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에런의 부고를 전하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행크 에런의 부고를 전하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메이저리그

 
메이저리그에서 역대 홈런 1위를 기록한 인물은 2007년까지 통산 762개를 기록한 배리 본즈다. 그러나 야구에 관심이 많은 팬들에게 더 좋은 이미지로 남은 홈런왕은 그가 아닌 역대 2위인 다른 타자다. 

역대 홈런 2위를 기록한 행크 에런이 23일(아래 한국 시각)에 별세했다.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지역 언론들은 가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뒤이어 에런이 가장 오랫동안 활약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메이저리그의 공식 홈페이지 MLB.com도 그를 추모하는 글을 게시했다. 향년 86세인 그의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니그로리그 출신 마지막 세대, 인종 차별의 벽 허문 커리어

1934년 2월 5일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난 에런은 흑인 사회의 야구 리그였던 니그로리그에서 활약하다가 브레이브스에 입단했다. 당시 브레이브스는 이전 연고지였던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을 거쳐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 연고를 두고 있었다.

이전까지 니그로리그에선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한 흑인 선수들이 자체 리그를 구성하여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재키 로빈슨을 시작으로 니그로리그의 우수한 선수 자원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니그로리그의 규모도 축소되던 중이었다. 

니그로리그에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마지막 세대 선수 중 대표격이 바로 에런이었다. 이후 2020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니그로리그의 기록들을 공식 기록으로 반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니그로리그도 아메리카 대륙 야구의 정식 역사로 편입됐다.

1954년 브레이브스에 입단한 에런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리그 올스타에만 무려 25번이나 선정되는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포스트 시즌에서의 통산 승률이 높지 않은 브레이브스의 역사로 인해 월드 시리즈 챔피언 경력은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한 1957년 한 차례에 불과했다.

3298경기(역대 3위)에 출전한 꾸준한 활약으로 에런은 한 차례의 리그 MVP를 포함하여 골드 글러브 3회, 타격왕 및 안타왕 2회, 홈런왕 및 타점왕 4회 등의 타이틀을 차지했다. 누적 통산 기록에서는 6856루타, 2297타점 등 부문에서 역대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통산 타점 역대 2위는 에런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홈런왕(714홈런)이었던 베이브 루스의 2213타점이며, 통산 2000타점을 넘긴 인물은 알렉스 로드리게스(2015년 달성)와 알버트 푸홀스(2019년 달성)까지 4명 뿐이다. 특히 에런의 기록은 공인구가 획기적으로 바뀐 라이브볼 시대 개막 직후 투수들이 타자들을 압도했던 시대에 세웠다는 기록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협박 이겨내고 세웠던 홈런 대기록

에런의 소속 팀 브레이브스는 1966년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겼고, 에런은 1974년까지 브레이브스 소속 선수로 활약했다. 그리고 브레이브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74년 루스의 714홈런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사실 루스의 통산 기록을 넘어섰던 1974년 에런은 기록 돌파 직전 시기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루스의 아내였던 클레어 매릿 루스는 에런의 기록 경신을 응원하였고, 그는 묵묵히 시즌을 치렀다.

그리고 1974년 4월 8일 에런은 통산 715번째 홈런을 날리며 루스의 기록을 넘어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 타자가 됐다. 다행히 기록을 넘어서는 순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베이스를 따라다닌 열성 팬들을 제외하고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기록을 달성한 에런은 묵묵히 베이스를 돌았다.

1974년 시즌을 마친 뒤 에런은 브레이브스를 떠나 밀워키 브루어스로 옮겼다. 브레이브스가 떠난 후 브루어스가 1970년부터 밀워키를 연고로 팀을 꾸리고 있었다. 브루어스는 당시에는 아메리칸리그 소속이었으나 1998년 시즌부터 내셔널리그로 옮겼기 때문에 당시 에런은 지명타자로 뛸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밀워키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던 에런은 브루어스에서 2시즌을 더 활약하고 은퇴했다. 루스의 기록을 넘어선 그는 이후 은퇴할 때까지 홈런을 더 추가하여 755홈런을 기록했다.

체구는 작은 편이었지만 손목의 힘으로 빠른 스윙 속도를 가진 덕분에 장타를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며 통산 타율도 0.305로 뛰어났다. 한 시즌에 50홈런을 넘긴 시즌은 한 번도 없었고 타이틀을 차지한 시즌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에런은 통산 타율에서 볼 수 있듯이 꾸준한 활약을 통해 누적 기록에서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팬들 마음 속의 진정한 홈런왕, 하늘의 별이 되다

은퇴 후 1982년에 있었던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에서 에런은 97.83%의 높은 득표율로 첫 도전만에 성공했다. 97.83%는 100%(마리아노 리베라) 기록이 나온 현재까지도 역대 9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달성하기 힘든 득표율이었다. 등번호 44번은 브레이브스와 브루어스 두 팀 모두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에런은 1976년 브레이브스 고문으로 구단 경영에 관여했으며, 1980년부터는 브레이브스 구단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2년 KBO리그가 시작되었을 때는 축하 차 대한민국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배리 본즈가 처음 에런의 기록에 도전했을 때, 처음에 에런은 같은 흑인으로서 후배인 본즈를 응원했다. 본즈는 2006년 김병현(은퇴)을 상대로 통산 715홈런을 기록하며 루스의 기록을 넘어섰고, 2007년 에런의 기록을 넘어 762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으로 시작된 약물 스캔들로 인하여 야구계가 어수선해졌고, 이후 에런은 본즈에 대한 공개 응원을 철회했다. 다만 본즈가 756번째 홈런을 기록했을 때 예의상 영상 메시지로 축하를 보내긴 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결국 약물 스캔들과 관련된 조사 결과인 미첼 리포트가 발표되면서 야구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하여 에런의 기록을 넘어선 본즈는 2013년부터 도전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2020년까지 8수에 실패했고, 앞으로 기회도 2번 밖에 남지 않았다.

비록 홈런 부문에서 역대 2위로 밀려났지만, 야구에 조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팬들은 에런을 '정정당당'했던 홈런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타격과 관련된 기록이 아니라고 해도,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어갔던 역사적인 스포츠 선수 중 한 사람으로서 많은 팬들은 에런을 기억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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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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