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이 사람 뭐지?'

정말 아리송했다. JTBC 수목드라마 <런온>의 선겸(임시완)의 마음은 도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삶을 포기라도 한 듯 자기 자신에게는 무심한 사람이, 타인을 돕는 데는 열정을 보이고, 무표정한 얼굴에 슬픔과 연민이 묻어나는 눈빛을 품고 있다. 지금까지 방송된 6회 내내 선겸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드라마 속 다른 인물들이 선겸을 만나서 갖는 그 감정. '어딘지 재수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끌리는'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자기 자신이 스스로도 답답했는지 선겸은 6회 "내 인생인데도 내가 사랑한 것들 중에 왜 나는 없을까?"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선겸은 그 후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세 끼를 잘 차려 먹으며, 육상 꿈나무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그의 독백과는 달리, 그가 보여주는 소소한 행동들은 타인과 스스로를 아끼는 모습이었다.
 
정말 선겸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자신을 포기한 사람이 타인을 위해 애쓰는 게 과연 가능한 걸까? 선겸의 아리송한 마음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본다.
 
가족마저 '도구화' 하는 아버지
 
 화목마저 연출하는 선겸의 가족은 아버지 정도의 야망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화목마저 연출하는 선겸의 가족은 아버지 정도의 야망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 JTBC

   
극 중 선겸의 누나인 은비(류아벨)가 종종 말하듯 선겸은 일명 '콩가루 집안'에서 성장했다. 현직 국회의원이자 대권을 꿈꾸는 아버지 정도(박영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가족들을 '활용'할 생각만 하는 인물이다. 창던지기를 하던 선겸이 어깨를 다쳤을 때 "어깨는 하자 생겨서 못 써먹겠네. 다리는 멀쩡하니까 축구로 전향하면 되겠네"(4회)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만큼 자식마저 도구화한다. 심지어 그는 이를 사랑이라 굳게 믿는다. 이런 아버지가 권위로 짓누르는 집안에서 선겸의 가족들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는커녕 각자가 숨 쉴 구멍을 찾는 것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어머니 지우(차화연)는 배우로서의 일에 열정을 쏟으며 숨 쉬고자 하고, 선겸의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가족 구성원인 은비는 줄곧 해외에 머물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쓴다. 이런 가족을 둔 선겸에게 늘 텅 비어 있는 집은 마음과 몸이 머무는 '집'이 아니라 그냥 '하우스'일 뿐이다. 선겸이 '집이 있는데도 집이 없다'고 여기며 호텔에 머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가족마저 '도구' 취급하는 정도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정도는 선겸의 통역을 맡기로 한 미주(신세경)에게도 너무나 당당하게 돈을 건네며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줄 것을 요구한다. 아마도 정도는 이런 식으로 늘상 사람들을 조종했을 것이고, 선겸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돈과 힘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주무르는 모습을 목도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선겸이 추구하는 가치
 
이런 가정에서 자란 선겸은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게 됐을까? 부모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많은 경우 자녀들은 부모의 가치관을 내사하거나, 혹은 그 가치가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모가 추구하는 가치가 자신에게 심한 불편감을 안겨주었을 때, 혹은 타인이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을 때, 부모의 가치와 반대되는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선겸은 후자에 속한다. 스스로가 아버지의 권력과 부에 의해 착취당한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양심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돈과 권력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는 아버지와 그로 인해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때문에 선겸은 아버지가 추구해온 것과는 반대인 '정의로움'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삶'을 가치로 설정한다. 또한, 자신처럼 짓눌린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키워간다. 2회 "제가 되고 싶은 것은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입니다"라는 선겸의 발언은 자신의 가치를 명료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심리학에서 '가치'는 한 개인이 평생토록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추구하는 것으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실천할 때 내가 '나답다'고 여기며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선겸이 간직한 연민에 기반을 둔 '정의'와 '원칙을 지키는 삶'이라는 가치는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가치들을 실천하려 할 때마다 자신의 가치와 완전히 반대되는 아버지의 가치가 이를 막아선다. 아버지는 선겸이 스스로 공정하게 노력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뒷돈'과 '권력'으로 해결해버린다.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아버지의 힘 안에서 선겸은 자신의 가치를 실천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욕구도 가치도 마음대로 추구할 수 없게 된 선겸은 이제 스스로에게 무감각해지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 무엇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 '느끼는 것' 자체가 더 큰 무력감을 유발하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아예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 그는 4회 선수촌 구내식당서 만난 한 선수의 말대로 '노잼'으로 살아간다. 한때 선겸을 좋아했었다는 그 선수는 선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를 좀 말해주고, 나눠주고 살아. 좋은 거 싫은 거 먹고 싶은 거 그래야 유잼되지." 자신에게 무감각해져 버린 선겸의 상태를 매우 잘 표현한 대사였다.
  
 선겸은 '달리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 애쓴다.

선겸은 '달리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 애쓴다. ⓒ JTBC

 
타인을 향한 가치실천

 
하지만 한 개인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쉽게 포기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선겸은 자기 자신의 삶에는 무감각한 채 있지만, 타인의 삶에서 부당함을 발견했을 때는 거의 자동적으로 '공정'을 실천하기 위해 나선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미주가 길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1,2회), 텅 빈 집의 마당에 길 고양이가 들어왔을 때(6회) 지나치지 않고 나서서 도움을 주는 선겸의 모습은 약자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정의로움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의 가치가 발휘된 장면들이었다. 육상 꿈나무들을 진심으로 돕는 것 역시 그가 가치를 실천하는 사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연민에 기반한 정의의 실천은 선배들에게 줄곧 폭행을 당해온 후배 우식(이정하)을 돕는 것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메달을 따서, 담배를 안 사다 놔서, 비가 와서, 돈은 없을 수 있는데 부모님까지 없어서' 매일 맞고 사는 우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참다보니 괜찮은 것 같다'는 우식에게 폭력이 부당하다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우식을 폭행한 그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선겸은 폭력을 쓴 이유에 대해 "나도 처벌받았으니까 너 때린 걔네들도 처벌받을 거다"(3회)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즉 원칙과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선겸의 폭력행사는 우식을 위한 행동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고통에 익숙해진 우식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우식을 괴롭힌 후배들에 대한 분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도 연결된다. 때문에 그는 '인생에서 처음 스스로 한 선택'인 달리기를 내려놓을 각오로 덤벼든다. 우식을 구하기 위해 나선 건 어쩌면, 그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특권'을 포기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선겸은 미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차츰 알아간다.

선겸은 미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차츰 알아간다. ⓒ JTBC

 
이처럼 선겸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애써온 사람이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몸부림이고 결국 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선겸은 그 누구보다 열렬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겸이 그토록 아리송했던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인하는 그의 태도가 모순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선겸만이 아니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종종 자신의 마음 상태와 행동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도 모호하고, 타인에게도 모호한 존재로 비쳐진다. 내가 내 마음 상태에 귀를 기울이고, 선명하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 타인과도 선명하게 관계맺을 수 있는 법이다. 
 
6회 말미 선겸은 술에 취해 "나 좀 좋아해줘"라고 말하는 미주에게 "그건 이미 하고 있는데"라고 답한다. 미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가 미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듯,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의 마음 또한 알아가길, 이를 통해 보다 선명하게 존재하고 관계 맺어가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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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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