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포스터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포스터 ⓒ 넷플릭스


'유나바머(Unabomber)'는 미국에서 17년간 연속적으로 폭탄테러를 자행한 범인에게 FBI가 작명해준 별명이다. 그의 주된 범죄공간이었던 대학에서 U, and에서 N, 공항에서 A를 따와서 폭파범 bomber 앞에 붙였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혹은 '별다줄(별 걸 다 줄여)'처럼 우리말 식으로 만든다면 '대공폭(대학과 공항 폭파범)'쯤 되지 않을까 싶다. 

유나바머의 본명은 테드 카진스키(Ted Kaczynski)다. 높은 IQ(167)의 소유자 테드는 월반을 거듭해, 16살에 장학생으로 하버드에 들어갔다. 이후 미시간대학으로 학적을 옮겨 이론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UC버클리대학에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런데 학과장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테드는 어느 날 갑자기 조교수를 그만둔다. 그는 시골의 한 오두막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주변의 목재공장 기계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소음의 원천인 모터사이클족의 살림살이를 파손하는 등 자잘한 사고를 저질렀다. 허나 잡히지 않았다. 그가 위험한 범죄자보다는 특이한 기인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말, 마침내 테드는 새로운 과업에 착수했다. 폭탄 테러! 이후 수년간 연속된 이 테러로 인하여 부상자, 사망자가 나왔지만 테드는 잡히지 않았다. 만일 그가 자필 '선언문(manifesto)'을 신문사에 자발적으로 투고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더라면 완전범죄 미제사건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문에서 선언문의 문체와 어조를 알아본 그의 친동생이 힘겨운 고민 끝에 수사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테드가 붙잡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체포된 지 3년. 테드는 <어쓰 퍼스트(Earth First!)> 저널의 편집자였던 테레사 킨츠(Theresa Kintz)에게 단독인터뷰를 허락했다. 이때 녹음된 음원이 다큐멘터리의 중요대목에서 재생된다. 유나바머 사건 관련자들이 증언하면, 그에 관한 테드 본인의 이야기가 육성으로 흘러나오는 식이다. 테드의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은 과학기술 산업시스템에 대한 개인적 비판이다. 테드는 과학이 인류를 말살할 것이라며 분노했고, 과학자들을 지극히 혐오했다.

사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유나바머는 체포되기 몇 년 전부터,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가인 양 알려지게 되는 일종의 역설이 일어난다. 실제로 어떤 환경운동가들은 환경파괴를 일삼는 과학기술 시스템과 구조물들을 유나바머처럼 직접 공격할 수도 있다고 본다. 과격한 사건이 대중적 관심을 모으는 데 효과적이니까. 물론 그들이 유나바머처럼 실제로 폭탄 테러를 실행하지는 않지만, 아슬아슬한 공통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년 시절 심리적 상처를 크게 받은 자

총 4화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는 4화에 이르러, 마치 본론을 꺼내놓듯 유나바머의 심리적 상처를 거론한다. 테드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하버드에 입학했다. 높은 지능 탓에 공부를 곧잘 했지만, 정서적으로는 그저 십대 중반의 사춘기 소년이었다. 하버드 시절 테드의 친구 로이 라이트(Roy Wright)는 증언한다. 처음 만났을 때 테드는 숫기 없는 녀석이긴 했지만, 매우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이었다고···.

하버드 재학시절, 십대 소년 테드는 비밀실험에 참여하게 되었다. 비밀실험의 주제는 "인간에 미치는 스트레스의 영향"이었다. 극도로 불쾌한 상황을 조성해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견디는지 관찰하는 내용의 실험이었다. 실험을 주관한 이는 헨리 머리(Henry Murray) 박사였고, 스트레스 상황을 견뎌야 하는 피험자는 바로 테드였다. 그런데 테드는 실험주제를 알지 못했다. 테드는 그것을 토론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받았다.

머리 박사는 십대 소년을 망가뜨리기 위해 일부러 이 실험을 설계한 게 결코 아니었다. 증인이나 범죄자 신문에 활용하기 위한 목표를 가진 실험이었다. 그러나, 피험자에게 줄 스트레스의 정도에 대하여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 탓에, 나치 혹은 일본(731부대)의 생체실험을 방불케 할 만큼 비인간적·비윤리적인 실험이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사람들 중 몇몇은 그 비밀실험이 테드에게 매우 유해했다고 평가한다. 테드는 그 유해한 실험의 진짜 목표를 모르는 채 1주일에 한 번씩, 3년 동안 참여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눈에 띄게 달라져갔다. 가족과 친구들이 금방 그 변화를 알아보았다.

테드의 동생 데이비드는 그 무렵 "진짜 똑똑한 사람들한테는 가학적인 구석이 있어"라는 말을 형에게서 듣고 깜짝 놀랐다. 테드의 친구 로이는 점차 테드가 친구들을 피하기 시작해서 의아했다고 회상한다. 인간사회에 대한 불신감과 혐오감, 타인에 대한 공감력 훼손, 극도의 적개심 등이 테드에게서 관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드 자신은 그 실험의 영향력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인류문명과 과학기술 시스템을 파괴하는 혁명가로만 보고 싶어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속적인 비인간적 대우 속에서 인간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은 한 인간이 세상을 향해 분노를 품고서 혐오범죄를 저지를 때,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험악한 결과를 목도하게 될지에 대하여 고민해보도록 이끈다. 물론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범죄했다고 변명하는 범인들을 선처해주거나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되리라. 하지만 우리가 이런 마음 정도는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혐오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심리적 상처를 덜 주고받는 사회를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출간작가 | ‘문학공간’ 등단 에세이스트 |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Writing Memories for Healing)’ 강사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