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쉘 바스키아

장 미쉘 바스키아 ⓒ 롯데 뮤지엄


지난해 10월 8일부터 롯데 뮤지엄에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2월7일). 장 미쉘 바스키아는 이제 현대 미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듣게 되는 화가다. 물론 그것보다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유명 화가'라고 하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영웅'이라 칭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등장하여 겨우 8년이라는 짦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쏟아낸 스타 작가다. 그리고 그 짧은 작품 활동 기간은 그가 유색인종으로서 인종 차별적 시선에 저항한 시간들이기도 하다. 

낙서와 같은 문구와 현대 문화의 아이콘 같은 이미지들로 가득한 그의 작품에는 저항적 메시지가 다분하다. 전시회 작품 중 가장 가격이 비싸다는 작품엔 해부도 속 인물과 같은 인간과 소가 그려져 있다. 바스키아가 그린 동물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유색인종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그가 그린 피흘리는 예수는 그와 같은 피부빛깔을 갖고 있고, 당대 최고의 야구 선수 행크 아론은 역시나 그와 같은 유색 인종의 영웅으로 작품 속에 등장한다.

전시회에서 바스키아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한 자리에 모여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바스키아는 모두 백인인 동료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의 속 마음까지 그랬을 거라 보기 어렵다. 그가 가장 믿고 따랐다던 앤디 워홀조차 그에게 너무 그렇게 인종적 차별에 민감한 그림에 천착하지 말라고 말렸다고 하니, 그럴 수록 젊은 바스키아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더해갔을 것이다.

바스키아는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그가 그려준 그림이 단 일주일 만에 화랑에 비싼 가격에 전시되는 스타 화가였고 전용비행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도 쌓았지만, 1980년대 미국에선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유색인종이었다. 

1920년대의 흑인 청년의 좌절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넷플릭스

 
1980년대의 흑인 청년이 그럴진대, 1920년대를 살아간 흑인 청년이 느낀 사회적 좌절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또 다른 흑인 청년의 좌절을 그려낸다. 

영화를 여는 건 '블루스'다. 마치 한국의 민요가 우리 고유의 '한'이라는 정서에 기반을 둔 것처럼 음악 장르로서의 블루스는 노예로 살아가던 흑인들의 '한'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킨 장르다. 마 레이니(비올라 데이비스 분)는 바로 그런 흑인들의 한을 구현하는 블루스 장르의 대표적 가수다. 첫 장면에 선보인 그녀의 솔(soul) 넘치는 음악에 흑인 관중들은 영혼이 정화됨을 느낀다. 

그런 블루스의 대표적 가수 마 레이니가 음반 녹음을 위해 대표적인 북부의 도시 시카고에 등장한다. 트럼펫 연주자 레비(채드윅 보스먼 분)는 마 레이니의 연주를 위한 세션의 한 사람으로 동행한다. 

마 레이니를 비롯하여 세션들이 지나는 시카고 거리엔 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백인이다. 백인들은 그들을 마치 범법자 대하듯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먼저 도착한 세션들은 녹음이 예정된 공간이 아닌 창고같은 지하 공간으로 안내받은 뒤 음반에 필요한 음악을 맞춰보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들의 동선만으로도 1920년대 흑인들이 처한 사회적 위치를 절감할 수 있다.  

오거스트 윌슨이 쓴 동명의 연극을 토대로 만든 작품답게 영화는 지하의 세션 연습장과 마 레이니의 동선을 따라 오가며 소동극처럼 진행된다. 호텔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녹음실에 이르기까지 마 레이니는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자신의 유명세를 내세워 갖가지 해프닝을 벌인다. '몽니'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때로는 말이 되지 않는 요구들을 내세우며 녹음 작업을 지연시킨다. 하지만 그런 마 레이니의 '몽니' 저변에 깔린 건 백인들이 자신을 블루스의 여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불편한 자의식이다. 

그렇게 마 레이니가 벌이는 해프닝과 함께 지하 녹음실을 중심으로 피아노와 트럼펫,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세션들 사이에 말의 향연이 벌어진다. 그 중심에는 늙수그레한 다른 세션들과 달리 아직 젊은, 그래서 마치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 어울릴 법한 태도로 일관하는 청년 '레이'가 있다. 

자신의 곡을 음반사에 선보인 레이는 한 마디로 눈에 뵈는 것이 없다. 자신의 악보가 마 레이니보다 잘 나갈 것이란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는 선배 세션들을 깔보며 마 레이니의 세션이 아닌 자신만의 악단을 꾸려 승승장구할 것이라 장담한다. 마 레이니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 스타일의 음악으로 녹음을 할 것을 제안하는 등 자신감이 넘치는 레이와 선배 세션들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영화는 마 레이니라는 여가수의 녹음실 해프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1920년대 흑인들의 현실을 토로한다. 선배 세션들과 레이는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운다. 하지만 이내 선배 세션들은 백인들에 의해 부모님을 잃은 레이의 슬픈 과거를 알게되고 동지애를 느낀다.

나이도, 취향도, 다루는 악기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차별받은 유색인종이라는 지점에서 '블루스'의 정서같은 깊은 상실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영화 초반 그저 '나대는 것'처럼 보이던 레이의 '조증'이 영화가 진행될 수록  밟히고 싶지 않은 한 흑인 청년의 자기 방어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동지애는 마 레이니의 녹음 현장에서 무력하다.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한껏 대접받고자 하는 마 레이니의 횡포에 가까운 녹음 작업에서 '튀어나온 못'과도 같던 레이는 결국 소외되고 주어진 기회마저 잃게 된다. 새 구두를 사고 자신의 악보만 팔면 이제 고생 끝, 연주자로서 승승장구할 거라던 청년의 조급한 꿈은 단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져버린다. 순식간에 모든 걸 잃은 청년의 분노는 동료는 물론 자신을 자멸의 길로 이끈다.

녹음실의 해프닝으로 채운 영화는 그 안에 흑백 차별이 여전한 1920년대 사회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리고 번듯한 듯하지만 저마다 차별과 상실의 아픔을 안은 채 살아가는 흑인들의 내면을 보여준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흑인과 흑인 사이의 다시 갈라진 벽은 결국 한 청년의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의 후반부, 단돈 2달러 헐값에 팔라던 레이의 악보는 백인 뮤지션에 의해 녹음된다. 그 모습은 과거 8년 동안 흑인의 존재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던져 싸웠던 바스키아의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작품으로 미술 애호가들 사이를 풍미하는 현재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늘 흑인 인권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던 채드윅 보스먼의 유작이기도 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여전히 신산했던 1920년대 추락한 흑인 이카루스의 삶을 그려낸다. 

영화 속 레이, 그리고 바스키아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흑인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존재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했다. 그리고 그들은 생애 내내 몸으로 체감했던 차별적 삶에 날카롭게 반항하다 자신을 산화시킨다. 청년, 젊은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만 사회는, 그리고 시선은 그들의 열망을 불태워버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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