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본격적으로 노래방이 도입된 시기는 1990년대 초반이지만 노래방 문화가 10~20대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보급화된 시기는 90년대 중반 이후였다. 특히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에는 남녀공학이 흔하지 않았는데 노래방에서 이뤄지던 소위 '합방'은 당시 이성교재의 한 방식이었다(그 시절 '합방'은 단어가 주는 어감만큼 그렇게 불량한 문화는 아니었다).

같은 머리모양에 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노래방에서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난이도가 높은 노래를 불러 방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높은 고음의 록발라드를 깔끔하게 불러주면 여학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고 남학생들은 생각했다). 그 시절 김종서와 김경호, B612 같은 록밴드 출신 가수들의 노래들이 남학생들의 애창곡이 된 이유다.

하지만 그 시절 남학생들도 차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한 고지는 존재했다. 괜히 이 가수의 노래를 함부로 선곡했다가는 여학생들의 호감을 얻기는커녕 어렵게 만든 여학생들과의 만남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고 다음날 친구들에게 집중적인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애초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국악을 공부했지만 정작 흑인음악에 빠져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만들었던 '미성의 신' 조관우가 그 주인공이다.

데뷔곡으로 100만장 팔아 치운 괴물신인
 
 조관우 1집 타이틀곡 <늪>은 스토킹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교육적으로 썩 권장할 노래는 아니다.

조관우 1집 타이틀곡 <늪>은 스토킹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교육적으로 썩 권장할 노래는 아니다. ⓒ 실미디어

 
판소리 대가인 조통달을 아버지로, 무형문화재인 명창 박초월을 이모할머니로 두고 있는 조관우는 '국악 외길'을 걸어온 집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판소리와 창,가야금 등을 공부했고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도 가야금을 전공했다. 하지만 아들이 가야금으로 '최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 조통달은 오히려 아들이 국악에만 집중하는 것을 반대했고 조관우는 고교 시절부터 외국 밴드 음악을 접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조관우는 1992년 본명인 조광호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너를>을 타이틀로 한 첫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1992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한 댄스음악이 본격적으로 주류음악으로 들어오던 시절이라 성인가요에 가까웠던 조광호의 음악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조관우는 2년 후 조관우라는 예명으로 다시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 바로 전설의 명곡 <늪>이 들어 있다.

<늪>은 조관우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곡이다. 하지만 작곡가 하광훈이 쓴 가사를 유심히 살펴 보면 <늪>은 앞집 여자를 훔쳐 보는 스토커를 미화하는 위험한(?) 곡임을 알 수 있다. 최대한 관대하게 생각해서 남편이 있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것까지는 그 사람의 자유라고 하자. 하지만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그녀를 훔쳐 보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짝사랑이 아닌 스토킹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게다가 <늪>의 가사 속 화자는 혼자 유부녀를 짝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늦은 밤에 혼자 그녀를 위한 파티를 열고 혼술을 하면서 상상 속으로 그녀를 초대한다.

하지만 <늪>은 음반사전심의제도가 있던 시대에도 무사히 앨범이 발매됐고 외로운 남자의 처절한 짝사랑 이야기로 포장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늪>이 이처럼 대중들에게 '스토킹 미화곡'이 아닌 슬픈 발라드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조관우의 노래 실력 덕분이었다. 조관우는 <늪>에서 진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가성으로만 노래를 부르는데 단순히 가성으로 높은 음을 찍고 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음을 오래 유지하는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조관우는 제대로 된 방송출연 한 번 하지 않고도 타이틀곡 <늪>에 이어 후속곡 <다시 대게로 돌아와>까지 히트시켰다. <다시 내게로 돌아와> 역시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슬픈 발라드지만 <늪>처럼 지나치게 우울한 노래는 아니었다. 따라서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밝은(?) <다시 내게로 돌아와>를 더 선호하곤 했다. 그렇게 1집으로 대박을 친 조관우는 1995년 겨울 뜬금없이 리메이크앨범을 발표해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님은 먼 곳에>-<꽃밭에서>... 역대급 리메이크 앨범
 
 다수의 리메이크 명곡들이 들어 있는 조관우 2집은 2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수의 리메이크 명곡들이 들어 있는 조관우 2집은 2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 웰메이드 예당

 
90년대 중반 가요계에 리메이크 붐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는 <낭랑18세>를 리메이크한 한서경처럼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급 가수나 <슬픈 인연>,<단발머리>를 리메이크한 공일오비처럼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기성가수들이 하던 시도였다. 조관우처럼 1집을 통해 1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라이징스타가 2집을 리메이크 앨범으로 발표한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조관우는 1집 때와 마찬가지로 2집에서도 방송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타이틀곡으로 방송에 가장 많이 나온 곡은 김추자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님은 먼 곳에>였다. <늪>에서 보여준 조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성 대신 진성으로 노래 대부분을 부른 조관우는 특유의 감미로우면서도 쓸쓸한 목소리로 원곡과는 다른 매력을 전달했다. <님은 먼곳에>는 2008년 이준익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면서 배우 수애가 또 한 번 리메이크했다.

하지만 이 앨범에 <님은 먼 곳에>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리메이크곡은 따로 있었다. 바로 1982년에 발표된 정훈희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꽃밭에서>였다. 당시 조관우 노래를 통해 <꽃밭에서>를 알게 된 젊은 세대들과 정훈희의 원곡에 익숙한 부모님 세대들은 조관우의 노래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조관우의 <꽃밭에서>는 리메이크의 최고 순기능인 '세대연결'을 제대로 시켜준 노래가 됐다.

이 앨범에서는 1년 전 공일오비가 리메이크했던 <슬픈 인연>의 조관우 버전도 들을 수 있다. 공일오비가 기타선율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느낌으로 편곡했다면 조관우는 진성과 가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기교를 최대한 살려 <슬픈 인연>의 슬픔을 극대화했다. 2001년 핑클의 리메이크 앨범 타이틀곡이 되는 헤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조관우가 핑클보다 6년 먼저 리메이크했다.

리메이크 앨범인 조관우 2집에는 리메이크가 아닌 오리지널 신곡이 두 곡 들어 있는데 두 곡 모두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늪>을 만든 하광훈이 작사·작곡한 <겨울이야기>는 공교롭게도 DJ DOC의 동명곡과 비슷한 시기에 나오면서 본의 아니게 맞대결을 펼쳤다. 당시 표면적인 인기로는 <가요톱텐>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DJ DOC의 <겨울이야기>가 앞섰지만 조관우의 <겨울이야기> 역시 발라드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았다.

또 하나의 신곡 <모래성>은 조관우가 특별한 기교 없이 담백하게 부른 정통 발라드 곡이다. 특히 "괜찮아요 나도 예전엔 누구의 마음 아프게 한 적 많았죠 이해해요 어쩔 수 없잖아요 이게 그 때의 대가인가 봐요"라며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조관우의 감성적인 보컬이 돋보였다. 조관우 2집은 2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현재까지도 단일 리메이크 앨범 최다 판매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초고음역대를 가지고 노는 '코리안 파리넬리'
 
 조관우는 작년 10월 <사랑의 콜센터>에 출연해 여전히 건재한 실력을 뽐냈다.

조관우는 작년 10월 <사랑의 콜센터>에 출연해 여전히 건재한 실력을 뽐냈다. ⓒ TV조선 화면 캡처

 
2장의 정규앨범을 통해 400만 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고도 소속사와의 불리한 계약으로 인해 많은 금전적 이익을 챙기지 못한 조관우는 1996년 소속사를 옮겨 3집 앨범을 발표해 <영원>을 히트시켰다. 하지만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음악적 매너리즘에 빠진 조관우는 4집부터 6집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올렸다. 2002년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 'My Memories 2'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전성기의 인기를 회복하진 못했다.

조관우는 2010년대 들어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연기자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조관우는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와 KBS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그것만이 내 세상>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필모그라피를 쌓았다. 조관우의 연기력은 차치하더라도 90년대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서태지와 아이들 이상의 '신비주의'를 지켜온 조관우의 시트콤 출연은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관우는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김정호의 <하얀 나비>, 김수희의 <남행열차>,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김현철의 <달의 몰락>, 조용필의 <단발머리>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선보였다. 2016년에는 <복면가왕>에서 풍물패 콘셉트의 '인생 모 아니면 도'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가왕 결정전까지 진출했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 과거처럼 조관우가 매체에서 보기 힘든 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관우를 <나가수>에 추천한 '락앤롤대디' 임재범은 "내가 범처럼 노래한다면 조관우는 뱀처럼 노래한다"라며 조관우의 노래 실력을 극찬한 바 있다. 실제로 조관우는 작년 <사랑의 콜센터>에 출연해 <꽃밭에서>를 부르며 여전히 건재한 목소리를 들려준 바 있다. 5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멋진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는 조관우는 '한국의 파리넬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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