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난해 진행된 '제6회 디카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하동 날다>라는 시의 당선이 취소된 일이 있었다. 손아무개씨의 출품작 <하동 날다>는 '꽃잎이 흩날리면 꽃잎 따라 산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 날지 못하는 피터팬 웬디 두 팔을 하늘 높이 / 마음엔 행복한 순간만이 가득 / 저 구름 위로 동화의 나라 닫힌 성문을 열면 / 간절한 소망의 힘 그 하나로 다 이룰 수 있어'라는 내용의 5행시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음악을 즐겨 듣는 대중이라면 이 대상 시가 대단히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동 날다>의 첫 행을 제외한 나머지 4행은 지난 1994년에 발표된 화이트 1집 타이틀곡 < W.H.I.T.E >의 후렴구 중 'Oh! Ideal taste of enjoyment'를 제외한 나머지 가사와 정확히 일치했다. 아무리 옛날 노래라지만 제법 히트했던 노래의 후렴구를 통째로 베끼다니, 한편으로는 그 대담함이 놀랍다.

물론 문학에서 표절은 용납될 수 없지만 1994년에 발표된 노래의 가사가 2020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화이트의 유영석이 쓴 노랫말이 시대를 초월할 만큼 아름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유영석은 화이트의 전신인 푸른하늘 시절부터 서정적인 음악과 동화 같은 노랫말, 그리고 감미로운 음색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1990년대 가요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역 중 한 명이다.

푸른하늘로 출발한 유영석, 화이트로 새로운 도전
 
 1988년 데뷔 앨범이 나올 때만 해도 푸른하늘은 멤버가 4명인 밴드였다.

1988년 데뷔 앨범이 나올 때만 해도 푸른하늘은 멤버가 4명인 밴드였다. ⓒ 케이앤씨뮤직

 
유영석의 음악적 시작은 1987년 록밴드 비상탈출의 피아노 세션이었지만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유영석의 출발점은 역시 1988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푸른하늘이었다. 푸른하늘은 유영석과 이종석, 박준섭, 전영준으로 구성된 4인 밴드로 출발했다(푸른하늘의 멤버로 알려진 송경호는 1집에선 드럼 세션으로만 참여했다). 물론 당시에도 앨범에 수록된 전 곡을 유영석이 만들었을 정도로 푸른 하늘의 음악적 뿌리는 유영석에게 있었다.

1집에서 <겨울 바다>로 잔잔하게 사랑 받은 푸른하늘은 1989년 2집 <눈물 나는 날에는>을 통해 2인조로 재편됐고 1990년 3집 <이 밤이 지나면>을 발표하며 마니아 팬층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유영석은 뛰어난 입담을 앞세워 라디오 프로그램의 DJ와 패널을 오가며 맹활약했다. 특히 역대급 멤버로 꼽히는1991년 <별밤-잼콘서트>에서는 고 신해철과 윤상, 노영심, 변진섭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키보드 주자로 참가하기도 했다.

푸른하늘은 의도적으로 TV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푸른하늘에게도 딱 한 번 <가요톱텐> 1위 경험이 있다. 바로 1992년에 발표한 5집 앨범에서 한 여자를 두고 형제가 서로 자기가 잘났다며 티격태격하는 재미 있는 노래 <자아도취>로 1993년 2월 첫째주에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재미 있는 사실은 푸른 하늘 5집이 발매될 당시만 해도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자아도취>가 아닌 1번 트랙에 있는 발라드 <이젠 느낄 수 있어>였다는 점이다.

<자아도취>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을 확장하고 싶었던 유영석은 1993년 <오렌지 나라의 앨리스>가 들어 있는 6집 앨범을 끝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당시 푸른하늘은 적지 않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해체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팬들이 꽤 많았지만 유영석은 팬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푸른하늘이 해체된 지 정확히 1년 만에 블랙테트라 출신의 김기형과 함께 화이트라는 2인 밴드를 결성한 것이다.

화이트는 푸른하늘과 마찬가지로 2인 밴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화이트 역시 푸른하늘처럼 유영석이 작사·작곡·편곡·보컬·프로듀싱·키보드 세션을 도맡아 하는 원맨밴드나 다름 없는 팀이었다. 화이트의 음악들은 푸른하늘 시절에 비해서 더욱 풍성해진 사운드와 뮤지컬처럼 스토리가 진행되는 방식을 사용했다. 화이트는 1집 앨범을 통해 타이틀곡 < W.H.I.T.E >를 비롯해 <말할걸 그랬지> <눈부신 그녀> <신혼일기>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수록곡 전체가 골고루 사랑 받은 명반
 
 화이트 2집은 <7년 간의 사랑>을 비롯해 수록곡 전체가 골고루 사랑 받았다.

화이트 2집은 <7년 간의 사랑>을 비롯해 수록곡 전체가 골고루 사랑 받았다. ⓒ 화이트 프로덕션

 
화이트 1집 앨범을 성공시킨 유영석은 화이트 2집에서 더 많은 음악적 욕심을 부렸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예쁜 노랫말이라는 유영석 특유의 색깔을 유지한 채 발랄한 댄스곡은 물론 '유영석'이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록 장르에도 도전한 것이다. 그렇게 화이트는 대중가요 르네상스의 중심에 있던 1995년 용기 있게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화이트 2집 타이틀곡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아닌 푸른하늘 시절부터 대중들이 익숙하게 들어왔던 '유영석표 발라드' <그대도 나 같음을>이 선정됐다. 세상이 반대하는 커플이 사랑으로 시련을 극복하자고 하는 내용의 발라드 곡이다.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가 유행하기 전이었음에도 스토리가 있는 뮤직비디오를 찍은 것도 특징이었다.

화이트 2집의 타이틀곡은 <그대도 나 같음을>이었지만 화이트 2집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따로 있다. 바로 <네모의 꿈>과 함께 화이트의 대표곡이 된 < 7년 간의 사랑 >이다. 7년 동안 만난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의 감정과 상황을 담은 처절하고 서글픈 발라드곡이다. < 7년 간의 사랑 >은 지난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삽입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유영석의 전공과목이라 할 수 있는 우울한 느낌의 발라드 곡들이 화이트 2집에 많이 수록돼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랬나요>는 1집의 <말할걸 그랬지>에 이어 짝사랑의 슬픔을 담은 노래고 <지금은 새벽 3시반>은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해 밤을 지새우는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곡이다. 특히 '잊으려고 애쓰는 건 잊지 않기 위함이라는 사살을 난 이제야 알았는 걸'이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유영석은 화이트 2집을 통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실험적인 음악들을 많이 시도했다. 대표적인 노래가 유영석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사운드와 무거운 주제의식이 담겨 있는 <세상은>이다. 경음악으로 된 < PART1 >과 노래로 된 < PART2 >로 나눠진 <세상은>은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시련을 경험하다가 용기 있게 세상에 맞서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는 대곡이다. 마냥 부드럽기만 했던 유영석의 변화무쌍한 보컬이 인상적인 노래다.

대체로 느리고 슬픈 발라드 곡이 많은 화이트 2집에는 발랄한 노래가 두 곡 들어 있다. <한다고 했는데>에는 성적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창시절 이야기를 담았고 <호기심>은 풋풋한 짝사랑과 스토커 사이의 위험한 경계에 있는 남자의 설렘을 담았다(90년대까지만 해도 스토킹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기지 않아 화이트의 <호기심>을 비롯해 조관우의 <늪>, 영턱스클럽의 <훔쳐보기> 같은 노래들이 속속 발표됐다).

앨범 구석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유영석의 피아노 연주에 내레이션이 더해진 곡이다. 사실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푸른하늘 6집에도 수록된 적이 있는데 당시 기대만큼 주목 받지 못한 아쉬움을 털고자 화이트 2집에 다시 실었다. 화이트는 2집 앨범으로 TV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타이틀곡이 크게 히트하진 못했지만 앨범 수록곡 전체가 잔잔하게 사랑 받은 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 중 하나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네모의 꿈>
 
 유영석은 지금도 <복면가왕>에서 연예인 패널로 출연해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유영석은 지금도 <복면가왕>에서 연예인 패널로 출연해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 MBC 화면 캡처

 
화이트는 1996년에 발표한 3집 앨범에서도 타이틀곡 <네모의 꿈>을 비롯해 소설 같은 슬픈 스토리의 발라드 <소녀>, 영화 <클래식> OST <사랑하면 할수록>의 원곡 <회상>, 록발라드 < I Love You >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네모의 꿈>은 훗날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리고 동요앨범에 수록됐으며 2019년에는 동화책으로도 제작되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유영석이라는 뮤지션의 가치를 또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화이트는 1998년에 발표한 4집 앨범이 괜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유영석은 4집 앨범을 끝으로 화이트 활동을 마감했다. 유영석은 1999년 뱅크의 정시로와 의기투합해 '화이트뱅크'라는 프로젝트팀을 결성해 잠시 활동했지만 화이트뱅크 역시 앨범 한 장 만을 남긴 채 활동을 접었다. 2001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 역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

유영석은 솔로 활동을 했을 때부터 푸른하늘과 화이트 초기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바로성대결절에 걸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크게 고생한 것이다. 실제로 유영석은 성대결절을 기점으로 가수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09년에는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면서 김연우, 조규찬, 이수영, 유리상자, 홍경민, 인순이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을 참여시켰다.

지난 2009년 <일밤-오빠밴드> 출연을 계기로 예능 프로그램에도 간간이 얼굴을 비추고 있는 유영석은 < TOP밴드 >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했고 <복면가왕>에서도 연예인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덧 50대 중반이 됐고 가수보다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라는 직책이 더 어울리지만 유영석이 쓴 아름다운 노래들은 대중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좋은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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