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폭력, 복수, 욕망 등을 총망라한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부른다. 얼마 전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린 <펜트하우스> 시즌1이 증명하듯 이미 막장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들어선 예능에까지 막장적 요소가 곁들여지고 있다. '막장의 세계'에선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훅 들어온 '막장'의 요모조모를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말]
막장의 힘은 세다. 2010년대 후반 <아내의 유혹>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김순옥 작가의 부활을 알린 SBS <펜트하우스>를 보라. KBS 주말극을 제외하고 근래 지상파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최고 시청률 28.8%를 달성했고, 시즌2와 시즌3까지 방영을 예약해 놓은 상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불륜과 살인, 협박과 암투가 횡행하는 막장 드라마의 힘은 만국 공통이다. 이른바 '소프 오페라'라 불리는 연속극이 미국에서 등장한 것이 20세기 초중반이었고, 그 유구한 전통은 미국을 넘어 대중문화가 창성한 각국으로 스며들었다.

21세기라고 다를까. 이 땅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드' <위기의 주부들>은 물론이요, 병원에서 연애하고 또 연애하며 15년 넘게 방영 중인 <그레이 아나토미> 역시 '의드'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란 별칭이 붙었을 정도다.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뛰어넘는 독한 드라마의 힘이 이리 세다.
 
 유튜브 Kemi TV의 '[사랑과 전쟁] 모든 건 궁합 안 좋은 며느리 탓이라던 궁합처돌이 C어머니' 중 한 장면

유튜브 Kemi TV의 '[사랑과 전쟁] 모든 건 궁합 안 좋은 며느리 탓이라던 궁합처돌이 C어머니' 중 한 장면 ⓒ Kemi TV

 
우리는 어땠을까. 지금 수위로 보면, 독한 드라마라 불릴 만한 일일극, 주말극이 지금의 형태를 띤 것은 200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신파나 독한 악역 캐릭터들의 활약이 도드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매운 맛' 막장극과 비교했을 땐 확연하게 '순한 맛'에 불과했다고 할까.

시대상의 반영일 수도, 방송 환경의 변화일 수도 있다. 드라마에 한정한다면, 그런 흐름에 지대한 공을 세운 프로그램이 바로 공영방송 KBS의 <사랑과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시즌2가 종영된 바로 그 <사랑과 전쟁>이 유튜브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럴 만 했다. 내용 면이나 외형 면에서 모두 <사랑과 전쟁>의 인기 요인은 뚜렷했다.

<사랑과 전쟁>의 인기 비결

"그럼, 4주 후에 뵙겠습니다."

'판사님'이 신구였다. <개그콘서트>를 필두로 숱한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패러디된, 가정 법원의 판사를 연기한 배우 신구의 시즌1 속 이 대사는 매회 에필로그를 마무리하는 '인장'과도 같았다.

놀랍게도, <사랑과 전쟁> 시즌1의 첫 방송은 무려 20세기에 시작됐다. 1999년 10월 첫 방송 이후 2009년 시즌1이 막을 내리기까지 10년 간 <사랑과 전쟁>을 든든하게 지켜온 인물이 바로 신구였다.

첫 회는 안착된 재연극의 형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이혼 커플의 에피소드를 완결된 드라마의 형태로 안착시키면서 인기를 더해갔고, 무엇보다 '실화'라는 점이 매력 요소로 작용했다.

과거 <경찰청 사람들>이나 <서프라이즈>와 같은 재연 프로그램도 인기였지만, '막장'의 요소가 다분한 <사랑과 전쟁>은 불륜이나 '시월드'와 같은 특정 소재를 부각시키면서 '금요일 밤의 시청률 강자'로 우뚝 섰다. 물론 그 바탕엔, 그 시절 여느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선 엄두도 내지 못한 '선정성'이 버티고 있었다. 
 
 유튜브 Kemi TV '[사랑과 전쟁] 생활비며 가족행사며 뭐든 공평하게 하자더니 불리해지자 말 바꾸는 남편'의 한 장면

유튜브 Kemi TV '[사랑과 전쟁] 생활비며 가족행사며 뭐든 공평하게 하자더니 불리해지자 말 바꾸는 남편'의 한 장면 ⓒ Kemi TV

 
"어느새 8년 동안 400회를 넘긴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하면 왠지 선정성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성(性)과의 전쟁일 만큼 자극적인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우호적이었던 방송관련 시민단체가 적(?)으로 돌아서기도 했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이혼으로 치닫는 전쟁은 결국 성문제 때문이라는 도식을 낳게도 했다. 성매매, 성폭행, 성희롱, 간통, 근친, 스와핑, 잠자리 횟수와 부부갈등, 성도착증, 성인 나이트클럽 부킹, 총각파티, 몰래카메라, 밀회, 옛 애인과 동침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3류 잡지에나 나올듯한 일들이 공중파 방송에서 드라마로 극화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했다. 이럴 때 불륜의 아이디어 뱅크, 불륜의 정석, 불륜의 백과사전이라고 할만하다. 이러한 성적인 요소 때문에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라는 지적도 있었다." (관련 기사 : 30%에서 10%대로...<사랑과 전쟁>의 과제).


해당 <오마이뉴스> 기사의 작성 시점이 2007년 10월이었다. 해당 기사는 "2001~2002년에는 30%, 2006년까지 20%대, 최근에는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더욱 모색이 필요한 시점인 듯싶다"고 평가하고 있다. 맞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힘든 시청률 수치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엔 <극장판 사랑과 전쟁>이 개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사랑과 전쟁>은 시청률 면에서 어느 드라마와 비교해도 '가성비 갑'인 KBS의 효자 상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유튜브로 부활한 막장극의 신화

당시 <사랑과 전쟁>의 주 시청 층이 30대 이상부터 장년‧노년층까지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주로 부부 관계나 가족사가 갈등의 주축이 되고, 스타 연기자가 출연하지 않는 이 일종의 재연 드라마에 소위 '트랜드 세터'들이, 1020세대가 반응할 여지는 넓지 않았다. 지금보다 그때가 더 장년층 이상 여성들이 TV 주 시청층으로 각광받는 시대였고.

무엇보다 갖가지 '빌런'들이 등장, 고성을 지르고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며 시청자들의 혈압을 높이는 <사랑과 전쟁>의 전개가 속물적이고 통속적이라며 외면하는 층도 적지 않았다. 해가 거듭될수록 소재가 고갈됐고, 그러면서 더더욱 비판적인 시청자들에겐 소재나 표현의 선정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비판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진 시즌2에서도 계속됐다.

2000년대가 그런 시대였다. 지금이라면 '19금' 딱지가 붙을 과감한 성 묘사가 지상파에 등장하는 시기였고, 2006년 개국한 tvN이 케이블의 이점을 살려 선정성과 성적 대상화로 가득 찬 프로그램으로 시청률 장사에 나서던 시대였다. 민주정부 들어 허용 범위가 넓어진 '표현의 자유'가, 좀 더 과감해진 엄숙주의에 대한 저항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던 시기였다고 할까.

그리하여 2010년대 후반, 이 '막장 드라마'의 원천이 유튜브를 만났다. '상업적'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운 것을 넘어 아예 대놓고 광고가 넘실거리고, 아슬아슬하게 19금의 경계를 오가는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전 세계 OTT 플랫폼에 안착한 것이다.

과거 1시간짜리 <사랑과 전쟁> 1회 차 분량을 10분에서 15분으로 요약한 콘텐츠를 주로 게시하는 'Kemi TV' 채널의 구독자가 (1월 20일 기준) 31만 명을 넘어섰다. 이 채널은 KBS 계열사인 KBS미디어어가 운영한다.

각각의 편집판은 그야말로 '유튜브 시대'에 최적화된 콘텐츠다. 그야말로 속도감 있고 찰진 편집과 유튜브 시대에 최적화된 재기발랄하고 마이너한 감수성의 자막이 10분 동안 펼쳐지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동시대 플랫폼에 맞게 변모한 형식이 막장 드라마의 진수를 뽑아낸 <사랑과 전쟁>의 이야기를 더욱 부각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2018년 5월부터 게시된 <사랑과 전쟁> 요약 콘텐츠들은 매회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1백만에서 2백만이 넘는 높은 조회 수를 자랑 중이다. 지금도 새로운 콘텐츠들은 게시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10~20만 조회 수를 올리는 것이 기본이다. <사랑과 전쟁>이 낳은 '최고의 스타'이자 '불륜녀 전문'으로 각인된 배우 민지영이 등장하는 '한 품은 여자가 불륜녀를 조지는 방법'편(2019년 1월 게시)은 무려 357만 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막장극은 힘이 세다
 
 유튜브 Kemi TV '[사랑과 전쟁] 믿었던 언니한테 남친 소개했다 빼앗긴 사연'의 한 장면

유튜브 Kemi TV '[사랑과 전쟁] 믿었던 언니한테 남친 소개했다 빼앗긴 사연'의 한 장면 ⓒ Kemi TV

 
"본격 '비혼' 권장 드라마입니다."

개별 콘텐츠에 달리는 댓글 중 빈번하게 보이는 감상평이다. 시즌1과 시즌2의 '본방' 시기, <사랑과 전쟁>을 관심밖에 뒀던 젊은 층이 이제는 결혼과 이혼을 본격적으로 겪는 3040 세대가 됐다. 또 '유튜브 세대'인 작금의 1020 세대 또한 <사랑과 전쟁>의 매력에, 10분 요약판의 마약 같은 편집에 빠져들었다.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지금, 일말의 각성 효과가 적지 않다. 대다수 회차가 '한국 여성 수난사', 'K-시월드 탈출기', '한심하고 찌질한 한남 남편 활약상'으로 점철된 만큼, 다시 보는 이 요약판들 역시 '본격 비혼 드라마'에 등극할 수 있는 여지가 충만하다고 할까.

과거 간통죄에 해당하는 불륜은 물론 성폭력에 해당하는 아내가 원치 않는 부부 간 성관계 등 현재 시각으로 봐도 너무하다 싶을 장면들은 '거리두기 효과'를 탑재한 편집자의 자막이 걸러낸다. 그럼에도 감출 수 없는 인간사의 오욕칠정, 한국사회 부유층의 속물근성은 물론 예술의 영원한 주제이자 인류 보편의 관심사인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채로운 파국과 그 원인과 결과가 공감과 반감의 여지를 이끌어낸다.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이 막장극의 요체가 유튜브에서도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막장극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숙명은 변치 않았다. '어디까지 공감할 것인가, 거리를 둘 것인가', '각성할 것인가, 영합할 것인가'는 시청자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그리고 집에서 '혼밥'을 하며 <사랑과 전쟁> 요약 판을 시청하는 유튜브 세대가 늘어만 간다. 10대들도 이 막장극을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단 사실에 조금은 우려스럽지만, 어쩌겠는가. <펜트하우스>가 버젓이 시청률 1위에 등극하는 시대인 것을. 

이에 힘입어, '사랑과 전쟁계 이민영'이라는 배우 최영완 등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 <사랑과 전쟁>을 연극 무대로 옮긴 <러브 앤 전쟁>이 현재 상연 중이다. 역시나 '막장의 힘'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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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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