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타이거>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타이거> 포스터. ⓒ 넷플릭스

 
노벨문학상과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 일컬어지는 '부커상'은, 본래 영연방 국가의 작품만 대상으로 하다가 2005년에 이르러서야 비영연방 국가의 작품도 대상으로 하는 국제상을 신설해 수상하고 있다.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바로 그 상의 수혜자다. 영연방이라 하면, 옛 영국 식민지 국가들을 위주로 결성된 국제기구인데 영국부터 시작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 전 세계에 걸쳐 족히 몇 십 개국에 이른다. 
 
50년이 넘는 부커상의 역사에서 인도 출신 작가가 수상의 쾌거를 안은 건 네 번뿐이다. 1981년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1997년 수잔나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2006년 키란 데사이의 <상실의 상속>, 그리고 2008년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더 높일 수 없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앞선 두 명과 달리, 뒤의 두 명은 앞의 두 선배만큼의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가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와중에, <화이트 타이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소개되어 다시 한 번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화이트 타이거>는 이란 출신의 미국 감독 라민 바흐러니의 최신작으로, 그는 원작자와 똑같이 미국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를 나온 수재로 데뷔 후 수많은 영화가 각종 영화제에 초대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과 갈채를 받은 바 있다. 특히 베니스영화제에 자주 초청되었고 그중에서도 오리종티 경쟁부문에서 눈에 띄었는데, 세계 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화이트 타이거>가 그의 손에서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똑똑하지만 하인이 되어야 했던 발람

2010년 인도 뱅갈루루, 자수성가한 사업가 발람은 중국의 총리 원자바오가 인도의 기업가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인도를 방문한다는 뉴스를 듣고 그 자리에서 중국 총리에게 이메일을 쓴다. 그리고 원래 하인이었던 발람의 인생이 펼쳐진다. 어둠의 인도에서 태어난 그, 아버지는 릭샤를 몰았고 형은 찻집에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찾은 공무원 앞에서 멋지게 영어를 읽어 내는 발람, 그에게서 정글의 짐승 중 가장 희귀한 종류이며 한 세대에 딱 한 번만 나타나는 '화이트 타이거'라는 극찬을 받는다. 하지만, 가족의 멸시와 무관심으로 발람은 찻집에서 일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클 만큼 큰 발람, 석탄으로 큰 돈을 번 지주 일가를 보고 그들을 모셔야 할 것 같다는 운명을 느낀다. 마침, 지주 일가의 두 번째 아들 야속의 두 번째 기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발람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쓰면서 번 돈을 모조리 가족에게 준다는 전제 하에 운전을 배워 야속의 두 번째 기사로 채용된다. 문제는, 단순히 기사가 아닌 하인의 신분이었던 것. 하지만, 발람으로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주 일가의 아버지와 첫째 아들은 그를 대놓고 하인 취급하지만, 미국 물을 먹은 둘째 아들 야속과 아내 핑키는 그를 최대한 존중한다. 그들은 짐승처럼 자란 발람에게 사람으로서의 의식을 주입한다. 급기야 그를 친구 취급까지 하더니, 술에 취한 어느 날엔 그를 모시고 직접 차를 몰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사고를 내 지나가는 천민 소녀를 죽이고 만다. 하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처리하려는 발람, 지주 일가는 그런 그를 범죄자로 몰고 간다. 발람은 역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뼛속 깊이 주인을 모시는 하인이니까. 하지만, 이 상황을 참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핑키가 뉴욕으로 돌아가 버린 후 사건 양상이 달라지는데.
 
발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영물이라고 할 만한 '화이트 타이거'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는 소년 발람이 천민이라는 태생과 태생의 한계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가족의 무지와 무시와 무관심을 뚫고 나오는 이야기다. 발람이라고 하는 천민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1만 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의 사회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충격적인 건, 인도의 그 유명한 카스트 제도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지켜지며 사람들을 철저히 구분짓고 있다는 것. 작품의 내레이션을 책임지고 있는 자수성가한 발람이 말하길, 1만 년 역사의 인도가 낳은 최대의 유산이 '닭장'이라는 것. 닭장 속 닭들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닭의 피냄새를 맡고도 탈출할 마음이 들지 않을 뿐더러 당연히 행동으로도 옮기지 않는다. 아주 충실하게 주인을 모시며 곧 찾아올 죽을 날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단다. 인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인들도 닭장 속 닭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는 것이다. 

발람도 당연히 그럴 운명이었지만, 어릴 때 들었던 화이트 타이거라는 칭호가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행동에 옮기는 것도 중요하고 또 매우 힘들겠지만, 보다 중요하고 힘든 건 '의식'이 바뀌는 것이다. 

바뀔 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원작이 번역되어 나온 지도 10년이 훌쩍 지나기도 했고 영화의 초반에 몇 번 언질이 되는 바 결론을 말하자면, 발람은 주인 야속을 죽이고 엄청난 양의 정치자금을 훔쳐 스타트업의 초기 자금으로 쓴다. 

발람의 이후 삶을 비춰 볼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인되지 않을 짓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계급사회와 세계적인 변화 추이와 동떨어진 인도의 현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인도의 진짜 모습을 보고자, 꼭 한 번 봐야 할 영화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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