조상들이 한국어에 외국어를 섞어 써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중국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나, 현대에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내가 갖는 반감이 비합리적이라는 자각이 들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영어와 뒤섞인 노래가 탐탁지는 않다.
 
이승윤의 노랫말은 그래서 더 맘에 든다. 영어를 섞지 않은 노래가 희귀한 요즈음 이런 가사는 정말 반갑다. 그의 노래는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재치 있고 서정적인 가사를 담고 있었고, 깊은 사색과 성찰을 거친 결과물을 품고 있었다. 가사 한 줄 한 줄을 위해 얼마나 많이 고심하고 노력한 것일까. <싱어게인>에서 그가 한 겸손하고 예쁜 말들도 이런 노력을 한 바탕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명 가수의 시간

여러 동영상 채널에 2017년부터 작년까지 촬영해 올린 이승윤의 공연 영상이 많이 있다. 1년에 200차례나 공연을 했다는데, 사실인지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라이브 클럽에서, 지방 공연장에서, 지자체 문화행사에서, 어느 광장에서, 거리에서, 이승윤은 밴드 '알라리깡숑'의 일원으로서, 혹은 기타 하나 들고 혼자서 공연을 했다.
 
라이브 클럽에서 적은 수나마 관객의 호응을 받으며 공연하는 영상은 괜찮았지만, 공연을 알리는 입간판 옆에서 혼자 했던 거리 공연들은 안쓰러웠다. 열심히 노래하는데,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 가기만 해서였다. 음악을 하는 많은 무명 가수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어렵게 공연을 해왔을 것이다. 애잔하고 짠하지만, '기존 음악에 질문을 던진' 현재의 이승윤은 이런 시간을 지나며 만들어졌을 것이다. 무수한 공연을 자양분으로 해서 형성된 현재의 그의 음악과 현재의 겸손한 그가 그냥 사그라지지 않고 대중에게 발견되어 다행이다.
 
보아도 보아도 계속 튀어나오는 그의 각기 다른 공연 영상을 보면서, 예술가에 대한 국가 지원 정책의 유용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으로 무명 예술가들에게 열어준 여러 무대가 그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계속해 나가는데 자그마한 보탬은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문화의 다양성
 
 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지금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도 충분히 많은데, 왜 무명 가수들까지 신경써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가수 이승윤이 직접 보여주었기에 지금 이 기사를 쓰고 있다. <싱어게인>에서 심사위원들이 한 평가대로 이루어진다면, 가수 이승윤은 21세기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열거나, 적어도 대중음악에 또 다른 방향 하나는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가능성을 가진 그는 무명 가수 출신, 주류 음악이 아닌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예전부터 한국 대중음악에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은데, 한국 대중문화에는 생각보다 내재한 에너지와 잠재 능력이 많은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주류 음악에 대한 반란이 트로트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연령대로 팬층도 늘어났다. 트로트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그 변화는 바로 무명 가수들에서 시작될 것 같다. 이승윤의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좋은 곡을 만든 이가 무명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세상에 실력 있는 무명 가수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먼저 대중에게 발견된 이승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다면 많은 실력 있는 무명 가수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대중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모뻘 나이가 돼서인지 가수 이승윤의 발견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경쟁 상대였던 팀이 탈락할 상황이 되자 눈물을 보이고, 쏟아지는 칭찬을 간신히 듣고 있다가 칭찬을 받아들이라는 말에 울컥할 만큼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웅이라며 떠받들다가도 사소한 흠결 하나에 가차 없이 돌아서는 세태를 담은 곡, '영웅수집가'를 만든 것을 보면, 그도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또 무명 가수로 살아온 시간 동안 많이 단련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알더라도 상처는 받으면 아프다. 언제나 비난하는 이보다는 묵묵히 응원하는 이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그래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음악을 해주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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