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방송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18일 방송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 TV조선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혼이 꼭 사랑의 실패나 새드엔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혼도 이혼도 인생의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고, 때로는 서로를 위한 아름다운 이별이야말로 진정한 해피엔딩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TV조선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아래 '우이혼')는 이혼 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파격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방영 초기부터 높은 인기와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일반적인 연애 예능이나 부부 예능과 달리, 사랑의 파국과 결말까지 직접 체험한 이혼부부들을 통하여 실제 연애와 부부관계의 애환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리얼리티가 바로 <우이혼>의 관전포인트였다.

이혼부부들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과 달리 이영하-선우은숙, 최고기-유깻잎, 박재훈-박혜영, 이하늘-박유선 등 출연자들은 이혼 뒤에도 여전히 서로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혼부부라고해서 원수가 될 필요는 없다. 이혼했다고 해서 과거에 두 사람이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 관계들이 모두 한순간에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법적으로는 남남이 되었을지라도 자녀의 존재 때문에 여전히 가족이라는 현실적인 연결고리에 매여있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성으로서의 애정은 식었을지라도 오랫동안 함께해왔던 정이나 의리, 미안함같은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다. <우이혼> 속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간에 교차하는 온갖 미묘한 감정들을 단지 '남녀간의 사랑 혹은 미련' 같은 한 겹의 정의로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이유다.

방송 출연을 빌미로 불편함 강요해선 안돼
 
 18일 방송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18일 방송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 TV조선

 
그런데 <우이혼>은 이혼부부들의 관계를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연애의 연장선이라는 관점에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 아내를 위하여 낭만적인 이벤트를 준비하고 친절을 베푸는 이영하와 박재훈의 매너, 전 남편을 위한 유깻잎의 쿨한 배려나 선우은숙의 과거사 풀이 등은 모두 서로에게 아직 크게 미련이 남아서 하는 행동처럼 묘사된다. 박혜영처럼 헤어진 남편과의 이성적 감정에 대하여 단호할만큼 선을 긋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반응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별나고 코믹한 행동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19일 방송분에는 '재결합' 이야기가 나오는 커플까지 등장했다. 최고기는 과거 이혼의 원인으로 거론된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에 나서며 재결합에 대한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첫 방송 이후 온갖 악플과 비난 세례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최고기의 부친은 만일 두 사람이 재혼한다면 그들 앞에서 나타나지 않겠다며 아들과 손녀의 행복을 기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고기는 부산에서 유깻잎과의 만남을 통하여 재결합에 대한 의지를 비쳤지만, 정작 유깻잎은 "이제 미안함만 남아있지 사랑은 없다. 더 이상 남자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시작) 안 하고 싶다"며 단호하게 말한다. 지켜보던 스튜디오에서는 안타까움의 눈물과 탄식이 교차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최고기-유깻잎의 에피소드가 방송된 회차는 전국기준(닐슨코리아) 약 8%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만큼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우리 재혼할까요?'가 아니라 '우리 이혼했어요'다. 당초 <우이혼>이 표방한 기획의도는, 이혼한 부부가 이별 후에 어떻게 성숙한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이혼부부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아픈 개인사를 공개하고 솔직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이혼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좀더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재결합 역시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재혼 권장이 이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은 아니다. 방송에서 비쳐지는 모습은 극히 일부일뿐이고 부부간의 사이에는 말 못 할 사연이나 고민이 더 있을 수 있다.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가 단지 이 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몇 달 사이에 갑자기 관계가 회복되거나 급진전되는 모양새는 오히려 출연자들이나 프로그램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유깻잎이나 박혜영의 사례에서 보듯, 상대가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고 공감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한쪽의 일방통행식 고백이나 애정공세는, 그저 방송출연을 빌미로 불편함을 강요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작진
 
 18일 방송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18일 방송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 TV조선

 
가장 큰 문제는 프로그램 제작진이나 MC들부터가 이혼부부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보니 출연자들의 모든 행동들은 두 사람간에 아직 연애나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다는 전제 하에서 해석되곤 한다. 스튜디오에서 출연자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MC들의 반응이나, 제작진의 의도적인 해석이 묻어나는 자막 등은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한다.

<우이혼>의 MC들은 일반 연애예능의 커플매니저같은 역할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출연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작 당사자들보다도 쿨하지 못 할 때가 많다. 현실에서도 이혼한 부부들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은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인들이 속사정을 함부로 추측하거나 불쌍하게 바라볼 때다. 

이혼도 충분히 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 '저들은 과연 왜 헤어졌을까'라는 <우이혼> 속 호기심은 출연자들의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대목이지만, 그것이 꼭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전제할 필요는 없다. 이혼 후의 편안해진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어하는 출연자의 의지는 애써 무시되고, 여전히 이혼 전의 과거사를 들추거나 복원하는 데만 매달리고있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안타깝다. <우이혼>이 초반의 기획의도에서 벗어나 갈수록 신파극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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