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쯤. 오랜만에 음악 CD한 장을 주문했다. 이적의 오랜 팬으로서 의무감으로 산 터라 무덤덤한 느낌으로 박스를 열었다. 그런 나에게 답 인사라도 하듯 추상화 느낌의 앨범 표지가 건조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한 시간동안 열 두 곡을 연달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묘한 기시감이었다.
 
 이적6집

이적6집 ⓒ 카카오 M

 
유튜브를 열어 컴백기념 방송(2020년 11월 13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을 보니, 추억의 영상을 보며 유희열과 깔깔거리는 이적이 보였다. 옆엔 제법 주름진 얼굴의 김진표가 앉아있었고, 수다 타임이 끝난 후 둘은 오랜만에 신곡 라이브를 하며 반가운 모습을 보여줬다. 짤막한 신보 소개가 있었지만 그걸로 내 미묘한 기분들이 금방 정리될 것 같진 않았다.

내 나이 탓인가. 아니면 이번 앨범이 좀 특별한 탓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어떤 영화시리즈의 후속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새 앨범의 제목과 추억들이 마구 뒤섞였다. 간단한 문장 한 줄로 이 기분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20년 넘게 '적' 바라기로 살았던 필자로서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이 소감을 풀어볼까 한다.
 
 ‘왼손잡이’를 열창하는 20대 이적

‘왼손잡이’를 열창하는 20대 이적 ⓒ 유희열의 스케치북,KBS

 
첫 만남

1998년, 새우깡이 이백 원 하던 시절. 고등학교 점심시간, 하품하는 나에게 날아온 반 친구의 테이프 하나가 이적과의 첫 만남이었다. 테이프 겉면엔 흑백 카툰풍으로 그려진 익살맞은 광대와 해골사진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워크맨 재생버튼을 누르자마자 반복되는 호흡 소리가 귀를 찌르는데, 바로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대중적 성공에 회한을 느껴 극단적 선택을 한 커트 코베인(너바나 리더)과 같은 심정이었을까? 패닉 1집의 <달팽이>로 엄청난 성공을 한 후 이적은 작심한 듯 대중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사회 밑바닥을 훑는 주제로 시선을 돌렸다. 2집은 마치 가식과 침묵으로 위장한 어른들의 세계에 던지는 짱돌 같았다.

어릴 적 나를 말하자면 망치 춤을 추는 아이돌과 소몰이 발라드를 저주하는, 홍대 병 걸린 외골수 리스너였다(지금도 조금은 그런 성향이 남아있다). 데뷔 때 이적의 앙칼진 보이스와 거침없는 김진표의 랩은 신의 계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루종일 테이프 늘어져라 들으며 축축하고 분노 가득한 가사들을 줄줄 외웠다. 그렇게 몇몇 친구들과 함께 사이비 교주의 통성기도회 같았던 패닉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냄새’, ‘혀’, ‘불면증’ 등 심란한 노래 제목들로 가득한 앨범

‘냄새’, ‘혀’, ‘불면증’ 등 심란한 노래 제목들로 가득한 앨범 ⓒ 패닉2집,뮤직앤뉴

 
패닉교의 해체

이후 염원의 패닉3집이 나왔지만 그때부터 관심이 조금씩 시들어갔다. 바야흐로 1999년, 세기말을 맞이하여 이적이 디스토피아의 절정을 그린 파격적인 작품을 들고 컴백할 줄 알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싱거웠다. 회고록에 가까운 가사와 잔잔한 피아노 반주가 곁들여진 타이틀곡(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은 따분한 불청객 같았다.

솔로 앨범 또한 서글픈 발라드 한 곡(Rain)이 전부였다. 실험적인 음악정신은 어디 가고 이적에게도 결국 상업적인 때가 묻었나 하는 1차원적인 생각(오해)만 들었다. 2000년,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이적은 한상원밴드와 손을 잡고 '긱스(GIGS)'라는 명랑한 펑크앨범도 냈다(그때 기준으로의 감상). 내 패닉교 동지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나 둘씩 이탈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순수(?)했던 패닉의 음악은 사라져 간다고 한목소리로 푸념했다.

점점 이적은 내 관심사에서 멀어졌고, 흥청망청 술과 플레이스테이션에만 전념했다. 대학 1년이 지나가고 다음 해 초봄 경, 머리를 빡빡 민 채 노래방에서 '그땐 그랬지' (카니발,1집) 한 곡 부르고 군대에 갔다. 
 
 첫 솔로앨범

첫 솔로앨범 ⓒ 이적1집,뮤직앤뉴

 
터닝포인트

2003년경 5월. 군생활이 한달 남았을 때쯤, 말년병장이었던 나는 2002월드컵 열기가 깃든 <챔피언>(싸이 3집)과 하드코어 랩메탈을 주로 들었다. 청소시간만 되면 내무실 오디오 플레이어를 독차지하고 죽이 잘 맞는 고참과 림프비즈킷의 랩(99%욕)을 외쳤다.

이적 2집소식을 듣고 휴가를 나간 후임에게 앨범을 부탁했다. 앨범표지엔 이적의 심상치 않은 표정과 '2적'이란 말장난 같은 제목이 담겨 있었다. 시디를 넣자 갖가지 소음으로 범벅이 된 첫 번째 트랙(몽상적intro)이 지나고, 경쾌한 기타 리프가 곁들여진 신나는 노래가 바로 심장에 꽂혔다. 군 제대 후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할 때 늘 이 노랫말을 읊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2집의 두 번째 트랙 ‘하늘을 달리다’는 8년 후, ‘슈퍼스타K’ 허각의 최고 하이라이트가 됐다

2집의 두 번째 트랙 ‘하늘을 달리다’는 8년 후, ‘슈퍼스타K’ 허각의 최고 하이라이트가 됐다 ⓒ 이적2집,EMI

 
"이 때부터 라이브에 대한 감, 노래실력, 이런 게 완전히 업그레이드됐어요. 제임스 브라운 같기도 하고. 긱스에 들어간 이후 무대장악능력이 일취월장했던 것 같아요."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김진표-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들고 컴백한 이적은 득음을 한 듯 날개를 달고 무대를 훨훨 누볐다. 패닉교 신도의 본성이 살아났는지, 이런 원숙한 보이스로 패닉 신작이 나오면 또 어떤 통쾌함을 줄까라는 기대감이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이후 감격적인 패닉의 컴백(4집)도 있었지만 그 시절, 패닉의 '냄새'는 느낄 수 없었고, 패닉으로서 활동도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가장 큰 박수

이적과의 첫 만남은 아직도 기억이 뚜렷하다. 날짜도 2007년 7월 7일, 트리플 세븐이었으니까.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마로니에 공원 어느 소극장 앞, 예상시간보다 조금 일찍 콘서트장에 도착한 나는 표를 체크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멀찌감치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악기를 짊어진 사내들에 둘러싸인 채 뚜벅뚜벅 걸어왔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바로 이적이었다. 몸이 굳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고 결국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공연이 시작됐고 팬들의 따뜻한 시선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여기며, 통기타 하나를 품에 안은 채 담담히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낯설 게 느껴졌다. 패닉 시절의 삐딱한 모습이 각인돼서 그런가. 10여 년 가까이했던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니 조금은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3집을 기점으로 이적은 뮤지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기록을 달성했다. 절친가수 김동률의 권유로 타이틀로 내세운 <다행이다>가 큰 히트를 치고, 전국 투어 소극장 공연은 매번 호평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대중음악상 4관왕을 싹쓸이했다. 시상식에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뭔가를 깨달은 기분이 들었다는 이적의 소감은 의미심장했지만, 이 멘트의 정확한 해석(내 나름대로)은 몇 년 후에나 가능했다.
 
 3집의 부제 ‘나무로 만든 노래

3집의 부제 ‘나무로 만든 노래 ⓒ 이적3집,카카오 M/뮤직팜

 
맹꽁이 아저씨의 유쾌한 약진

2011년 이른 봄.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타를 튕기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지인의 축가부탁을 덜컥 승낙해버린 후 결혼식장에서 망신을 당할까 봐 겁이 나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결혼식장 500명의 하객 앞에서 나의 첫 데뷔 무대는 대성공을 거뒀다.

전화 속 연인을 위한 멜로디에서 탄생한 <다행이다>는, 그에게 진정한 울림의 노래가 어떤 것인지 새롭게 깨닫게 해준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의 가사가 주는 특별한 감동은 이적이란 탁월한 뮤지션의 상징처럼 되었다. 축가이벤트를 계기로 이적의 '4관왕 수상소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축가로 불렀던 4집의 마지막 트랙, ’이상해’

축가로 불렀던 4집의 마지막 트랙, ’이상해’ ⓒ 스톤뮤직 엔터테인먼트

 
'다행이다'가 저의 비대중적인 이미지, 음악을 어렵게 한다는 이미지를 많이 풀어준 것 같아요. 일반 대중들에게, 그래서 사랑노래도 쓰는 구나…이번 4집을 만드는데 조금 더 자유로워졌구나 라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2010년 10월 라디오천국, 이적-

이후 예능프로에서 '맹꽁이 아저씨'로서 유재석과 즐거운 호흡(압구정 날라리)을 나누고, 페이크 다큐 주인공으로서 냉면성애자 후배와 셀프 디스도 주고받는 등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날이 바짝 선 20대 이적으로서는 절대로 꿈도 못 꿀 일인데, 이제는 뭔가를 내려놓고 좀더 포근하고 털털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달팽이' 이후 18년 만에, 5집 타이틀곡(거짓말X3)으로 인기가요 1위에 오르며 흔치 않은 경사도 누렸다.
 
 제대로 망가진 인기 뮤지션 캐릭터로 등장

제대로 망가진 인기 뮤지션 캐릭터로 등장 ⓒ 방송의 적,Mnet

 
바다에 닿은 '달팽이'

6집 앨범 수록곡이자 김진표와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듀엣곡 <돌팔매>는 한마디로 '왼손잡이' 2탄이었다. 아웃사이더가 혼자 뇌까리는 푸념에서 멈추지 않고, 박해를 받는 소수와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유쾌한 발전이 담겨 있었다. 나란히 서있는 이적과 김진표의 모습도 그저 반가웠다.
 
  래퍼 김진표와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노래, 6집,’돌팔매’

래퍼 김진표와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노래, 6집,’돌팔매’ ⓒ 유희열의 스케치북,KBS

  
얼마 전, 시상식 축하공연에서 불려 진 그의 노래 <당연한 것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터트렸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그리워하는 노랫말들은 큰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달팽이'가 바다에 도착하고도 남을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현대인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음유시인으로서 담담한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작년 11월 딱 마흔이 되던 날, 뜻깊은 생일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스무 해가 넘도록 그가 걸었던 길을 지켜본 팬으로서, 이렇게 함께 나이를 먹는 가수 한 명이 있다는 게 참 고맙다.
 
 코로나 시대, 많은 위안을 주었던 노래, 6집 ‘당연한 것들’

코로나 시대, 많은 위안을 주었던 노래, 6집 ‘당연한 것들’ ⓒ 백상예술대상,jtbc

 
 
이적 6집 패닉 코로나 당연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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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작가 김진수입니다. 게임,일상다반사 등 가슴에 맺힌 여러 생각들을 재밌게 써볼랍니다. 블로그 '소금불'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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