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폭력, 복수, 욕망 등을 총망라한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부른다. 얼마 전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린 <펜트하우스> 시즌1이 증명하듯 이미 막장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들어선 예능에까지 막장적 요소가 곁들여지고 있다. '막장의 세계'에선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훅 들어온 '막장'의 요모조모를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말]
방송 드라마는 철저한 대중예술로 시청률이 최우선 가치다. 물론 시청률이 낮았던 드라마 중 세월이 흐른 뒤 수작으로 평가 받는 것들도 있었지만, 방영 당시에는 시청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청자들이 외면해 시청률이 떨어지고 광고가 붙지 않는 드라마는 방송국이나 제작사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청률에 있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역시 드라마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다. 흔히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로 불릴 만큼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드라마의 성격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의식하는 작가들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요소들을 넣어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드라마로 작품을 변모시킬 때가 있다. 간혹 시청자를 모으기 위해 '막장드라마'라는 꼬리표를 감수하는 이들도 있다. 

'막장드라마'는 분명 자랑스런 수식어는 아니지만 워낙 많은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는 '막장드라마'도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특히 막장드라마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가고 있는 작가들은 대중들에게 색다른 방식으로 인정 받고 있다.

'막장계의 대모'로 불리는 임성한 작가와 시청률 40%를 넘긴 작품을 8개나 가지고 있는 문영남 작가, 그리고 최근 <펜트하우스>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순옥 작가가 대표적이다.

막장드라마란 단어를 탄생시킨 '막장계의 대모'
 
 임성한 작가는 <오로라 공주>에서 암세포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휴머니즘(?)을 과시했다.

임성한 작가는 <오로라 공주>에서 암세포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휴머니즘(?)을 과시했다. ⓒ MBC 화면 캡처

 
임성한 작가는 대한민국에 '막장드라마'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독보적인 작품스타일을 앞세워 '막장계의 대모'로 떠오른 작가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드라마를 쓰기가 힘들면 적어도 재미가 없어 채널을 돌리게 하지 말자'는 철학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막장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작품마다 많은 비판을 받지만 그만큼 높은 시청률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방송국에서는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임 작가는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1999년 MBC 일일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서 '겹사돈'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와 계속된 연장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발표된 그의 작품과 비교하면 무난한 편이다. 장서희의 출세작이었던 <인어 아가씨>부터 본격적인 임성한 작가의 막장화가 시작됐다. 특히 아리영(장서희 분)이 병으로 자기 손목에 위협을 하다가 심수정(한혜숙 분)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당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어아가씨>로 자신감을 얻은 임 작가는 상식을 벗어난 소재와 극단적인 캐릭터 설정, 그리고 연장을 위한 스토리 늘리기 등으로 '막장드라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실제로 2005년 <하늘이시여>에는 TV를 보다가 너무 웃어서 죽는 캐릭터가 나왔고 2011년 <신기생뎐>에서는 귀신에 빙의된 중년남성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기도 했다. 

임성한 작가는 드라마 작가로는 최초로 안티 카페까지 생겼을 정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들은 시청자들의 혹평 속에 시청률에서도 다소 고전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종영 때 즈음엔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역시 임성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5년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작가은퇴를 선언한 임 작가는 23일 첫 방송된 TV조선의 주말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으로 컴백했다.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배우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하던 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성훈, 이가령, 이태곤, 김보연 등 전작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대거 재회했다. 과연 '막장계의 대모' 임성한 작가는 6년 만의 복귀작에서 또 어떤 '신박'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할까.

불륜-이혼-출생의 비밀은 기본, 네이밍센스는 서비스
 
 문영남 작가는 최신작 <왜그래 풍상씨>를 통해 막장요소 없이도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문영남 작가는 최신작 <왜그래 풍상씨>를 통해 막장요소 없이도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 KBS 화면 캡처

 
1992년 작가로 데뷔한 문영남은 1996년 <바람은 불어도>로 백상예술대상과 한국방송대상에서 작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일찌감치 뛰어난 필력을 인정 받았다. 1997년  일일 드라마 <정 때문에> 역시 하희라가 친모인 강부자에게 장기를 이식해 주는 스토리로 장기기증본부에서 감사패를 받았을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적어도 2000년대 초·중반까지 문영남 작가는 '막장'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7년부터 2008년에 걸쳐 방송된 <조강지처클럽>에서 장인(한진희 분)과 사위(오대규 분), 아들(안내상 분)이 모두 바람을 피는 희대의 이야기를 쓰면서 막장의 길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이후 문 작가는 불륜, 이혼, 고부갈등, 폭력, 출생의 비밀 같은 온갖 막장요소들을 드라마에 버무렸다. 시청자들은 "속 터진다"고 욕을 하면서도 그의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봤다. 

문 작가는 특유의 개성 있고 재치 넘치는 네이밍 센스로도 유명하다. <조강지처클럽>에는 한선수, 한복수, 한원수 같은 이름이 등장했고 <수상한 3형제>에서는 전과자, 지구대, 유치장 같은 범죄 및 사건사고와 어울리는 이름들이 대거 등장했다. <왕가네식구들>에서는 아예 한 집안의 식구들을 왕수박, 왕호박, 왕광박, 왕해박, 왕대박으로 지었다. 문영남 작가의 캐릭터 작명엔 언제나 장난스럽다는 비판과 기억하기 쉽다는 칭찬이 함께 따라온다.

주로 주말드라마를 쓰던 문영남 작가는 지난 2019년에 2005년작 <장밋빛 인생> 이후 14년 만에 <왜그래 풍상씨>를 통해 수목드라마로 돌아왔다. <왜그래 풍상씨>는 막장드라마가 될 수 있는 요건들을 대거 갖췄지만 가족애를 강조한 감동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면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시청자들은 5년 만에 KBS로 돌아온 문 작가가 '<조강지처클럽> 이전'으로 돌아왔다고 쾌재를 불렀다.

문 작가는 오는 3월 13일 첫 방송되는 <오!삼광빌라!>의 후속작 <오케이 광자매>를 통해 7년 만에 KBS 주말드라마로 복귀한다. 전혜빈, 박인환, 이보희, 김혜선, 이병준 등 '문영남 사단'으로 불리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코믹 멜로 스릴러를 표방하는 만큼 '막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에서 만큼은 불패신화를 자랑하는 문 작가의 KBS 주말드라마 복귀작이라는 사실만으로 시청자들의 기대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세계관 구축한 막장계의 '젊은 피'
 
 <펜트하우스>에서 천서진을 연기한 김소연은 '김순옥 월드'의 새로운 악녀로 떠올랐다.

<펜트하우스>에서 천서진을 연기한 김소연은 '김순옥 월드'의 새로운 악녀로 떠올랐다. ⓒ SBS 화면 캡처

 
1960년생 동갑내기 임성한 작가와 문영남 작가가 환갑이 지난 베테랑인 데 비해 1971년생인 김순옥 작가는 상대적으로 '젊은 피'에 속한다. 하지만 김순옥 작가는 데뷔 후 부지런한 작품 활동을 통해 '막장드라마의 대중화'에 누구보다 크게 기여한 인물로 꼽힌다.

'김순옥 전설'의 시작은 역시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방송된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었다. 김 작가는 <아내의 유혹>으로 40%가 넘는 시청률을 올렸고 이후 <천사의 유혹>과 <웃어요 엄마>, <다섯 손가락>을 통해 세계관을 넓혀갔다. 그리고 2014년 MBC로 자리를 옮겨 <왔다!장보리>와 <내 딸, 금사월>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김순옥 월드'를 구축했다.

김 작가가 쓴 드라마의 특징은 역시 극단적이면서도 뛰어난 캐릭터 설정과 구성에 있다. 특히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김서형 분)와 <왔다!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 분)은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악역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됐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대단한 악역이라고 평가 받았을 <언니가 살아있다>의 양달희(김다솜분)가 '김순옥 월드'에서는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

김순옥 작가는 지난 5일 종영한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1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다. 사실 <펜트하우스>는 전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6%의 아쉬운 시청률로 종영했고 시청률을 보장하는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등 불안요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펜트하우스> 시즌1은 이지아, 김소연 등 배우들의 열연과 김순옥 작가의 빠른 전개 속에 3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즌1 성공의 영광을 누릴 새도 없이 시즌2 촬영에 돌입한 <펜트하우스>는 오는 2월 19일 금토로 자리를 옮겨 새출발한다. SBS 월화드라마를 부활시킨 김순옥 작가가 <스토브리그> 이후 주춤한 금토드라마를 살리러 가는 것이다. 게다가 <펜트하우스> 시즌2는 토요일마다 임성한 작가의 복귀작 <결혼작사 이혼작곡>과 방송시간이 겹치게 된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신구 막장드라마 작가의 맞대결은 더할 나위 없는 '꿀잼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막장드라마 통속극 임성한 문영남 김순옥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