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시각으로 17일,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인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수감 중인 캘리포니아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그는 2020년 연말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던 바 있다. 향년 81세. 필 스펙터는 2009년 2급 살인 혐의로 19년 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이었다.
 
1939년 뉴욕에서 태어난 필 스펙터는 1950년대 후반, 테디 베어스(Teddy Bears)의 일원으로 음악계에 등장해 'Don't You Worry My Little Pet', 'To Know Him is to Love Him' 등의 히트곡을 만들었다. 이후 프로듀서로 전업한 필 스펙터는 1960년대 초, 저명한 뮤지션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하면서 명성을 높이게 된다. 그는 특히 당대의 걸그룹과의 작업을 통해 빛을 발했다. 로네츠(The Ronettes)의 'Be My Baby', 크리스탈즈(The Crystals)의 'Da Doo Ron Ron'은 그가 작곡한 명곡이다.
 
편집증적이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성향은 사운드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필 스펙터는 서로 다른 악기의 소리를 녹음한 뒤, 이것으로 소리의 층위를 쌓아 풍성한 사운드를 꾸미는 작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스펙터 사운드'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스튜디오 자체를 음악의 일부로 보았던 인물이다. < Let It Be >의 수록곡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합창이 가미된 것은 필 스펙터의 아이디어였다. 필 스펙터의 작업 방식은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 Pet Sounds >,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 Born To Run >등 훗날의 록 명반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의 그룹 아바(ABBA) 역시 필 스펙터의 영향을 받았다. 
 
 필 스펙터가 프로듀싱한 비틀즈의 앨범 < Let It Be >

필 스펙터가 프로듀싱한 비틀즈의 앨범 < Let It Be >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1960년대 중반 이후 잠시 음악계에서 은퇴했던 필 스펙터는 비틀즈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 Let It Be >로 복귀했다. 이후 존 레논의 < Imagine > 조지 해리슨의 <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 등 굵직한 앨범에 참여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70년대 이후 하락세에 있었던 필 스펙터는 2003년, 뜬금없이 영국의 록 밴드 스타세일러(Starsailor)의 < Silence Is Easy >의 두 곡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그러나 < Silence Is Easy >는 그가 이름을 올린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말았다.
 
필 스펙터가 대중음악계에 남긴 족적은 매우 크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동료 뮤지션, 또 후배 뮤지션들로부터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찾아보긴 어렵다. DJ 배철수는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디오를 진행하던 중, "음악은 잘 했지만 추모할 수는 없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2003년 할리우드 여배우 라나 클락슨을 총기로 살해했으나, 6년 동안 줄곧 자신의 혐의를 부인해왔다. 라나 클락슨이 필 스펙터의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것이 필 스펙터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필 스펙터가 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필 스펙터에게는 징역 19년이 언도되었다.

이 사건은 2013년 데이빗 마멧 감독에 의해 <필 스펙터>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당시 알 파치노가 필 스펙터를 연기했다). 필 스펙터는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체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이 살인이라는 죄를 가릴 수는 없다. 혁신가로 존경받았던 20세기 음악 거장의 말로는 누구보다 초라했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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