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더 시크릿> 스틸

영화 <더 시크릿> 스틸 ⓒ TCO㈜더콘텐츠온, ㈜Studio dhL

 
홀로코스트가 현대사의 가장 야만스러운 장면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터이다. 홀로코스트는 20세기에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지칭하며, 6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의 만행은 유대인에게 국한하지 않았다. 학살된 유대인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른바 아리안 종족의 영광을 위해 학살됐다. 그중엔 집시가 포함된다.

나치에 의한 집시학살을 일컫는 용어 '포라이모스'라는 게 따로 있을 정도로 희생자가 많았지만, 집시가 워낙 천대받는 종족이고 별도의 나라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그들의 희생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집시에 대해서는 그들이 '호모 사케르'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독일인은 유대인에 대해 느끼는 알량한 수준의 죄의식조차 집시에게는 느끼지 않는 듯하다. 지금도 집시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하다.

미국에 온 집시여인

영화 <더 시크릿>의 주인공 마야(누미 라파스)는 '포라이모스'에서 살아남은 루마니아 집시이다. 전후 그리스 재건사업에 군의관으로 와 있던 루이스(크리스 메시나)를 만나 결혼하여 미국 시민이 된다. 의사 남편에 아들 하나를 키우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의 삶을 꾸려가는 마야가 공원에서 곧바로 '그'를 만나며 영화가 시작된다.

구분하자면 <더 시크릿>은 스릴러에 속하는데, 드라마 요소도 강하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려면 역사의 기억과 개인의 상흔을 긴장과 재미 위주로만 끌어나가기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동시에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를 가지고, 필요한 수준의 긴박감과 스릴러다운 긴장을 견지하는 데도 성공한 듯하다. 전개의 속도가 적정했다. 완급이 있었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처음에 훅 들어가는 방식을 취해 단순히 엎치락뒤치락하는 육박전으로 흐르지는 않겠다고 하는 감을 주며 영화는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가 전개되며 밝혀지듯 마야에겐 유럽에 묻어두고 온 비극적인 과거가 있다. 자신이 집시인 것과 전쟁통에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음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려 간헐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그 '사건' 이후 그럭저럭 15년을 흘려보내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남편의 병원 일을 돕고 아들을 키우다 보니 어느 사이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영혼에 깊이 새겨진 상흔이긴 하였지만 위태롭게라도 의식 저 아래에 봉인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를 성립하게 하려면, 즉 영화적 구성에서 마야는 '그'를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 어렵사리 얻은 마음의 평화가 깨어지고, 마야는 선택으로 내몰린다. '포라이모스' 봉인의 해제와 새로운 실존적 선택 앞에 선 집시여인, 그리고 그의 남편 이야기가 영화의 뼈대를 구성한다. '그'는 '사건' 전체의 원인을 제공한 전범이거나 전범이란 오해를 받고 있지만, 영화에서 운신의 폭은 좁다. 갇히고 묶인 채 추궁에 맞서 부인하거나 고백하거나의 선택지가 놓여 있을 뿐이다.

사건
 
 영화 <더 시크릿> 스틸

영화 <더 시크릿> 스틸 ⓒ TCO㈜더콘텐츠온, ㈜Studio dhL

 
이제 15년 전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 2차대전 당시 마야는 여동생과 함께 수용소에 수감된다. 집시라는 이유에서였다. 마야 자매는 수용소 생활을 악착같이 견뎌내고 종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난리를 그렇게 악착같이 견뎌내고 살아남아 전후의 혼란 속에서 고향으로 가는 자매의 길은, 패전하여 마찬가지로 퇴각 중인 독일군 무리를 만나면서 비극으로 돌변한다.

그 자리에서 마야 일행은 강간당하고 일행의 대다수가 살해됐다. 마야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여동생은 살아남지 못했다. 마야는 동생이 죽고 자신만 살았다는 상황에 따른 죄의식 때문인지 '사건'의 전모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에게 만행을 저지른 '칼'로 불린 독일군을, 그 눈동자를 기억하고,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전쟁의 상흔을 묻어두고 대서양을 건너 평온하게 살아가던, '사건'이 일어나고 15년이 지난 어느 날 휘파람 소리가 마야에게 새로운 '사건'을 일으킨다. 어느 남자가 개를 향해 부는 휘파람을 듣고 마야는 휘파람을 분 사람이 그 독일군임을 즉시 알아챈다. 기억의 봉인이 풀린 것이다. 영화에서 그린 것처럼 그렇게 쉽사리 15년 전 과거를 사소한 단서로 복구할 수 있을까. 휘파람으로 가해자를 특정하는 게 흔하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신속한 대처가 이루어진다. 마야는 퇴근하는 칼을 유인하여 방심한 사이 뒤에서 기습한다. 납치된 칼은 마야 차의 트렁크에서 마야 집의 지하실로 옮겨져 감금되어 마야-루이스 부부의 심문을 받는다. 칼은 자신이 마야가 얘기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며 마야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야기가 풀려가며 마야 기억의 진실성에 루이스가 의심을 품을 때쯤에 관객 또한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영화에 반전은 없다. 예상치 못한 뒤집기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스릴러에서 흔히 시도하는 방식이 자제된다. 반전이 있다면, 그것이 행위와 완벽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가 아니라 주로 심리에서 나타난다.

용서 혹은 단죄

아내의 기억이 맞는지 반신반의하는 남편. 느닷없이 어떤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아내의 선언에 남편은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상식적으로 상대가 부인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여도 한쪽의 주장에 의지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이 쉽지 않다.

죽이려는 아내, 사람을 착각했다는 미지의 남자 사이에서 남편은 혼란에 빠진다. 마을에서 실종 사건 수사가 공식화하며 더욱 더 패닉으로 빠져들어간다. 남편은 대체로 아내를 설득하여 동네의 새로운 이웃 남자를 풀어주자는 입장이다.

결말은 잔잔하다.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 선악의 경계는 다소 모호해진다. 선악의 공존에서 어떤 극단적인 상황이 빚어지면 통제에서 풀려난 악이 활개를 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로 뼛속까지 악한인 사람이 있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악한은 '평범한 악한'이기 십상이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 선악 공존의 균형을 깨곤 한다는 얘기다.

가해자가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떨까. 일률적이지 않겠지만 영화에서 그린 마야는 자신에게 가해진 전쟁범죄에 복수하는 것보다는 그 비극적 순간에 자신이 동생을 버렸는지에 더 집착한다. 자신의 목숨이 동생 죽음의 대가로 얻어진 것인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 상황의 전적인 가해자가 존재하는데도 자신을 유사 가해자로 설정하여 동생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를 단죄하는 기이한 사태이다. 당연히 마야에겐 동생 죽음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없다. 다만 부수적으로, 사지에 동생을 남겨두고 혼자만 도망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영화의 말미에서 밝혀진다.

가해자를 용서하자고 아내를 설득한 남편 루이스가 마지막에 내린 뜻밖의 선택은 납득할 만한 것이다. 영화의 고갱이는 오히려 결론 이후에서 찾아진다. 세 명의 주인공에게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 다른 윤리적 문제가 제시된다. 유발 애들러 감독이 제시한 <더 시크릿>의 답안이 정답은 아니지만 가능한 답이긴 하다. 원래 정답이란 것이 없기도 하고.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삶은 용서의 최종적 근거가 된다는 <더 시크릿>의 문제풀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스릴러의 문법보다는 삶의 문법을 더 참조했다는 측면에서 <더 시크릿>은 진지한 영화이다.

원제는 'The Secrets We Keep'이다. 영화에서 비밀(Secrets)의 시작은 '루마니아'였지만 끝은 '미국'으로 바뀐다는 전이가 일어난다. 각각 대서양을 건넌 두 당사자와 함께 공교롭게도 비밀이 마찬가지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주자 간의 예기치 않은 만남 이후 'we'는 '가해자-피해자'쌍에서 피해자가 포함된 부부로 바뀐다. 15년을 지킨 과거의 비밀이 앞으로 지켜야 하는 미래의 비밀로, 또 비밀을 지키는 주체가 바뀌면서 영화가 끝난다. 주체가 단수인 것과 복수인 것의 차이는 크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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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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