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영화산업은 놀라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90년대 초반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서울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9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대형 사건이었지만 2019년에는 한 해에만 전국 3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9편이나 나왔다. 특히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개봉 5일 만에 37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지난 2003년 연말에 개봉한 <실미도>가 사상 처음으로 넘겼던 천만 관객 영화도 현재 16편으로 늘어났다. 2편 이상의 1000만 영화를 보유한 감독이 3명(윤제균, 최동훈,봉준호 감독)이나 될 정도. 세계 28위의 인구수를 가지고 있는 한국 극장의 매출은 세계 6위권이고 <어벤져스>같은 할리우드의 대작들이 북미시장보다 국내에서 먼저 선을 보이는 것도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음반 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물론 BTS 같은 글로벌 아이돌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미들의 힘으로 많은 음반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제 시내 대형서점이 아닌 동네 레코드 가게는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겨울에 한 번, 그리고 가을에 한 번 음반을 발표해 400만 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던 '음반 깡패'가 있었다. 바로 이 시대의 '마지막 음반황제' 조성모가 그 주인공이다.

대형 뮤직비디오로 먼저 유명해진 얼굴 없는 가수
 
 앨범자켓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신인가수 조성모의 외모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았다.

앨범자켓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신인가수 조성모의 외모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았다. ⓒ 스톤 뮤직 엔터테인먼트

 
조성모하면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하지만 사실 조성모는 댄스가수 준비생이었다. 남자 셋, 여자 하나로 구성된 그룹의 이름은 '사천사'였다. 하지만 조성모는 이후 팀에서 나왔고, '가요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던 GM기획(현 코어콘텐츠미디어)의 김광수 대표에게 발탁돼 발라드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조성모는 1998년 9월 데뷔앨범을 발표했지만 뮤직비디오만 공개했을 뿐 한동안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콘셉트'를 유지했다. 이병헌과 김하늘, 허준호, 조민수, 정웅인 등이 출연하는 조성모의 데뷔곡 < To Heaven >의 뮤직비디오는 애절한 스토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 가요계에서는 한동안 스토리 라인이 들어있는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가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의 인기와 달리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조성모의 외모에 대해서는 많은 소문이 돌았다. 1998년 10월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통해 얼굴을 공개한 조성모는 귀여운 미소년에 가까웠다. 특히  조성모의 미성은 곡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조성모는 단숨에 1998년 최고의 신인으로 떠올랐다.

조성모는 이병헌과 황수정, 김승우, 김정은 등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불멸의 사랑>까지 크게 히트시키며 1998년 SBS <가요대전>과 KBS <가요대상>의 신인상을 휩쓸었다(2부작으로 제작된 <불멸의 사랑> 뮤직비디오의 완성도는 < To Heaven >을 뛰어 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성모 1집은 무려 136만장(이하 한국음악 통계연감기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데뷔 앨범으로는 조관우 1집(146만장)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99년에 발표한 2집에서도 <슬픈 영혼식>을 크게 히트시키며 무려 211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조성모의 2집 타이틀곡 <슬픈 영혼식> 역시 뮤직비디오에 신현준과 최지우, 정준호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특히 1집에서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지 않았던 조성모가 <슬픈 영혼식>에서는 직접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신현준의 사고뭉치 동생을 연기했다.

조성모는 2집 앨범을 통해 1999년 KBS <가요대상>과 MBC < 10대가수가요제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새천년이 밝은 후에는 2.5집 형식의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이 또 163만장이 팔리는 대박을 치면서 '조성모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특히 시인과 촌장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타이틀곡 <가시나무>는 오늘날까지도 조성모 모창의 교본처럼 쓰이고 있다.

베트남 올 로케 <아시나요>와 강동원 출연한 <다짐>
 
 조성모는 노래 만큼 뮤직비디오에 많은 투자를 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조성모는 노래 만큼 뮤직비디오에 많은 투자를 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 스톤 뮤직 엔터테인먼트

 
데뷔 앨범부터 리메이크 앨범까지 3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신승훈의 뒤를 잇는 '4대 발라드 황제'로 자리잡은 조성모는 2000년 여름 발매를 목표로 3집 앨범을 준비했다. 조성모와 함께 많은 히트곡을 배출했던 작곡가 이경섭과 조성모의 호흡은 더 이상 검증이 필요 없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3집 작업을 마무리할 때 즈음 가요계를 강타한 놀라운 소식이 들려 왔다. 바로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컴백이었다.

1996년 1월 갑작스런 은퇴선언 이후 한 장의 솔로 앨범만 발표했을 뿐 한 번도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서태지의 컴백은 가요계 전체를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조성모와 김광수 대표 역시 3집 앨범 발표시기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3집 앨범의 완성도에 자신감이 있었던 조성모는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그렇게 조성모의 3집 앨범은 <울트라맨이야>가 들어 있던 서태지 솔로 2집보다 8일 먼저 발매됐다.

결과적으로 조성모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조성모 3집은 발매 4일 만에 100만장을 돌파하며 음반시장을 선점했다. 조성모와 서태지의 음반시장 맞대결은 언론과 호사가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지만 사실 당시 조성모와 서태지는 팬층이 중복되지도 않았고 둘 모두 워낙 '거물'이었던 만큼 애초에 서로의 음반발매시기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조성모는 3집에서도 뮤직비디오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베트남 현지에서 올 로케로 무려 15억 원을 투자한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는 지금까지와 달리 인기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3집 타이틀곡 <아시나요>의 뮤직비디오에는 조성모가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배우 신민아가 조성모와 멜로 연기를 펼쳤다. 그나마 대중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배우는 '쌍준호(정준호, 허준호)' 정도였다.

<아시나요> 뮤직비오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용사들과의 마찰이 있었지만 수정 작업을 거쳐 이상 없이 공개됐고 뮤직비디오 자체의 완성도 또한 한 편의 전쟁영화를 보는 듯했다. 특히 베트남 소녀를 연기한 신민아는 <아시나요> 전후로 이승환의 <당부>, 브라운 아이즈의 < With Coffe > 뮤직비디오에 차례로 출연하며 '뮤비 여신'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3집의 후속곡은 데뷔 전 조성모의 노래 선생님으로 알려진 정재욱 1집에 수록된 곡을 리메이크한 <다음 사람에게는>이었다. 다소 투박한 느낌의 원곡과 달리 깔끔한 가성으로 고음을 처리한 조성모의 기교와 세련된 편곡이 돋보이는 곡이다. 전주와 간주에 들어가는 내레이션 역시 다수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연기경험(?)을 쌓은 조성모가 한결 애절하고 능숙하게 표현해 냈다.

<다음 사람에게는>은 이미연과 류시원이 출연하는 대형 뮤직비디오와 슬픈 가사, 애절한 멜로디가 조화된 전형적인 조성모표 발라드다. 메가히트를 기록한 <아시나요>의 후속곡으로 활동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조성모는 <다음 사람에게는> 활동을 조금 일찍 끝내고 활동곡을 남성적인 댄스곡 <다짐>으로 바꿨다. 

여성듀오 비비 1집에 실린 <최후의 선택>(비비 1집의 프로듀서 역시 이경섭이다)을 개사해 리메이크한 <다짐>은 핑클 3집, H.O.T. 5집 등과 활동시기가 겹치면서 활동 당시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진 못했다. 하지만 "빠라밤빰빰빠밤 빠라밤빰빰빠밤 빠라밤빰빰빰빰빰빰빰"으로 시작되는 전주와 재킷 옷깃을 흔드는 안무가 국민적인 화제를 일으키면서 '발라드 황제' 조성모에게 소중한 댄스곡 히트넘버를 만들어줬다.

조성모는 연초에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으로 163만장, 가을에 발표한 3집으로 214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2000년 한 해 동안 무려 377만 장의 앨범을 팔았다. 조성모는 2000년 SBS <가요대전>과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데뷔 3년 만에 지상파 3사를 포함해 주요 연말 시상식의 대상을 6개나 휩쓴 것이다. 조성모는 2000년을 '조성모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압도적인 성과를 올렸다.
 
5연속 100만 장을 팔아 치운 음반 시대 '마지막 황제'
 
 조성모는 연초에 출연한 <전설의 무대 - 아카이브K>에 출연해 4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외모를 뽐냈다.

조성모는 연초에 출연한 <전설의 무대 - 아카이브K>에 출연해 4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외모를 뽐냈다. ⓒ SBS 화면 캡처

 
조성모는 2001년 4집 <잘가요 내사랑>을 통해 134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음반시장의 마지막 호황기를 함께 했다(<잘가요 내사랑>의 뮤직비디오에는 배용준과 이나영이 출연했다). GM기획으로부터 독립한 2003년에 발표한 5집 <피아노>는 음반 판매량이 40만장으로 뚝 떨어졌지만 1999년과 2000년에 이어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 통산 세 번째로 대상을 수상했다.

2004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 OST <너의 곁으로>와 2005년 6집 < Mr.Flower >로 활동한 조성모는 2006년 3월 공익근무요원(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조성모는 2010년 데뷔 후 처음으로 용감한 형제가 만든 댄스곡 <바람 필래>를 타이틀곡으로 활동했지만 만족스런 성과를 올리진 못했다.

그럼에도 조성모가 무려 데뷔 후 5장 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대한민국 발라드의 '음반 황제'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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