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포스터. ⓒ 넷플릭스

 
미국의 극작가 오거스트 윌슨은 한국에선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그의 작품이 번역된 적이 없는데다,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또한 한 번도 정식으로 개봉한 적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의 위상은 '현대 미국 연극계의 셰익스피어'라는 한마디로 충분하다.

그는 1945년 피츠버그 흑인촌 빈민가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10대 후반에 백인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이사해서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그의 양육에 손을 떼다시피 해서 어머니 손에서 컸다고 한다. 

시인으로 데뷔해 극작가의 길을 걸었던 오거스트 윌슨은 1982년 <지트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후 1987년 퓰리처상과 토니상 그리고 1990년 다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레전드의 길을 걷기에 이른다. 그는 장대한 10편의 희곡 연작 일명, <세기 연작>으로 유명한데 20세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을 10년씩 기록했다. 반복되는 주제는, 미국 흑인들에게 대대로 이어지는 노예제의 지속적 영향이었다. 작품은 말한다. '미국은 너희의 것이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게 미국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의 미래다'라고 말이다. 

오거스트 윌슨의 작품들은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지난 2016년 덴젤 워싱턴이 연출하고 덴젤 워싱턴과 비올라 데이비스가 열연한 <펜스>가 있다. 덴젤 워싱턴과 비올라 데이비스는 2010년에 동명의 연극으로 사이 좋게 토니상을 수상한 적이 있고, 비올라 데이비스는 이 영화로 미국·영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석권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엔 덴젤 워싱턴이 제작에 참여하고 비올라 데이비스가 주연으로 활약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관객들과 만났다. 

2018년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의 여정

미국이 오거스트 윌슨을 기리는 방법은 비단 계속 극장에 걸리고 제작되는 연극과 영화뿐만이 아니다. 오거스트 윌슨 극장을 세운 건 물론, 오거스트 윌슨이 숨진 2005년 이듬해부터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를 열었다. 전국 열두 개 도시에서 수천 명의 학생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기 위해 <세기 연작> 10편 중 1편의 특정 장면을 독백 연기한다. 지역 예선 및 결선을 거쳐, 각 도시에서 2명씩만 브로드웨이의 전국 결선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오거스트 윌슨 작품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비올라 데이비스는 총괄제작을 맡아 '2018년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의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이 그 작품으로, 비올라 데이비스뿐만 아니라 오거스트 윌슨 작품에 깊이 관계돼 있는 덴젤 워싱턴과 스티븐 헨더슨이 인터뷰이로 나서 작품에 힘을 불어넣었다. 

작품은 6명의 참여 학생을 택해 그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려주는데, 시카고의 니아와 프리덤과 코디, 로스엔젤레스의 헤라르도, 댈러스의 캘리, 애틀랜타의 에런이 주인공이다. 멕시코 출신의 히스패닉계 헤라르도를 제외하곤 5명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연극에 관심을 갖고 무대에 발을 붙이게 되었다. 

흑인에의 진심과 애정 어린 메시지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은 오거스트 윌슨의 작품 세계를 너무 깊지 않게, 그의 작품을 다수 연출했던 연출가와 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배우자와 세 명의 배우가 적절히 의미와 의의를 설명한다. 그들은 또한 이 작품의 메인인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에 대해,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을 향해 진심 어린 조언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와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이다. 

하여, 메마르지도 말랑말랑하지도 진중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균형 잡힌 다큐멘터리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오거스트 윌슨과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는 물론 미국 연극계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젊은이들의 삶과 생각까지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와중에,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게 있다면 '흑인'이라고 하겠다. 시종일관 잃지 않는,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진심과 애정 어린 메시지들 말이다. 

오거스트 윌슨의 작품에서 빚어진 풍부한 의의들은, 비올라 데이비스와 덴젤 워싱턴과 스티븐 헨더슨이라는 연극·영화계의 거장이라 할 만한 이들을 통해 보다 풍성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누군가 그들이 아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서 글을 썼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 안의 문제는 지금도 다를 바가 없죠.'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영혼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들은 배우와 연기에 대한 진지하고 적확한 조언을 전하기도 한다. '배우는 관찰자이자 도둑이에요.' '연기는 저를 구해 준 셈이죠.'

소외 당하고 외면 당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이를 향하다

작품을 보다 보니 일련의 여정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오거스트 윌슨'이라는 거대한 산을 굳이 넘으려 하지 않고, 그 거대한 우산 속에서 힘을 기르고 비축하곤 그 거대한 산과 함께 움직여 흑인의 힘을 만천하에 떨치고자 하려는 것 같았다.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흑인의 영향력을 하나로 뭉쳐 더 이상 멸시받지 않고 합당한 목소리를 내며 진정한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바람이 진하게 묻어 났다. 

특이할 만한 점은, 2018년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 전국 결선의 우승자가 다름 아닌 히스패닉계 헤라르도였다는 것이다.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만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는 점이 크게 와 닿았다. 소외 당하고 외면 당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불평등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대회라는 천명에 다름 아니다. 판이 커진 느낌이랄까. 정치적 구호도 아니고 한쪽 편만 들지 않는 범사회적 사회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고 보면, 오거스트 윌슨도 흑인'만'의 피가 흐르고 있진 않으니 말이다. 

<우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에서 '우리'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목소리'가 오거스트 윌슨을 향한다면, '우리'는 흑인을 포함한 소외 당하고 외면 당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모든 이를 향한다. 아니, 향해야 하겠다. 거기까지 나아간 이 작품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비록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선 오거스트 윌슨의 형편 없는 인지도와 영향력에 비례한 인기를 얻겠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그들을 위하는 게, 곧 우리를 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진실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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