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만난다. 그것도 방송을 통해 그 재회가 낱낱이 공개된다. 이토록 아찔하고 과감한 설정은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방송이었던가. 도발에 기꺼이 넘어간 시청자들은 TV조선에 첫회 시청률 8.995%(닐슨코리아 기준)의 높은 시청률을 안겼다. 그리고 2회에서는 9.288%라는 숫자로 잔뜩 기를 세워주었다. 

최대치의 관음을 자극하며 출발했던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야기했던 논란에 비해 나름 순탄한 흐름을 보였다. 물론 선우은숙이 이영하에게 과거의 서운함을 토로하면서 자신을 괴롭혔던 배우를 언급해 그의 실명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최고기와 장모 간에 패물을 둘러싼 대립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등 과한 설정이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보나마나 막장일 것이라는 애초의 선입견은 상당히 빗나갔다. 

적어도 <우리 이혼했어요>는 '이혼(한 사람들)은 실패(자)가 아니다'라는 주제의식을 설파하는 데 성공했다. 선우은숙-이영하는 이혼 후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박재훈과 박혜영은 부부 관계는 끝났어도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이하늘과 박유선은 이혼 후에 오히려 더 애틋한 사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한 장면.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한 장면. ⓒ TV조선

 
'우이혼'이 경계해야 할 점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뿌리내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이혼했어요>가 안심할 단계는 결코 아니다. 아직까지 고작 7회가 방송됐을 뿐이다. 여전히 불안 요소가 많고, 경계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우선, 편성을 바꾼 선택은 상당히 모험적이었다. 금요일 저녁이라는 안정적인 시간대를 버리고 뛰어든 '월요일 밤 10시'는 포화 상태라고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KBS1 <가요무대>(7.4%)를 필두로 JTBC <싱어게인>(6.241%), SBS <동상이몽 2>(6%), KBS2 <개는 훌륭하다>(5.2%)까지 탄탄한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우리 이혼했어요>가 6.442%를 기록하며 경쟁 프로그램들을 앞서 나가긴 했지만, 8%대를 기록하고 있던 기존의 시청률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편성보다 중요한 건 아무래도 방향성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현실 속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 놓으며 '드라마'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별다른 저항 장벽 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또,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이혼 부부를 등장시켜 폭넓은 시청층을 흡수한 점은 영리했다. 공감의 영역이 굉장히 넓고 깊은 편이다.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한 장면.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한 장면. ⓒ TV조선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한 장면.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한 장면. ⓒ TV조선

 
시청자들은 각각의 이혼 부부가 꺼내놓은 사연에 감정이입했다. 결혼 생활에서 겪었던 갈등,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이혼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 이혼 후에도 남겨진 문제 등은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가령, 딸 솔잎이에게 "절대 너를 떠난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하는 유깻잎의 안타까움이 현실이라는 걸 알기에 시청자들은 기꺼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찰 예능이 겪는 '과유불급'이라는 고질병이 <우리 이혼했어요>에서도 재현될 조짐이 보이는 건 우려스럽다. 이를테면 방송 분량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에피소드를 짜내는 것 말이다. 예민한 시청자들은 그 연출을 눈치채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미 들려줄 이야기를 충분히 한 출연자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프로그램의 기존 취지나 진정성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찰 예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SBS <미운 우리 새끼>나 MBC <나 혼자 산다>는 초심을 잃고 '그들만의 세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연출된 일상과 이벤트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알량한 시청률이 제작진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씁쓸한 일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도 마찬가지이다. 선우은숙-이영하의 경우 초반에 엇갈린 반응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하지만 이후 서로 진솔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혼 후의 가족'이라는 생각거리를 제시했다. 노년의 동반자로 늙어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충분히 곱씹어볼 만했다. 하지만 다음 회 예고편은 또 다시 과거의 일이 언급되면서 갈등을 불거질 것을 알렸다. 

서운하다는 선우은숙과 몰랐다는 이영하의 입장 차이는 이미 봤던 구도인데, 다음 회에서 똑같이 재현되는 셈이다. 선우은숙은 고소까지 당했다며 분개했는데,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또 한 번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최고기는 제작진을 따로 만나 술을 마시며 재결합에 대한 의사를 전달했는데, 유깻잎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작진은 상황을 마련하기 위해 애쓸 것으로 보인다. 

적당한 시기에 하차하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출연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론 당사자들에게 그런 판단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새 판을 짜는 것보다 기존의 익숙한 그림을 끌고 가는 게 수월하다. 검증된 출연자들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곧 고갈되기 마련이고, 그 후에 남는 건 억지뿐이다. 순환은 불가피하다.

<우리 이혼했어요>가 억지스러운 극본과 무리한 연출로 피로도 높은 장편 드라마를 찍기보다 내실 있는 미니 시리즈를 기획하는 쪽을 선택하길 바란다. 힘만 있다면 단막극도 괜찮으리라. 시청자가 바라는 건 공감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이지 질질 끄는 막장극이 아니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우리 이혼했어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