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헌트> 포스터.

넷플릭스 영화 <헌트> 포스터. ⓒ 넷플릭스

 
영화 <헌트(The Hunt)>는 오락영화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소재인 인간사냥을 그린다. 인간사냥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대치를 기본으로, 쫓기는 인간 사냥감이 쫓는 인간 사냥꾼을 대체로 막판에 되치기하는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방식은, 사냥꾼뿐 아니라 사냥감이 인간인 만큼 양자의 대치에 인간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목격하는 야성만 나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헌트> 또한 그렇다.

무엇보다 액션을 얼마나 흥미롭게 구현하느냐가 이런 유형 오락영화의 성패를 가를 텐데, 이 영화는 아주 재기발랄하지는 않지만 기대치에 미달하지는 않는다.

대치의 미장센

오락영화로서 이 영화의 강점은 마치 게임처럼 난도를 올려가며 다채로운 액션을 끊이지 않고 제공한다는 것이겠다. 마지막의 대결은 게임의 최종단계처럼 심혈을 기울여 그렸다. 결말의 승패가 사실상 예정돼 있어서 마지막에서 어느 정도 상투성은 불가피했다.

반면 시작은 살짝 허를 찌른다. 속도가 빠르다. 짧은 도입부 이후에 곧바로 인간사냥이 전개된다. 즉흥적으로 비행기 안에서 사냥이 시작되며 하이힐 굽에 찍힌 눈알이 혜성이 꼬리를 단 모양으로 머리에서 생생하게 빠져나온다. 이 첫 번째 희생자 옆에 마취되어 누워있던 금발 미녀를 카메라가 주목한 탓에 관객은 이 캐릭터가 앞부분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슬래셔 영화의 한 장면인 양 미녀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며 관객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머리통을 빌려주기 위해 잠시 조연으로 출연한 배우는 최근 <파라다이스 힐스>에서 주연을 맡은 엠마 로버츠이다.

'영화 초반에 결코 죽을 것 같지 않을 인물'을 과감하게 죽이는 도발을 통해 크레이그 조벨 감독은 예기치 않은 비행기 안의 첫 번째 사냥에 이어 본격적으로 긴장을 고조한다. 이후 완급을 조절하고 사냥터를 바꿔가며 사냥꾼과 사냥감의 대치를 연출한다.
아프가니스탄 참전 군인인 주인공 크리스탈(베티 길핀)이 다소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휴게소에 등장하기 전까지 대치는 사냥꾼(들)의 일방적인 우세였다. 초반에 잠깐 그림자 정도만 비춘 크리스탈은 영화가 시작하고 25분가량이 지나며 나타난다. 주연치고는 꽤 늦은 등장이다.

크리스탈의 활약을 통해 사태의 역전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크리스탈은 한동안 도망치는 사냥감의 지위에 머문다. 그가 상당한 실력을 발휘한 다음에 영화는 그의 지위 변동을 꾀한다. 이제 사냥감이 사냥꾼으로 바뀐다. 살아남은 유일한 사냥감 한 명이 다수의 사냥꾼을 사냥하는 우월한 사냥꾼으로 변모한다. 그러면서 스토리는 야성에서 정치로 전환한다.

토끼와 거북이, 돼지

영화에 배치된 사냥꾼은 명시적 사냥꾼 외에 사냥감으로 변장하거나 제3의 인물을 연기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주인공은 사냥꾼의 추격을 피하면서도 이러한 함정을 피해야 한다. 위험에서 제법 벗어난 시점에서 크리스탈은 어릴 때 들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동행하는 사냥감에게 전한다(그의 정체는 나중에 사냥감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크리스탈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재래의 동화와 거의 동일하지만 결말이 다르다. 경기에서 지고 화가 난 토끼가 거북이 집을 찾아가 거북이 가족을 학살하고 가족이 먹던 저녁을 토끼가 대신 먹는 것으로 끝난다. 동행인이 묻는다. 여기서 토끼가 누구인지. 우리(사냥감)인지, 저들(사냥꾼)인지.

크리스탈의 사냥이 하드보일드하게 혹은 슬래셔 영화처럼 전개되며 사냥꾼과 사냥감의 역전이 본격화한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깜끔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크리스탈을 보고 악한이라고 느낄 관객은 없겠지만, 그가 냉혹한 살인기계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유능하고 침착하며 지성까지 갖춘 여성 킬러의 활약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사람이 많겠다.

크리스탈을 거북이로 봐야 하겠지만, 토끼가 거북이 가족을 쓸어버린 것처럼 크리스탈이 사냥꾼들을 쓸어버리기 전에 영화에는 사냥꾼끼리의 대화가 양념으로 뿌려진다. 이들의 수다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사례집 같다. 그 수다와 이 장면에 도달하기 전에 크리스탈에게 살해당한 사냥꾼들이 한 이야기들을 모두 모으면 인종, 젠더, 난민/이민, 에이즈, 낙태 등 정치적 올바름의 전형적 주제에서 아이티의 인도주의적 위기까지를 망라하게 된다.

휴게소의 노인 부부는 흑인을 부르는 호칭으로 '블랙'과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두고 논란을 벌이지만 '깜둥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휴게소 TV에서 상영되는 뉴스는 기후변화로 돼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북극곰이 나오는 가운데 아무런 죄의식 없는 살인이 일어난다. 물론 죄의식이 없는 것은 양쪽에서 동일하다.

오히려 (조지) 오웰로 불린 돼지의 죽음 앞에서 리버티(테리 와이블)로 불린 진보적 여성은 애통해한다. 돼지의 죽음에 대해 "무고하다"는 리버티의 지적은 애통함의 원인이며 동시에 "무고하지 않음"의 판정이 11명의 사냥감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근거가 될까. 아이티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거론하며 도움을 역설하고 동료의 표현 중 "Guys!"에 대해 젠더감수성 부족을 지적한 리버티는 크리스탈의 총구 앞에서도 일관된 젠더감수성을 보인다. 여자니까 살려주자고 하는 동행의 이야기를 듣고 크리스탈은 "네가 여자라고 살려줘야 하냐?"고 리버티에게 묻고 리버티가 "아니다"라고 대답하자 크리스탈은 즉시 총을 발사한다.

감독이 젠더감수성을 조롱하려고 이 장면을 넣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정치적 올바름, 혹은 진보의 덕목이 삶과 유리되고 부와 정치의식이 별개인 상황을 전반적으로 풍자하려는 의도로 짐작된다.

크리스탈의 결승전 상대는 아테나(힐러리 스웽크)이다. 리버티처럼 아테나 역시 함축적인 이름이다. 이 인간사냥의 주모자인 아테나는 크리스탈을 SNS에서 자신들을 공격한 다른 인물로 착각하며 "스노우볼"이라고 부른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밝혀지듯이 황당한 사냥감 선정이 SNS상에서 이뤄진 '사냥꾼'들에 대한 공격에서 비롯했고, 더구나 크리스탈은 이들의 실수로 다른 사람 대신 왔다는 사실은 코미디 같은 효과를 거둔다. 이들은 SNS상에서 저택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사냥꾼이란 공격을 받았는데, 공격 전엔 아니었지만 공격 후엔 실제로 인간사냥꾼이 된다. 실체보다 호명이 먼저였던 셈이다.

'스노볼(Snowball)'의 용법은 좀 혼란스럽다. 리버티가 죽음을 애도한 돼지가 '오웰'이라면 '스노볼'은 당연히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등장인물이며, 그들이 '스노볼'이라고 부른 크리스탈이 진짜 '스노볼'이 아닌 상황에서 또 크리스탈이 아테나를 보고 "당신이 스노볼"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스노볼'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단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스노볼'이 러시아 혁명기의 트로츠키를 지목한 것이 정설일진대 그것에서 아테나에게 '스노볼'이라고 한 크리스탈 의중이 일단은 파악된다. 트로츠키가 죽은 방식과 완전히 닮지는 않았지만 아테나가 상처를 입은 모습이 약간은 비슷하다.

액션 결승전 뒤에 출현한 토끼는 또 뭘까. 영화에서 변용된 토끼와 거북이 잔혹동화를 떠올려도 좋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도 좋다. 액션과 스릴러 성격이 강한 영화이지만 곳곳에 장난스럽게 얘깃거리를 해학을 담아 숨겨놓았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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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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