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 멤버와 여성 멤버가 한 팀을 이루는 혼성그룹은 가요계에서 꽤나 큰 부분을 차지했다. 1992년에 데뷔한 철이와 미애, 1994년에 데뷔한 투투,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가 제작한 영턱스클럽은 각각 데뷔곡 <너는 왜>와 <일과 이분의 일>, <정>을 통해 당시 인기가수의 기준이 됐던 <가요톱10>에서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상민이 리더로 있던 룰라는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2집으로 역대 혼성그룹 단일앨범 최다 판매량 기록(167만장)을 세우며 1995년 서울가요대상과 SBS 스타상 가수부문 대상을 휩쓸었다. 이상민은 이후 제작자로 변신해 또 다른 레전드 혼성그룹 샵을 제작하기도 했다. 활동 중간에 멤버가 교체되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2000년대 중·후반까지 '혼성그룹 최후의 보루'로 활동했던 코요태도 혼성그룹 계보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팀이다.

하지만 앨범 한 장으로 200만 장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던 룰라도, 데뷔곡으로 골든컵을 수상한 철이와 미애, 투투, 영턱스클럽도 이들처럼 오랜 기간 꾸준한 사랑을 받진 못했다. 여름엔 정규 앨범을, 겨울엔 스페셜 앨범을 발표하며 1년 내내 꾸준히 대중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던 부지런한 팀이자 혼성그룹 최다 누적 앨범판매량(약 650만장)을 자랑하는 쿨이 그 주인공이다.

'파워댄스그룹' 쿨, 진지함 버리니 인기 따라왔다
 
 쿨1집은 카리스마 넘치는 댄스와 멋진 노래에도 대중들의 큰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쿨1집은 카리스마 넘치는 댄스와 멋진 노래에도 대중들의 큰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 지니뮤직

 
쿨은 1994년 7월 리더 최준명과 래퍼 김성수, 보컬 이재훈, 홍일점 유채영으로 구성된 4인조로 데뷔했다. 전성기의 쿨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데뷔 당시 쿨은 격렬한 '파워댄스'를 추던 팀이었다. 데뷔곡 <너이길 원한 이유>는 지금은 고인이 된 유채영의 파격적인 삭발머리와 전주를 강타하는 인순이의 폭발적인 코러스, 그리고 웃음기를 쏙 뺀 이재훈의 진지한 보컬과 브레이크 댄스가 돋보이는 댄스곡이다.

하지만 쿨의 데뷔 앨범은 높은 화제성만큼이나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1994년은 <일과 이분의 일>의 투투와 < 100일째 만남 >, <비밀은 없어>의 룰라처럼 데뷔와 동시에 차트를 휩쓴 신인 혼성그룹은 물론이고 '코러스의 대가' 신윤미가 참여한 마로니에 역시 3집 <칵테일사랑>으로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쿨은 1집에서 이렇다 할 후속곡 활동조차 하지 못했다.

1집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쿨은 리더 최준명과 홍일점 유채영이 팀을 탈퇴하고 새 멤버 유리가 합류하면서 3인조로 재편됐다. 유리의 공식적인 데뷔는 1995년 쿨 2집이지만 사실 유리는 1994년 강변가요제에서 호박스라는 팀으로 참가했다가 입상엔 실패했던 경력이 있다. 실질적으로 무대에 올랐던 시기는 이재훈, 김성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쿨은 2집에서 댄스곡이 아닌 발라드 <작은 기다림>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너이길 원한 이유>도 마찬가지였지만 <작은 기다림> 역시 사실상 이재훈의 솔로에 가까운 노래였다. 쿨은 후속곡으로 신나는 댄스곡 <슬퍼지려 하기 전에>로 활동하며 그동안의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벗어났다(<슬퍼지려 하기 전에>는 마로니에 3집의 보컬이었던 최선원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활동 당시만 해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쿨은 <슬퍼지려 하기 전에>를 통해 진지함을 벗어 던지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혼성 댄스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쿨은 1996년 연말에 발표한 3집 앨범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혼성댄스그룹으로 거듭났다. 윤일상이 작곡한 3집 타이틀곡 <운명>은 훗날 '전설의 아이돌'로 성장하는 H.O.T.의 <캔디>와 활동시기가 겹쳤음에도 KBS <가요톱10> 골든컵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작은 기다림>에서 랩을 맡았던 유리가 보컬로 나서 노래의 도입부와 킬링파트인 "차라리 이럴 땐 남자가 되고 싶어"를 부르며 쿨의 인기를 견인했다.

쿨 3집이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던 또 하나의 계기는 지상파 음악프로그램들이 1997년부터 실시한 립싱크 표시였다. 당시 립싱크 가수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지상파의 음악 프로그램들은 라이브 가수와 립싱크 가수를 구분하기 위해 화면 상단에 립싱크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여느 댄스가수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발군의 라이브 실력을 가진 이재훈의 보컬은 더욱 두각을 나타냈다.

쿨은 1998년 스페셜 앨범으로 발표했던 3.5집 <해변의 여인>을 통해 여름그룹으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해변의 여인>은 지난 2010년 모 설문조사에서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에 이어 '휴가지에서 듣고 싶은 노래' 2위를 차지했을 만큼 오랜 기간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 여름곡이다. 쿨은 3.5집에서 <해변의 여인> 외에도 <송인>과 <너의 집 앞에서>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비정규 앨범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3집과 3.5집을 통해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혼성그룹으로 자리를 굳힌 쿨은 어렵게 얻은 인기의 단맛을 느낄 틈이 없었다. 90년대 후반은 H.O.T.와 젝스키스, S.E.S., 핑클이 차례로 데뷔하면서 아이돌 그룹들의 역대급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쿨은 곧바로 4집 앨범을 준비했고 1998년 여름이라고 하기엔 한참 이른 4월에 역대 쿨 앨범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4집을 발표했다.

댄스부터 발라드, 통일에 대한 메시지까지
 
 다양한 장르의 명곡들이 두루 실려 있는 쿨 4집은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약 80만 장의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양한 장르의 명곡들이 두루 실려 있는 쿨 4집은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약 80만 장의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 지니뮤직

 
쿨을 최고의 혼성그룹으로 만든 <운명>과 <해변의 여인>을 만든 작곡가 윤일상이 프로듀싱한 쿨의 4집 앨범은 사실 발매 시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 여파로 인해 KBS와 MBC에서 순위프로그램(KBS <가요톱10>, MBC <인기가요 BEST50>)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설 자리가 좁아진 가수들은 음악과 앨범으로 승부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대중친화적인 앨범을 만든 쿨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쿨은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음악들을 통해 우울함에 빠져 있던 대중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4집의 타이틀곡은 이승호-윤일상 콤비가 만든 신나는 댄스곡 <애상>이었다. 애인의 바람기를 의심하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달래는 여자의 귀여운 연애담을 재미있는 가사로 풀어낸 곡이다. "일부러 피하는 거니 (No!) 삐삐 쳐도 아무 소식 없는 너 (Oh, No!)" 같은 유리의 유쾌한 추임새가 노래의 재미를 더해준다.

당시 쿨은 래퍼 김성수와 보컬 이재훈이 노래를 바꿔 부르기도 했고 쿨과 친분이 있던 개그맨 윤정수가 전주 부분에서 멤버들을 소개하는 무대연출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무런 무대연출을 준비하지 못했을 때는 "오늘은 오랜만에 원곡으로 부르겠다"며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애상>의 무대를 보면서 '이번엔 또 어떤 연출이 있을까',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쿨이 4집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애상>과 타이틀곡을 두고 다퉜고 실제로 뮤직비오를 제작하기도 했던 <변명>은 남녀의 사랑싸움을 다른 신나는 댄스곡이다. 하지만 <변명>은 헤어지려는 여자와 붙잡으려는 남자의 사랑싸움 속에서 '혹시 그 남자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숨겨 둔 금이나 내놓으라고 해'라는 김성수의 랩을 통해 IMF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실 쿨의 4집 앨범은 타이틀곡 <애상>을 제외하면 '히트곡'이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었다. 하지만 쿨은 4집의 모든 수록곡을 타이틀로 써도 좋을 만큼 앨범에 많은 공을 들였다. 친구의 애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친구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남자의 마음을 담은 <영원한 비밀>은 장난기 가득한 유리의 진지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는 발라드곡이다. 물론 <그대 그리워지는 이 밤에>나 <지난 슬픔 버리고> 같은 달달한 러브송도 있다. <북에서 온 민숙이>는 국제 경기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남과 북의 운동선수 이야기를 통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곡이다.

쿨 4집에서 오랜 기간 잔잔하게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 받은 노래는 앨범 마지막에 조용히 숨어 있는 이재훈의 솔로곡 <한장의 추억>이다(2014년 <무한도전-토토가>에서 정준하가 이재훈에게 신청한 노래이기도 하다). 세 멤버의 장난스런 수다로 시작하다가 피아노 선율과 함께 노래는 진지해진다. 이재훈의 열창이 끝나면 김성수가 갑자기 끼어들어 "난 두장이 좋은데…"라며 다시 장난스럽게 마무리되는 변화무쌍한(?) 곡이다. 

여름엔 댄스, 겨울엔 발라드로 사랑 받은 혼성그룹
 
 쿨은 지난 2016년 후배가수 코요태와 '쿨요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쿨은 지난 2016년 후배가수 코요태와 '쿨요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 지니뮤직

 
쿨은 이후에도 4.5집 <미절>, 5집 <해석남녀>와 <맥주와 땅콩>, < All For You >, 6집 < Jumpo Mambo >, 7집 <진실>과 <숙이>, 8집 <결혼을 할거라면> 등을 차례로 히트시켰다. 물론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최고의 혼성그룹 자리는 후배 코요태에게 물려 줬지만 쿨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혼성그룹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쿨의 활동 중 또 하나 눈 여겨 볼 부분은 5집 이후 댄스곡 위주의 정규 앨범 사이사이에 발라드 위주로 구성된 스페셜 앨범을 발표해 색다른 매력을 뽐냈다는 점이다. 젊은 대중들에게는 배우 조정석의 노래로 알고 있는 <아로하>를 비롯해 <그래서 행복합니다>, <산책>, <떠나야만 했나요>, < someday >,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 번째 난쟁이> 같은 쿨의 발라드 명곡들은 모두 스페셜 앨범에 수록됐던 노래들이다.

2009년 여름 정규 11집을 발표한 후 10년 넘게 '쿨'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활동이 뜸하다. 메인보컬 이재훈은 테니스 잘 치는 제주도 맛집 전문가가 됐고 유리는 지난 2014년 결혼 후 슬하에 아이 3명을 두고 미국 LA에서 살고 있다. 2014년 <무한도전-토토가> 무대에서도 유리의 자리는 예원이 대신 참여했다. 지난 2009년과 2018년 트로트 앨범을 내기도 했던 김성수는 홀로 딸을 키우며 예능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쿨은 언제나 친근한 이미지로 팀 이름처럼 대중들에게 시원한 음악을 들려주던 유쾌한 팀이었다. 관절염을 앓고 계신 어른들이 무릎이 쑤신 날에는 어김 없이 비가 오는 것처럼 지금 불고 있는 차가운 겨울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오면 쿨의 음악이 듣고 싶어질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