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힘> 포스터

<파힘>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방글라데시 출신의 체스 세계 챔피언 파힘 모함마드의 실화를 다룬 <파힘>은 그의 굴곡진 유년시절을 담아낸 영화다. 체스에 문외한인 피에르 프랑소와즈 마틴 라발 감독은 TV에서 파힘 모함마드의 인생 스토리를 보고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두뇌 스포츠의 매력보다 드라마적인 감동을 통해 마음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유쾌하고 귀여운 파힘과 친구들의 이야기에 난민 문제를 담아내며 감동을 선사한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체스 실력을 지닌 파힘은 아빠 누라와 함께 프랑스로 밀항한다. 파힘은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프랑스의 뛰어난 체스 교사한테 배워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프랑스로 향한다. 

누라가 말한 뛰어난 교사 실뱅은 학생들을 윽박지르고 툭하면 벽을 치며 위협하는 괴짜 교사다. 그의 거친 면에 겁을 먹은 파힘은 수업을 받지 않겠다며 저항한다. 도입부에서 누라는 재능이 뛰어난 파힘을 성장시키기 위해 프랑스행을 결정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망명을 택하는 눈물겨운 부정(父情)인 줄 알았던 이 선택은 예기치 못한 전개로 이어진다.

 
 <파힘> 스틸컷

<파힘>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2006년은 방글라데시 과도정부가 군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정을 실시했던 때다. 시위에 참여한 누라는 정부군에 찍히게 되고, 파힘을 유괴당할 뻔한 순간을 맞기도 한다. 누라의 선택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위험한 방글라데시의 상황에서 벗어나 가족 전체가 프랑스로 망명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져야한다. 허나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고 마땅한 기술도 없는 누라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는 파힘에게 희망을 건다. 파힘이 뛰어난 체스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야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고, 고향의 다른 가족들이 프랑스로 올 수 있다.

실뱅과 파힘의 조합은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실뱅은 겉보기에는 괴팍해 보이지만, 실상은 허당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막상 아이들에게 화는 내지만 악의는 전혀 없고, 오히려 파힘과 단 둘이 집에서 지내게 되자 어색함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선 귀여운 면모가 느껴진다.

약속 시간에 1시간이나 늦은 파힘과 누라가 '방글라데시에서는 늦은 게 아니'라는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공공장소에서의 규정을 모르는 누라가 체스 경기장에서 떠드는 장면은 실뱅을 당황시키며 웃음 코드로 작용한다.

사제관계를 다룬 작품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서로가 서로의 변화를 이끄는 과정은 이 영화의 감동 코드다. 실뱅은 공격만 하는 파힘에게 비기는 법을 전수한다. 체스에서는 무승부에서 받는 0.5점이 우승의 행방을 가르기 때문이다. 체스판은 조그마한 전쟁터다. 이 전쟁은 파힘의 조국과 연결된다. 만약 파힘이 체스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들 가족은 그 전쟁터에서 탈출할 수 없다. 때문에 파힘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타협이 아닌 승리만이 자신이 처한 전쟁에서 이기는 법이란 걸 이 소년은 안다. 이런 파힘의 모습은 실뱅을 변화시킨다.
 
 <파힘> 스틸컷

<파힘>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실뱅은 과거 중요한 경기에서 패한 뒤 체스 기사가 아닌 강사의 길을 택한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도전에서 물러난 것이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파힘의 모습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고 과거 패배로 갖게 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파힘>은 극적인 성장과 성공 스토리가 주는 감동에 난민 문제를 엮어 깊이를 더한다. 파힘과 누라는 난민 캠프에 도착한 뒤 자신들과 같은 고통을 지닌 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누라는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려 분투하나 실패하고, 파힘을 학원에 맡기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등 가족을 위해 분투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파힘과 누라에게 힘을 주는 건 실뱅을 비롯한 학원 친구들이다.

실뱅은 어린 나이에 재능을 나타내며 챔피언이 된 체스 기사들을 언급하며 파힘과 비교한다. 그가 언급한 챔피언 중 몇 명은 난민 출신이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과 충분한 수분, 햇빛이 필요하다. 씨앗은 혼자 힘으로 꽃을 피울 수 없다. 파힘을 비롯한 난민 출신의 체스 기사들은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실뱅은 파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준다.  

작품에는 '프랑스는 진정 인권을 위한 국가인가요, 아니면 말로만 인권을 주장하는 건가요'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유럽 전역에 맨 처음 퍼뜨린 국가다. 이 가치를 수호하는 국가가 프랑스라면 자유와 평등을 위협당하는 난민을 지켜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이 되었다. 영화는 그때 누군가가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기에 오늘날 유럽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파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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