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트리방가처럼>

<인생은 트리방가처럼> ⓒ 넷플릭스

 
'인도 영화'에 대한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실사 영화 <알라딘>에서 차용했듯, 진지하거나 코믹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할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이른바 '발리우드' 영화다. 하지만 이런 인도 영화에 대한 선입관을 깨준 작품이 지난 15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찾아왔다. 바로 <인생은 트리방가처럼>이다. 

트리방가는 극중 여주인공 아누(카졸 분)가 추는 인도 전통 춤 오디시 동작 중 하나다. 주인공 아누는 그 트리방가라는 동작을 빌려 자신을 표현한다. 몸을 한 번 꺾는 것도 쉽지 않은데 무려 세 번이나 꺾는 고난이도인 이 동작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살아온 그녀 삶을 대변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는 '트리방가'를 세 모녀 나얀(탄비 아즈미 분), 나얀의 딸 아누, 그리고 나얀의 딸 마샤(미틸라 팔카르 분)의 삶을 상징하는 단어로 선택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많은 딸들이 '난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외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 닮고 싶지 않던 어머니와 가장 많이 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의 삶을 거부하고 살아온 딸, 그리고 딸이 낳은 딸은 다시 그 어머니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이렇게 3대의 여성이 서로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며 살아가다 나얀의 뇌졸중을 계기로 한 자리에서 조우한 뒤 해묵은 '모녀'의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한다. 

엄마이자 작가였던 나얀 
 
 <인생은 트리방가처럼>

<인생은 트리방가처럼> ⓒ 넷플릭스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글을 쓴다. 샘물이 솟아오르듯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영감은 그녀의 손끝에서 작품이 되었다.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는 그녀의 '문재'를 아꼈고 결혼해서도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시어머니는 하루종일 책상 앞에서 손을 놀리는 며느리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식이 죽어나가도 글을 쓸 것이라며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집으로 찾아온 문학계 동료들을 앞에 두고 그녀에게 수모를 안겼다.

그녀의 글을 사랑해서 결혼했다던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시키기는커녕, 두 사람의 갈등 속에 안락하지 않은 가정을 불평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면 떠나자'라고 했지만 외아들인 남편은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그녀가 떠났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비말, 그리고 아이들, 새로운 사랑,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의 출간... 그녀는 행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녀를 엄마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엄마 대신 '나얀'이라고 불리는 여성. 나얀은 자서전을 쓰며 자녀들이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비난해주길 바란다. 

엄마를 부정하는 아이들 

왜 아이들은 엄마를 '나얀'이라 부르며 외면하게 되었을까? 1980년대 인도 사회에서 나얀은 진취적 여성이었다. 나얀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 후 남편이 더 이상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지 않자, 자신의 성을 아이들에게 붙였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결정이었다. 그녀는 케케묵은 가부장제에 대항해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정에서 10년간 싸웠다. 

나얀은 가부장제에 대항하여 자신을 굽히지 않은 강인한 엄마이자 문필가였지만, 그런 엄마의 결정을 감내해야 하는 건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었다. 이혼이 흔치 않았던 그 시대 인도 사회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이라는 이별을 맞닥뜨린데 이어, 엄마의 성을 쓰게 되면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런데 딸 아누를 정작 고통에 빠뜨린 건 그런 주변의 놀림이 아니었다. 엄마의 두 번째 사랑인 사진가는 때때로 아누를 성적으로 희롱했다. 아누는 엄마가 이걸 알면서도 묵인했다고 생각하고, 그 지점에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아누에게 엄마 나얀은 딸보다 작가인 자신을, 그리고 주변 시선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다. 
 
늦은 화해 
 
 <인생은 트리방가처럼>

<인생은 트리방가처럼> ⓒ 넷플릭스

 
그렇게 엄마를 외면했던 두 남매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의 병실에서 모인다. 그리고 엄마의 자서전을 써왔던 밀란을 통해 뒤늦은 엄마의 진심을 확인한다. 자식들은 잘못한 걸 숨기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보이고 아이들에게 비난받겠다는 엄마의 진심을 깨달으며 외면했던 마음을 돌린다. 

아누는 엄마를 거부하고 외면하며 살아왔다. 가부장제에 맞서 아이들 이름에 자신의 성을 쓰기 위해 10년간 법정에서 싸웠던 엄마가 싫었던 아누지만, 그 역시 한 남자와 평생을 사는 걸 바보 짓이라 일축한다. 결혼을 사회적 테러라고 여기며 당당한 삶의 태도를 일관한 아누는 결국 엄마 나얀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누의 딸 역시 엄마에게 반항하며 살아온 아누처럼, 엄마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학부모 상담 때마다 매번 새 남자를 데리고 나타나는 엄마가 싫었던 딸은 평범한 가족의 일원이 되고자 애쓴다.

영화의 제목처럼 세 번의 굴곡이 할머니, 어머니, 손녀 삼대를 통해 드러난다.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 그런 엄마처럼 살기 싫은 딸, 하지만 그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서로 닮아 있다.  

작품은 사회적으로 이혼이 수용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던 작가와 자유분방한 여배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인도 사회 내 여성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인도'라는 지역성을 넘어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보편적인 울림을 전해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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