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기대상' 천호진, 국민가장으로 등극! 천호진 배우가 31일 오후 열린 <2020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 'KBS 연기대상' 천호진, 국민가장으로 등극! 천호진 배우가 31일 오후 열린 <2020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 KBS

 
명배우 천호진이 < 2020년 KBS 연기대상 >의 주인공이 됐다. 12월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홀에서 진행된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주말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의 송가네 패밀리 가장 송영달 역으로 열연한 천호진이 영예의 대상 트로피를 받았다.

천호진에게는 2017년 <황금빛 내 인생>으로 첫 수상한 이래 3년만이자, KBS에서만 두 번째 수상이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이상해>의 김영철과 공동 수상이었고, 이번에는 단독 대상의 영예를 누렸다.

그는 오랜 세월 숙성된 와인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그 존재감이 더 빛나는 유형의 배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미국 전쟁영화 걸작 <디어 헌터>(1978)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천호진은 인하대 화학과(중퇴) 재학중 군복무를 마치고 쉬던 시기에 우연히 MBC 탤런트 17기(1983년) 공채시험에 합격하며 연기자로 데뷔했다.

특이하게도 이전까지 연기를 단 한 번도 정식으로 배워본 일이 없던 천호진은 오디션 때도 국어책 읽듯이 서툰 연기를 선보였지만, 의외로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스타 연출자였던 고석만 PD의 눈에 띄어 합격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고PD의 안목은 정확했다. 이후 천호진은 고 PD의 작품에 여러 차례 단역과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연기 경험을 쌓았다. 

배우로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던 1980년대 천호진은 마치 제임스 딘이나 알 파치노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반항아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첫 영화주연을 맡은 <청 블루 스케치>, <이장호의 외인구단2>, 단막극 < MBC 베스트셀러극장 - '청춘의 한낮 > 등에서 천호진은 세상에 거칠 것 없는 열혈청년이나 운동선수같은 배역들을 자주 맡았다. 하지만 주연으로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고 당시의 많은 배우들이 그러하듯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KBS 연기대상' 천호진, 국민가장으로 등극! 천호진 배우가 31일 오후 열린 <2020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 'KBS 연기대상' 천호진, 국민가장으로 등극! 천호진 배우가 31일 오후 열린 <2020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 KBS

 
천호진은 1990년대부터는 한동안 드라마 위주로 활동해 TV 탤런트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MBC 공채로 데뷔했던 천호진이지만 의외로 그의 TV 커리어에서 대표작은 KBS 작품이 더 많다. 그의 이름을 가장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KBS의 장수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터프하지만 순박한 농촌청년 대철을 연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연기로 천호진은 무려 데뷔 9년 만인 1992년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신인상을 타며 비로소 만개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시청자들에게는 국민 아버지같은 서민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천호진은 특유의 선굵고 진중한 인상을 살려서 악역으로도 자주 활약했다. 배우 차인표를 스타덤에 올려놓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1994년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정적이자 연적인 백화점 이사 정도일 역은, 전작의 순박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있던 천호진이라는 배우의 다중적인 매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천호진은 중견배우의 반열에 접어든 40대 중반 이후부터 커리어가 만개했다. <내 딸 서영이>, <황금빛 내인생>, <한다다> 등 수많은 인기작에 출연하여 주말드라마의 흥행보증수표이자 서민적인 아버지의 상징이 되었고, <육룡이 나르샤> <무신><각시탈><구르미 그린 달빛>같은 시대극, <구해줘2> <굿닥터> <시카고 타자기>같은 장르극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선굵은 악역이나 극중에서 중요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2년 <로스트메모리즈>를 시작으로 영화계에도 복귀했고 <비열한 거리><말죽거리 잔혹사><범죄의 재구성><주먹이 운다><좋지 아니한가><GP 506><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불꽃처럼 나비처럼> 등 수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능가하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신스틸러'로 자리잡았다.

천호진이라는 배우의 연기스타일은 한 세대 위의 선배인 박근형이나 김영철과 비교할수 있다. 극단적인 선과 악의 양면성을 모두 자연스럽게 표현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라는 점이 흡사하다. 묘하게 선역이라고 마냥 공감할 수도 없고, 악역이라고 마냥 싫어할 수도 없는 '뭔가 복잡한 사연을 지닌 남자'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천호진식 연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천호진이 주말드라마에서 서민적인 연기를 맡을 때는 세상의 모진 풍파를 홀로 묵묵히 감내하는 '비극적이고 애처로운 아버지'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악한 역할을 맡을 때는 주로 기업이나 정부의 고위직 간부, 정치인이나 보스 등 높으신 분을 맡아 '숨은 흑막'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10년전, 20년 전에 박근형에서 김영철같은 선배 배우들이 주로 맡았던 역할을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며 다시 천호진이 물려받은 느낌이다.

이혼을 소재로 한 코믹가족극이었던 <한다다>는 올해 KBS와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그나마 지킨 대표적인 흥행작이자, 천호진의 아버지 연기 중 드물게 불치병에 걸리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맺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천호진이 연기하는 송영달 역시 비록 극중에서는 소년가장 출신에 여동생과의 생이별, 자식들의 이혼 등으로 마음고생을 겪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지키려는 책임감이 강하고 따뜻한 속내를 지닌 휴머니즘이 부각된 인물이기도 하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순박하고 씩씩한 청년 대철이 나이가 들었다면 아마 송영달같은 성숙한 모습이 되지않았을까 싶을만큼, 천호진이라는 배우가 자연스럽게 쌓아온 세월과 연기내공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한다다> 촬영중 천호진 배우 개인에게는 가슴아픈 순간도 있었다. 드라마 촬영중이던 6월 부친이 안타깝게 별세했다. 천호진의 부친은 1960~1970년대에 프로레슬러 1세대로 맹활약하며 황금기를 이끌었던 고 천규덕씨다.

천호진은 수상 소감에서도 부친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버님이 드라마를 정말 재밌게 보셨다는데,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불효자가 아버지에게 한 말씀 드리겠다. 감사했고, 수고하셨고, 사랑합니다. 아버지"라며 부친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천호진은 2017년 <황금빛 내인생>으로 첫 대상 수상했을 때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께 이 수상을 바친다"는 소감을 남긴 바 있다. 하필 드라마에서 본인이 절절한 아버지의 감정을 자주 연기하며 배우로서의 최전성기를 열었기에 이날의 수상과 부친과의 추억은 더욱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수상의 영광을 누리는 순간에도 '배우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을 잊지 않았다. "원래 이 자리가 배우들과 모여 축하하고 재밌게 보내는 시간인데, 저희끼리만 그러니 마음이 무겁다. 의료진 분들과 사회 전반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 경찰관과 군인, 소방대원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 여러분이 버텨주셔야 이 어려움이 극복될 것 같다"고 응원을 전했다.

이어 천호진은 "드라마를 시작할 때 제가 후배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열심히 신명나게 놀아보자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려운 분들에게 희망을 드려보자고 했는데 제가 감히 생각하기에는 저의 그 목표가 달성된 것 같다. 이 상이 절대 제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후배님들과 여러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를 제가 가장이라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대신 받았다고 생각하겠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한 명의 훌륭한 연기자를 넘어 우리 시대의 선배이자 어른으로서, 천호진이라는 배우의 무게감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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