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는 만 27세 나이로 참혹하게 인생을 끝맺음했지만, 그가 죽고(1762년) 그의 아버지 영조가 죽은(1776년) 뒤로 왕위를 이은 것은 그의 자손들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제22대 정조는 큰아버지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됐지만, 할아버지를 이어 왕이 된 뒤에는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표방했다.
 
제23대 순조는 정조의 아들이자 사도세자의 손자였고, 제24대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고손자였고, tvN 드라마 <철인왕후>의 철종은 사도세자의 또 다른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다. 철종은 순조의 아들로 입양된 뒤 왕이 됐지만, 그 전까지는 은언군의 손자 및 전계군의 아들로 살았다.
 
제26대 고종과 제27대 순종은 법적으로는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익종)의 혈통이지만, 이들은 사도세자와 실질적 관련성이 없었다. 흥선대원군의 아들인 고종은 한국사 교과서에서 '독일인 오페르트의 도굴 사건'과 함께 소개되는 남연군의 혈통을 타고 났다. 고종의 할아버지인 남연군은 사도세자의 또 다른 아들인 은신군의 아들로 입적됐다. 그래서 법적으로는 사도세자와 관련이 있지만, 원래 혈통 상으로는 거리가 멀다.
 
사도세자와 남연군의 공동 조상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임금이 된 인조다. 사도세자는 인조의 아들인 효종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남연군은 인조의 또 다른 아들인 인평대군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사도세자는 인조의 5대손이고 남연군은 인조의 8대손이므로 사도세자와 남연군은 원래는 13촌 관계였다. 남연군 혈통을 이은 고종과 순종은 법적으로는 사도세자와 관련이 있지만 원래 혈통상으로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혈통을 계승한 마지막 군주는 철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왕후의 몸을 빌리고 있는 대한민국 청와대 셰프 장봉환이 걸핏하면 '철종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철종은 그 같은 역사적 의의를 띤 군주였다.
 
삼정의 문란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른 것은 노론당과 외척(왕실 사돈)의 기득권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 혈통을 이은 최후의 군주인 철종 역시 어느 정도는 그런 면모를 보여줬다. 그도 개혁의 DNA를 몸에 품고 있었다.
 
<철인왕후> 속의 철종(김정현 분)은 세도가문인 안송 김문에 맞서고자 은밀한 행보를 이어간다. 그 같은 드라마 속의 철종처럼은 아니지만 실제의 철종도 어느 정도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증조부의 유지를 일정 정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이다.
 
왕실 외척들이 국정을 농단했던 19세기 전반의 세도정치를 특징짓는 한마디는 '삼정(三政)의 문란'이다. '삼정의 문란'이란 문구가 오늘날 백과사전의 항목이 돼 있을 정도로 19세기 전반에 이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삼정은 서민경제와 국가재정의 근간인 전정(토지세·소득세 부과 행정), 군정(병역세 부과 행정), 환정(환곡, 서민 지원 행정)을 통칭한다. 이런 삼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못하고 세도가문 및 기득권층이 농민층을 수탈하는 도구로 악용됐다. 힘이 소수의 가문에 집중되다 보니 다수의 민중이 극도의 고통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철종이 즉위한 지 13주년인 1862년은 조선왕조와 철종의 입장에서 매우 수치스러운 해였다. 삼정의 문란에 신음하던 농민들이 전국 70여 곳에서 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농업이 가장 발달한 충청·전라·경상의 삼남 곳곳에서 농민전쟁이 일어났다(임술민란). 19세기 초반부터 쌓이고 쌓인 적폐와 그로 인한 분노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던 것이다.

1859년 철종과 영의정 정원용의 대화
 
그처럼 민중의 원한이 1862년 임술민란을 향해 치달으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던 1859년이었다. 임술민란 3년 전인 이때도 위기의식은 대단했다. 구중궁궐의 철종에게도 그런 기운이 감지됐다. 이 해에 철종이 영의정 정원용과 나눈 대화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김씨가 아닌 정씨이지만 순원왕후 김씨의 신임을 받고 안동 김씨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정원용은 음력으로 철종 10년 2월 25일(양력 1859년 3월 29일)자 <철종실록>에 따르면, 이날 창덕궁 희정당에서 철종을 알현했다.
 
 창덕궁 희정당 내부

창덕궁 희정당 내부 ⓒ 김종성

  
궁궐 의료 감독자인 내의원 도제조를 겸한 그는 이날 궁궐 약국인 약원(藥院)을 거쳐 희정당으로 갔다. 일기장인 <경산일록>에서 그는 "약원에 갔다가 입시했다"며 "협의하여 공진군자탕(拱辰君子湯)을 올렸다"고 말했다.
 
2007년에 <의사학> 제16권 제2호에 실린 김정선·황상익 교수의 논문 '조선 후기 내의원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의학 경향'은 "철종이 주로 복용한 보약은 음양을 같이 보(補)하는 공진군자탕·귀용군자탕·경옥고 등이었다"며 음기와 양기를 함께 북돋아준다는 공진군자탕을 고종 임금은 봄과 겨울에 복용했다고 말한다. 정원용이 철종에게 공진군자탕을 들고 간 이때도 양력 3월이었다.
 
그런데 공진군자탕보다 철종의 관심을 더 끈 게 따로 있었다. 정원용은 임금이 음양의 기운을 보충하는 일에 신경을 썼지만, 철종의 고민은 삼정이 문란해져 나라 경제가 위태롭게 된 데 있었다. 위 <철종실록>에 따르면, 철종은 정원용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일에 팔로(八路, 팔도)가 거꾸로 매달린 형세라서 참으로 매우 가파르게 위태롭습니다. 내 비록 구중궁궐에 깊숙이 거처하고 있지만, 아무개 방백(관찰사)과 아무개 수령 중에 누가 청렴하고 누가 탐욕스러운지, 누가 깨끗하고 누가 시커먼지에 관해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없지 않습니다."
 
지방관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자신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힘 있는 군주였다면, 중앙 대신이나 세도가문들의 비리도 직접적으로 언급했을 것이다. 힘없는 군주인 그는 세도가문들과 이리저리 얽혀 있는 지방관들을 지목하면서, 그들로 인해 조선 팔도의 형세가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을 촉구하면서 이날 대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내가 옛날 명철한 왕들에는 못 미쳐도, 팔로 방백과 수령의 선악 및 청렴·부정에 관해서는 자연히 갖가지 들리는 바가 있어 침실 벽에 써두고 눈을 항상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곳 희정당은 아니지만 내 침실에 가면 부정부패 공직자들의 이름과 죄상이 벽면에 적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뒤에 이 내용을 각 지방에 알리라고 정원용에게 명령했다.
 
9일 뒤인 음력 3월 5일(양력 4월 7일)에도 철종은 '침실 벽'을 거론하며 대신들을 다그쳤다. 침실 벽에 다 써놓았다는 하교를 내렸는데도 왜 진전이 없는 거냐며 재촉했다. 그 정도로, 백성을 살리고 민생 경제를 복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철종실록> 여러 곳에서 삼정의 문란과 백성들의 고충을 염려하는 철종의 마음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조정은 철종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공진군자탕을 들고 간 정원용도 그날 일기장에 공진군자탕을 바친 일과 더불어 철종이 민생 문제를 언급한 사실을 간략히 적었을 뿐이다. 그리고 철종이 가장 강조한 대목인 '침실 벽'은 일기장에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안동 김씨와 연결된 정원용의 입장에서는, 철종이 국정에 개입하기보다는 건강을 잘 지켜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다.
 
철종의 애민 정책에는 한계가 있었다. <철인왕후>의 철종은 가슴속에 비수를 숨기고 안동 김씨 가문을 대하지만, 실제의 철종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동 김씨와 상당히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와 그로 인한 민생경제 파탄에 대해 철종 역시 상당한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철종은 세도정치에 불만을 품으며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힘이 없어 성공하지 못하고 허약한 임금으로 역사에 남기는 했지만, 그는 사도세자의 혈통을 이은 마지막 군주답게 행동했다. 제한적으로나마, 기득권을 누르고 백성의 편에 서고자 하는 선한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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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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