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환빈(不患貧) 환불균(患不均).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곤궁함을 근심하기보다 고르지 않음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대개 사람들은 가난한 건 견딜 수 있는데 공평하지 못한 건 참기 힘들어한다는 거다.

이 구절을 들이대는 게 적절한 비유인가 싶지만, 요즘 좀 억울하다.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거라곤 하지만, 예능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평소와 다름없는 자유분방한 행동이 자꾸만 눈에 거슬려서다. 솔직히 '너는 하는데 나는 못 한다'는 치기 어린 몽니 같은 거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방송 시작 전 시청자들에게 자막으로 공지되는 내용이다. 사실상 사람들의 이동과 만남 자체가 제한된 와중이라 새삼스러울 건 없다. 코로나 시대의 '방송 심의 윤리 규정'이라고나 할까.

물론,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앞으로 2주간 더 연장된 '5인 이상 집합 금지' 규정은 동창회나 야유회, 송년회 등 사적 모임에 해당하는 것으로, 예능 등 방송 촬영의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몽니'인줄 알지만 억울해
 
 SBS <러닝맨> 한 장면.

SBS <러닝맨> 한 장면. ⓒ SBS

 
그런데, 예외를 인정받는다고 해서, 출연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평소처럼 행동해도 되는 건가. 그들끼리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모여 노래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버젓이 화면으로 송출되고 있다. 

몽니인 줄 알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지난해 추석 연휴 때부터 지금까지 고향에 홀로 계신 노모를 찾아뵙질 못했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지만, 이동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라는 정부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교사로서 당연한 처신이라 여겼다.

노모께서도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한사코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돌이켜보면 그땐 확진자 수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고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사례도 드물었으니 그냥 다녀올 걸 그랬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조치는 생각조차 못 했던 때다.

지난주 목요일은 노모의 생신이었다. 물론, 내려가 뵙지 못했다. 하루 천 명이 훌쩍 넘던 확진자 수가 세 자리로 줄었지만, 사망자가 연일 두 자리를 기록하던 때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땐 이곳 광주에서도 하루 확진자 수가 수십 명씩 나오고 있었다.

설령 확진자 수가 주춤했었다 해도, 애초 5인 이상이 모일 수 없었으니 가족 모임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동거 가족이 아니니 5남매가 각각 따로 찾아뵈어야 하고, 손주들은 데려갈 수조차 없다. 그렇게 되면 무조건 다섯 명이 넘어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셈이 된다.

아들과 딸, 손주들이 한데 모일 수도 없는데 생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노모의 한숨에 가슴이 쓰렸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더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로 생신상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정정하시지만, 노모께선 내후년이면 우리 나이로 아흔이다.

듣자니까, 이번 설 연휴에도 찾아뵙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당분간 유지될 거라는 전망이다. 이번 설 연휴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도 한다.

이런 억울함도 있다. 얼마 전 졸업한 제자들이 집에 찾아온다는 것도 말렸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군입대와 전역을 앞두고 인사하겠다는 아이들이 많다. 더러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취직했다며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교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다.

아이들은 대개 혼자 오지 않고, 학창 시절 각별했거나 같은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 몇몇이 함께 온다. 언젠가는 열 명이 한꺼번에 집에 들이닥친 때도 있었다. 비좁을지언정 집 거실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옛 추억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인 정초 새해 인사였다.

올해는 아이들의 집 방문을 일절 금했다. 한 명만 와도, 우리 가족을 포함하면, 방역 수칙을 위반하게 된다고 귀띔해 주었다. 엄연한 사적 모임인 데다 다섯 명이 넘으면 어디서든 함께할 수 없으니, 각자 따로 오거나 웬만하면 코로나가 잠잠해진 뒤에 만나자고 손사래를 쳤다.

이렇듯 명절에 고향에도 못 가고, 생신날 노모도 찾아뵙지 못했다. 찾아오려는 제자들조차 죄다 돌려보내야 했을 만큼 황망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야말로 시민으로서 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여겨서다. 대다수가 공감하리라 본다.

올바른 방송의 역할
 
 채널A <도시어부> 한 장면.

채널A <도시어부> 한 장면. ⓒ 채널A

 
마스크를 벗지도 말고, 모이지도 말고, 마주 앉지도 말고, 대화도 하지 말라더니, 예능에선 모든 게 허용된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노래를 부르고, 어깨동무하고, 게임을 하고, 요리하고, 식사하고, 뭐든 다 한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켰다는 말 한마디만 미리 자막으로 띄우면 문제없다는 식이다.

유튜브도 아니고 공중파 방송이 그러면 되겠냐고 비판했더니, 되레 괜한 걸 트집 잡는다며 지인들로부터 욕만 먹었다. 바깥출입이 쉽지 않은 시대에 '집콕'하는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방송사의 노력이라며 두둔하기까지 했다. 이조차 없다면 TV에서 뭐 볼 게 있겠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아이들은 단 한 번도 운동장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지 못했다.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없었고, 칸막이 둘러쳐진 비좁은 식탁 위에서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밥을 먹었다. 종일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고, 청소 시간은 아예 소독 시간이었다.

수학여행과 소풍은커녕 체육대회도 열 수 없었다. 매주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없었고, 수업 시간 모둠 활동조차 금지됐다. 하긴 비대면 원격수업이 태반이었으니, 등교하는 걸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비교과 활동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사치였다.

내 눈엔 대다수 예능이 방역 수칙을 지키는 시늉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코로나19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느슨하게 하는 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면 억측일까. 공기로서 방송의 역할을 떠올린다면, 일반 시민들의 인식보다 더 예민해야 옳지 않을까.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지만,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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