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단지 세상의 끝> 포스터

영화 <단지 세상의 끝>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가족은 축소된 하나의 사회이자 세계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랄 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임의의 환경에 그저 놓여진다. 국가, 출신, 성별, 재력 등 무엇 하나 고를 수 있는 게 없으며 불가항력적으로 적응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가족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같다. 가족은 선택해서 정하는 것이 아닌 태어나기 이전 이미 놓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난 이상 원하든 원하지 않던 속한 이상,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맡은 역할을 다해야하고 책임져야 할 영역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의도하지 않은 관계에 숙명적인 의무가 지어진다는 사실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반하는 불공평한 일이라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이성적인 사유를 아득히 넘어 가족은 존재한다.

특수한 절차를 거쳐 법적으로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행위에 도달하기까지의 가족과의 기억들은 흔적이 되어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일반적이라면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낀다. 그러나 그 기대하는 만큼 그리고 함께한 긴 시간 만큼 서로를 당연히 여기고 실망하고 상처받는 것 또한 가족이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자비에 돌란 감독은 단색적인 감정을 그리지 않는다. 그가 표현하는 관계에서 감정은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집합체다. 그가 연출하는 작품 위 서로에 대한 증오, 사랑, 연민 등은 작은 불씨로 시작해 팽배한 긴장감을 거쳐 결국 작열하고 결과 없이 빠르게 수그러든다.

자비에 돌란이 직접 주연을 맡은 데뷔작 <아이 킬 마이 마더>에서 논점이 흐려진 모녀간 감정싸움의 결말은 결국 이렇다 할 갈등의 끝을 내지 못한 채 마지막을 침묵으로 일괄했다. 평단의 호평을 받은 영화 <마미>에서는 결국 ADHD를 가진 아들을 시설로 보내며 어머니의 사랑은 현실의 벽 앞에 무릎 꿇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단지 세상의 끝>에서도 그의 이러한 갈등에 대한 태도, 특히 가족에 대한 관조는 여전했다.

본 작품은 99분의 러닝타임 기간 동안 집요하고 비번하게 배우들을 클로즈업 하며 긴 호흡의 대사를 통해 가족 간 미묘한 숨 막히는 압박감, 가족 간 독특한 애정을 연출한다.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을 끝>을 보고 있노라면 보편적이진 않더라도 견고한 그의 가족관이 어째서 칸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쥘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스틸 컷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스틸 컷 ⓒ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루이(가스파르 울리엘)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에이즈 판정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루이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직감하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12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루이는 자신의 가족을 독백 중 건조하게 표현한다. "자신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대사는 지나치게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루이의 독백을 통해 관객은 무언가 그가 긴 시간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루이의 가정이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스칠 때 쯤 영화는 다음 쇼트에서 루이를 정성스레 맞이하기 위해 바삐 준비하는 그의 가족들을 비추며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다.

어머니(나탈리 베이), 장남 앙투안(뱅상 카셀), 막내 쉬잔(레아 세이두), 그리고 앙투안의 아내 카트린(마리옹 꼬띠아르)은 루이를 기쁘게 반기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의 모습은 평범한 가정과 다르지 않아 보이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진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들은 대화는 배려가 부재되어있는 것이다.

불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서로에게 질려하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볼 수 있다. 음식의 메뉴, 어렸을 적 추억 얘기, 담배를 폈는지의 여부 모든 잡담에 담겨있는 서로를 헐뜯는 비판적 어조와 이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용한 미소를 띠우며 일관하는 루이의 태도가 바로 본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이후 영화는 루이가 차례로 가족들과 한 명씩 대면하며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루이의 부재중 겪었던 서로에 대한 오해, 갈등을 풀기 위해 루이에게 가족들은 진심을 토해내나 그들은 논점 자체가 어긋나 있다. 스크린 위 펼쳐진 가족 간의 의미 없는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보며 관객들은 그들이 왜 서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는 내 가족에게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스틸 컷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스틸 컷 ⓒ (주)엣나인필름

 
가족들은 모두 루이를 원하는 방식으로 회상한다. 첫 번째로 쉬잔은 그를 재능 있는 극작가이자 그녀의 우상으로 여기고 있다. 쉬잔은 루이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저 어렸을 적 희미한 인상에 기대어 그를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쉬잔에게 루이는 그녀가 스크랩한 기사의 파편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짜집기 한 이상적인 인간일 뿐 그를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루이는 부재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줄 이상적인 방향표인 것이다. 쉬잔이 루이를 이렇게 기억하게끔 만든 것은 어머니의 역할이 지대했다. 루이의 어머니는 그와의 대화에서 자질에 대해 설명한다. 어머니는 루이를 차남이지만 장남이라 칭한다. 실제로 집안의 장남은 앙투안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쳐나가는 장남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루이가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이는 자유를 갈망한다. 그의 회상에서 그의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마약을 하며 상의를 탈의한 채 푸른 하늘 밑을 마음껏 뛰는 추억에 미소 짓는 것이 루이의 본질이다. 비극적이게도 어머니에게 이러한 사실을 중요치 않다. 이해는 하지 못하더라도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못 뺏는다는 어머니의 말은 루이의 본질보다 그녀가 알고있는 루이가 그녀에게 더 우선시 됨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 앙투안이야말로 부재한 아버지의 역할을 장남으로서 묵묵히 맡아왔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가장 예민하고 거친 모습을 보이는 앙투안이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루이가 집을 나와 자신의 꿈을 펼칠 때 앙투안은 가족 곁에 머물렀다. 루이같은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앙투안은 아버지 없이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며 자기 나름대로의 노력을 그는 이어 나갔다. 그의 주먹에 나있는 거친 상처만으로도 그가 가정을 평범하게나마 유지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앙투안은 루이에게 분노한다. 12년간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고 소리지리는 그이지만 그 내면에 내포한 진정한 의미는 12년간 그들을 왜 떠난 것이냐는 토로이며 루이가 가족을 위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말은 그의 서러움이자 자존심이다. 앙투안은 루이를 가족에게 아무 관심 없는 위선자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루이는 어떤가? 루이가 보는 가족은 완벽히 그들을 대변하고 있을까? 루이는 카트린과 다락방에서 잠시 마주쳤을 때 앙투안이 자신의 험담을 평소에 많이 하지 않았냐고 묻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카트린은 앙투안은 루이의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 또한 앙투안이 자신을 증오하기만 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루이가 보는 가족들 역시 루이가 보는 가족의 단면을 그 나름대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카트린은 영화 내 유일하게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가족 구성원이나 이들에게 일어나는 사실을 가장 객관적으로 포착한다. 또한 그녀가 유일하게 루이의 몸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걸 눈치 챈 사람이란 사실은, 가족에게는 밝힐 수 없는 진실이 때론 외부인에게 가능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동시에 관계에 보완을 위해선 제3자의 개입이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루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특히 앙투안이 어렸을 적 파리를 좋아했으니 자신이 있는 파리로 오라는 루이의 말은 진심이나 평범한 미팅이 있어 급히 가봐야 한다는 거짓말로 루이는 오해를 풀지 못한다. 루이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고 필연적으로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그는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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