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폭력, 복수, 욕망 등을 총망라한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부른다. 얼마 전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린 <펜트하우스> 시즌1이 증명하듯 이미 막장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들어선 예능에까지 막장적 요소가 곁들여지고 있다. '막장의 세계'에선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훅 들어온 '막장'의 요모조모를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말]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 SBS

 
"잔인한 장면 좀 없애주세요. 부자 동네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입시 경쟁은 하지만 살인을 저지를 정도는 아닙니다. (19세 관람가라도) 청소년들도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민설아(조수민) 폭행 장면이 있는데 이거 고등학생 아이들이 보고 다 따라합니다."

최근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게재됐다. 최고 시청률 28.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펜트하우스>를 두고 이런 비판이 적지 않다. 

부동산 1번지, 교육 1번지라 불리는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그린 <펜트하우스>는 학교 폭력, 불륜, 미성년자 감금 등 자극적인 전개와 선정적인 연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민원이 쏟아져 법정제재 처분을 의결했지만 그뿐이었다. SBS는 시청등급을 19세 관람가로 조정했을 뿐, 마지막까지 선정성은 여전했다. 시청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그 덕분에 광고 판매 역시 호조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막장 드라마' 불패 신화가 계속되고 있다. 앞서 <아내의 유혹> <인어아가씨> <조강지처 클럽> 등 불륜, 출생의 비밀, 복수,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로 눈길을 끄는 막장 드라마는 과거부터 꾸준히 사랑 받았지만, 특히 2020년에는 수많은 막장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JTBC <부부의 세계>를 시작으로 <우아한 친구들> <나의 위험한 아내> <복수해라> <펜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한 해 동안 10편가량의 막장 드라마가 제작됐다. 

2020년 우후죽순 쏟아져
 
 <부부의 세계>는 외도와 이혼을 둘러싼 부부의 고통과 내밀한 심리를 매우 잘 묘사했다.

<부부의 세계>는 외도와 이혼을 둘러싼 부부의 고통과 내밀한 심리를 매우 잘 묘사했다. ⓒ JTBC


JTBC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부부의 세계>는 본격적으로 막장 드라마 열풍을 불러온 작품이었다.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부부의 세계>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다.

<부부의 세계>는 극 중에서 민현서(심은우 분)가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하는 신, 지선우(김희애 분)가 남편이 보낸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는 장면 등 과도하고 폭력적인 연출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방영 당시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쏟아졌으나 방송심의위 처분은 행정지도인 '권고'에 그쳤다. 그 사이 드라마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았다. 이후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사가 너도나도 막장 드라마 제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막장 드라마'의 대표 격인 임성한 작가와 문영남 작가의 신작 방영도 예정돼 있다.

황진미 평론가는 지난해 막장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까닭으로 코로나19 여파를 짚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을 지키느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로 몰린다는 것.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황 평론가는 "지금 (코로나 19 여파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스트레스도 굉장히 높다. 모두 다 똑같은 상황인데 누구한테 화를 내겠나. 그런데 막장 드라마에선 주인공들이 엄청난 오욕칠정을 뿜어낸다. 끝까지 가는 공격성을 보여주고 밑바닥을 드러낸다. 시청자를 몰입하기 쉽게 만드는 전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황 평론가는 이러한 막장 드라마를 격투기에 비유했다.

"보통 수사물을 볼 때 우리가 악인에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피해자에 주로 공감하지. 그런데 막장 드라마를 보면 종종 악인에게도 공감하게 만든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데도 통쾌하기도 하고. 사실 격투기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현실에선 격투기처럼 싸울 수 없지 않나. 막장 드라마는 언어로 하는 일종의 격투기 같은 거다. 현실에선 할 수 없는 모진 말을 하고, 경악할 행동을 하는 것. 예를 들면, 막장 드라마에선 김치 귀싸대기를 때린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걸 현실에서 어떻게 하겠나. 김치 국물은 어떻게 처리하겠나. 현실 논리로선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드라마에선 하니까. 그걸 보면서 속 시원하다고 느끼게 된다."

"막장 드라마, 사회 문제를 단순화"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한 스트레스를 막장 드라마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는 분석은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면 막장 드라마의 열풍에 문제는 없을까. 정덕현 평론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막장 드라마의 위험성은 시청자들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막장 드라마는 사람들이 세상을 고구마(시청자를 답답하게 만드는 극적 요소를 목 막히는 고구마에 비유한 인터넷 용어)와 사이다(고구마의 반대. 카타르시스를 주는 요소를 가리키는 말)로만 이해하고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

"막장 드라마는 일반적인 사회의 룰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 부동산 문제, 교육문제를 다루면서 시청자가 '룰을 지키면서 열심히 해봤자 안 돼. 어차피 가진 애들이 다 가져갈 거야'라는 식의 판단을 하게 만든다. 스토리 내에선 복수극이 가능하지만 그저 사적 복수로 끝나버린다.

그리고 사회 문제를 아주 단순화 시킨다. 권선징악으로만 세상을 보면 모든 게 너무나 단순하게 보인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이 있냐,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선의였지만 악의로 발동하게 되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런 복잡한 질문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는 그런 질문들을 다 삭제해 버리고 고구마와 사이다로 단순화해서 권선징악을 보여준다.

<펜트하우스>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이것이다. 룰을 깨트린 것. 룰을 깨트리면 작가가 신이 된다. 펜트하우스 안에서 주민들을 버스에 감금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신이 만든 틀 안에 가둬놓고 보여주기식 사이다를 그리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는 이런 이분법적인 시선을 시청자에게 강요한다."

 
 < SKY캐슬 > 스틸 사진

< SKY캐슬 > 스틸 사진 ⓒ JTBC

 
또한 정 평론가는 막장 드라마 성공 신화에 대해서도 달리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고 해서 좋은 드라마, 성공한 드라마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는 <부부의 세계> < SKY캐슬 >과 <펜트하우스>의 차이를 예로 들며 이를 설명했다.

"막장 드라마가 잘 된다. 이건 달리 판단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시청률이 잘 나온다. 그렇지만 성공한 드라마인가는 다른 문제다. 시청률이 높으면 대부분 그 수치에 경도된다. 시청률이 고공행진이면 좋은 드라마라고 얘기하지만, 시청률은 그것과 상관없이 자극 때문에 높아지는 영향이 더 크다. 자극이 적거나 대중이 원하는 사이다를 분명하게 주지 않은 드라마는 시청률이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사이다가 없다고 해서 나쁜 드라마는 아니다. 이 부분을 혼동해선 안 된다.

<부부의 세계>는 시청률도 높고 자극적인 면도 있었지만 충분히 내적 완성도를 추구한 부분이 있다. < SKY 캐슬 >도 마찬가지다. <펜트하우스>가 < SKY 캐슬 > 설정과 비슷하단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 SKY 캐슬 >은 전반적으로 메시지를 크게 해치지 않고 끝까지 이어나갔다. 물론 자극적인 포인트들이 있었지만 거기에 머무는 게 아니라 사교육에 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면 <펜트하우스>는 자극을 전면에 내세우느라 그런 부분들이 다 없어져 버린 드라마였다. 같은 시청률 결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제재보다 시청자 아우성이 더 효과적"

한편 심의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막장 드라마에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그 때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시청자들의 민원이 쏟아진다. 그러나 방송국에는 별다른 제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 방심위에서 법정제재 조치를 받으면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감점요인이 되지만, 이 때문에 SBS나 다른 방송사들이 재허가를 못받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황진미 평론가는 "방심위 제재는 '특정 장면이 어느 정도 수위를 넘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다소 형식적인 면이 있다"면서 "최근엔 방심위 제재보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저희 기관의 역할에 대해 외부에서 볼 때 시각차가 존재할 수 있다"면서도 "방송심의위는 송출된 방송 내용의 적절성을 심의하고, 방송법과 방송심의규정대로 콘텐츠를 심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주의, 경고, 관계자 징계, 때로는 과징금 등을 내릴 수 있다. 법에서 주어진 직무, 역할 범위 내에서는 가능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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