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우울하게 새해를 맞은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희망을 품게 된다. 가요 팬들에게 1월은 마냥 신나고 희망찬 달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6년 1월 6일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하는 시인', '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김광석은 짝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했지만>, 입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등병의 편지>, 이별하는 연이들에게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30대가 되는 청년들에게는 <서른 즈음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같은 노래를 통해 대중들의 감성을 촉촉히 적셨다. 지금도 대구 대봉1동 일대에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이라는 거리가 조성돼 있어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광석이라는 대형 가수가 세상을 등졌고 1월 말에는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선언까지 이어지면서 1996년 가요계는 연초부터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리고 이 때문에 1996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한 신예 가수의 안타까운 죽음은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만 19세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2장의 앨범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서지원 이야기다.

여성 팬들 모성애 자극하던 '춤추는 발라더' 서지원
 
 서지원은 김원준과는 다른 여린 이미지로 많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다.

서지원은 김원준과는 다른 여린 이미지로 많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다. ⓒ 양형석

 
1990년대 초반 가요계를 대표하던 최고의 '꽃미남 가수'는 단연 김원준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휩쓸고 간 1992년, 김원준은 선배의 소개로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해 의류 브랜드 모델을 거쳐 10월 곧바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김원준이 오디션 합격부터 가수 데뷔까지 걸린 시간은 단 45일. 길게는 5년 이상 연습생 생활을 거치는 게 흔해진 현재의 아이돌 시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빠른 데뷔였다. 

김원준은 1집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를 시작으로 2집 <언제나>, 드라마 <창공>의 OST였던 <세상은 나에게>, 3집 <너 없는 동안>, <짧은 다짐>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남자 솔로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팬층의 대부분이 10대 여학생에 몰려 있다는 점 때문에 김원준의 음악성이 평가절하될 때가 많지만 사실 김원준은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하던 싱어송라이터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성공사례가 나오면 이를 따라하는 '아류'들이 등장하는 법이다. 김원준이 '꽃미남 가수' 성공의 모범사례가 되자 김원준의 소속사에서는 1995년 비슷한 느낌을 가진 또 한 명의 꽃미남 가수 박지원을 데뷔시켰다. 박지원은 <느낌 만으로>라는 데뷔곡으로 비교적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지나치게 김원준의 길을 벤치마킹한 탓에 '리틀 김원준'의 이미지를 벗을 만한 자신만의 개성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1994년 10월 또 한 명의 잘 생긴 솔로 가수가 데뷔했다. 사람들은 또 다른 '김원준 아류'가 등장했다며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김원준과는 다른 개성이 있었다. 재미교포 출신으로 UC 버클리 심리학과 특례 입학까지 미루고 가수가 되기 위해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서지원이었다. 서지원은 4개 월의 연습 기간과 3개월의 녹음을 마친 후 초스피드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짙은 쌍커풀에 남성적인 미남형인 김원준이 무엇이든 잘 챙겨 줄 거 같은 잘생긴 동아리 선배 이미지였다면 183cm의 훤칠한 키와 달리 여리여리하고 곱상한 외모의 서지원은 보호해 줘야 할 거 같은 연하남 이미지였다. 데뷔곡 <또 다른 시작> 역시 발라드곡 임에도 안무가 들어 있는 것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물론 서지원 전에 유영진이 <그대의 향기>라는 R&B곡을 부르며 격렬한 춤을 춘 적도 있었다).

서지원은 오태호가 작사, 작곡한 데뷔곡 <또 다른 시작>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후 댄스곡 <사랑, 그리고 무관심>으로 활동하며 성공적으로 1집 활동을 마쳤다. 서지원은 예능 활동을 병행하면서 2집 앨범을 준비했는데 서지원 2집에는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대거 앨범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팬들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1996년 새해 첫 날 대중들이 접한 소식은 서지원의 2집 앨범 발매가 아닌 그의 충격적인 죽음이었다. 

한층 성장한 보컬이 빛나는 서지원의 유작
 
 서지원 2집은 서지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활동했어도 큰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서지원 2집은 서지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활동했어도 큰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 지니뮤직

 
서지원은 1996년 새해 첫 날 "새 앨범 활동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자신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 11월 20일 듀스의 김성재가 세상을 떠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서지원의 죽음이 곧바로 이어진 김광석의 죽음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선언이라는 대형사건들에 묻혀 사람들의 기억에서 비교적 빨리 잊혔다는 점이다.

서지원의 유작이 된 2집 'TEARS'는 1월 22일 예정대로 발매됐다. 서지원 2집의 자켓에는 "저를 기억해 주시고 노래 많이 사랑해 주세요"라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이미 그가 세상에 없는 상황에서 이런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서지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2집 활동을 했다면 서지원은 신승훈과 조성모 사이를 잇는 발라드의 새 왕자로 등극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서지원 2집은 훌륭한 앨범이었다는 뜻이다.

서지원 2집의 타이틀곡은 <내 눈물 모아>였다. 지금은 '피아노 잘 치는 예능인'에 가까운 정재형이 베이시스로 활동할 당시에 서지원에게 준 곡이다. <내 눈물 모아>는 정재형이 베이시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 처음 만든 노래였다. 그래서 정재형에게도 서지원과 <내 눈물 모아>는 항상 애틋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내 눈물 모아>는 지상파 3사 순위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후속곡은 강수지 4집에 수록된 곡을 리메이크한 < I Miss You >였다. < I Miss You >는 서지원의 데뷔곡 <또 다른 시작>을 만든 오태호의 곡으로 원곡자인 강수지가 슬픈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부른 반면에 서지원은 슬픈 감정을 참지 않고 폭발시켰다. 서지원 버전의 < I Miss You >는 오태호의 드라마틱하고 슬픈 가사와 맞물려 <내 눈물 모아> 못지 않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서지원 2집에서 흔치 않은 댄스 넘버 <갈등>은 1990년대 가요계를 지배했던 작곡가 윤일상의 곡이다. <갈등>은 애인과 애인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의 못된 심보를 그린 노래다. 서지원의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살려 활동했더라도 큰 인기를 얻었을 법한 발랄한 댄스곡이다. 첫사랑의 설렘을 눈에 비유한 발라드 <첫 눈이 오는 날> 역시 달달한 계절송으로 손색이 없는 명곡이다.

1집에서도 두 곡의 작사에 참여했던 서지원은 2집에서도 발라드 <이별만은 아름답도록>의 작사에 참여했다. 평범한 발라드곡 같지만 '슬픈 뒷모습 네게 보이지 않을 거야 나보다 행복해야 할 널 위해'라는 가사 때문에 서지원을 그리워하는 팬들에게는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을 다룬 박선주와의 듀엣곡 < 76-70=♥ >은 지난 2015년 SBS의 추석특별 프로그램 <심폐소생송>을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매년 새해되면 생각나는 만 19세 여린 청년
 
 <내 눈물 모아>는 지난 2015년 <슈가맨>에서 슈가송으로 선정됐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서지원은 출연하지 못했다.

<내 눈물 모아>는 지난 2015년 <슈가맨>에서 슈가송으로 선정됐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서지원은 출연하지 못했다. ⓒ jtbc 화면 캡처

 
서지원의 2집은 단순히 인기 작곡가들의 명곡에 목소리만 얹은 것이 아니라 서지원이 한층 성숙하고 발전된 실력을 뽐내며 뛰어난 보컬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앨범이었다. 서지원의 2집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1996년 말에는 서지원의 비공개곡을 모은 3집 < Made In Heavwn >이 출시됐고 1998년에는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다. 그만큼 서지원의 노래를 아끼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만약 서지원이 1996년의 첫 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 눈물 모아>나 < I MISS YOU >를 뛰어넘는 명곡들을 배출한 대가수가 됐을 수도 있고 미국으로 돌아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무한도전-토토가>나 <슈가맨>에 출연해 수줍게 춤을 추며 데뷔곡 <또 다른 시작>을 불렀을 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서지원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보다 2살 어렸던 나는 25년의 세월이 지나 어느덧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됐다. 하지만 서지원의 나이는 여전히 1996년 1월 1일 만 19세에 멈춰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보다 2년 먼저 태어난 서지원이 이제는 어린 막내 동생이나 조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모두가 들떠 있을 새해를 앞두고 세상을 버릴 정도로 커다란 두려움에 떨었을 그 시절의 어린 서지원을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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