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남긴 이 한 마디는 어른이 된 기자에게 일종의 위로였다. 연애사는 내가 기억하는 대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쓰라린 첫사랑의 기억이 있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기억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바꿔 말하자면 아프고 지질했던 '흑역사'는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고, 때론 나도 누군가에게 잔인한 사람이었다는 자각이랄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 트리플픽쳐스

 
오는 14일 개봉하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을 보고 나서 뜬금없이 <건축학개론>이 떠오른 건 이 영화 역시 두 남녀의 각기 다른 '연애사'를 다루고 있어서였다. 물론 '건축학개론'에 비하면 스케일(?)은 훨씬 크다.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간을 뛰어넘고 우주로 뻗어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새 로맨스와 판타지를 오가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영화는 우체국에서 일하는 서른 살 여성 샤오치(이패유)의 이야기로 시작해, 어느 순간 베일에 싸인 남자 타이(유관정)의 시선으로 서사를 비튼다. 극 중 타이가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지점이 꽤나 서프라이즈한 반전인데, 이런 그의 존재가 포스터에 떡하니 나와 있다. 포스터가 스포를 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 뭐 치명적이진 않으니 봐주자.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 트리플픽쳐스

 
이야기의 큰 줄기는 거의 '모쏠(모태 솔로)'(로 보이는) 샤오치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성격이 급한 것을 넘어 아예 시간이 남들보다 1초씩 빠르게 흘러가는 샤오치는 우연찮게 만난 한 남자와 '썸'을 키워간다. 본격적으로 썸이 결실을 맺으려던 밸런타인데이, 돌연 그 남자가 사라진다. 아니, 밸런타인데이가 '통째로' 사라진다. 이후 샤오치와 반대로 느려터진(!) 남자 타이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둘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베일에 싸여 있던 샤오치와 타이의 관계를 조명하는 후반부는 판타지적 설정을 감안해도 다소 허무맹랑하다. 시간의 '빈틈' 같은 설정에는 이렇다할 과학적 근거도 충분한 설명도 없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보는 편이 낫다. 그래도 이런 판타지 요소들을 유쾌하게 풀어낸 연출에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 트리플픽쳐스

 
극중 샤오치의 방을 연극 무대처럼 연출한 장면들은 꽤나 독특하다. 라디오를 듣는 샤오치의 방 창가에 DJ 모자이크(이름처럼 실제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다)가 등장한다든가, 옷장 속에서 '개코도마뱀 인간'이 등장하는 식이다. 여기에 후반부 시간을 비튼 장면들은 그로테스크한 상황과 여전히 차분한 타이의 태도가 엇갈려 형언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로맨스와 코미디가 이런 식으로 결합할 수도 있구나 싶다.

<나의 소녀시대> <장난스런 키스> 같은 중화권 로맨스 영화를 좋게 봤다면, <마이 미씽 발렌타인> 역시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인공 샤오치 역을 맡은 이패유의 매력이 상당하다. 허둥대는 말과 행동, 표정 연기는 '척'으로 느껴지지 않아 더 사랑스럽다.

대만 거리와 낡은 아파트, 라디오 등 레트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요소들은 한국 관객에게도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주인공 샤오치를 중심으로 한 비밀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다 보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에는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라.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라는 메시지가 당신에게 가 닿을테니.
덧붙이는 글 이 리뷰는 문화생활 다이어리/리뷰 앱 '봐봐'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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