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경연장에 나온 트로트·가요·힙합, 인기 이어가려면...  http://omn.kr/1r7re


이제 '대중'이 아니라 '팬덤'의 시대다. 뉴욕타임스의 조 코스카렐리(Joe Coscarelli)는 2020년을 되짚는 '대중음악 팬덤이 스포츠, 정치, 종교, 전면전이 된 까닭' 기사를 통해 음악 산업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팬덤 문화를 상세히 다뤘다. 팬(Fan)에서 스탠(Stan)으로 진화해 자유로이 활약하며 상상 이상의 현실을 가져오는 '강력한 취향 집단', 이들의 시선으로 대중음악을 바라봐야 한다. - 기자 말
 
 뉴욕타임스의 조 코스카렐리(Joe Coscarelli)는 2020년 대중음악 팬덤이 스포츠, 정치, 종교 등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사로 한 해를 정리했다.

뉴욕타임스의 조 코스카렐리(Joe Coscarelli)는 2020년 대중음악 팬덤이 스포츠, 정치, 종교 등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사로 한 해를 정리했다. ⓒ 뉴욕타임스 캡처

 
올 한 해 미국 언론에서는 팬덤(Fandom)을 대체하여 스탠(Stan)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스탠은 2000년 래퍼 에미넴의 동명 곡 '스탠'에서 유래한 단어로, 노래 속 아티스트에게 팬레터를 보내며 언제나 함께 있고자 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따와 극성팬을 지칭하는 속어가 되었다. 

주로 멸칭으로 사용되던 '스탠'은 현재 음악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팬덤의 진화 형태, 온라인 팬덤을 지칭하는 용어로 각광받고 있다. NBC 뉴스는 한 술 더 떠 2020년을 '스탠의 해(The Year of the Stan)'로 규정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개별 팬들의 자발적인 행동과 애정표현, 단체 행동으로 결집하여 미국 사회를 흔든 BLM(Black Lives Matter), 대통령 선거 등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경우를 분석 보도했다. 

'스탠'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지지 활동이라는 점에서 팬덤과 구분된다. 21세기의 음악 팬은 아티스트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과거 팬카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제작하던 선배들(?)과 달리 팬덤은 온라인 공동체를 만들지 않는다. 이들의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SNS 소통과 인터넷 집단행동 바탕을 엮어주는 것은 '아미(A.R.M.Y)', '스위프티스(Swifties) :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 같은 무형의 이름, 공동체 정신, 집단의식이다. 이들의 활동 반경은 인터넷이 서비스되는 모든 곳이며 플랫폼을 구분하지 않고, 시간의 구애 또한 없다. 

열성적인 팬들은 지지하는 뮤지션의 스케줄과 콘텐츠를 항상 체크하고 공개와 동시에 확대 재생산한다. 자발적인 번역, 공유, 2차 콘텐츠 제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앨범 및 싱글 콘텐츠 발매 시 체계적이고 경쟁적인 전략을 통해 주류 차트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다루는 미디어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아티스트의 비보는 곧 스탠의 비보이며, 아티스트의 부진은 곧 스탠의 부진이다. 지지 아티스트라는 집단 페르소나에 그들의 시간과 재화, 가치관을 투영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스탠들의 행동이다.
 
 2020년 개설된 '아미 매거진'에 올라온 'BTS 아미들을 위한 스트리밍 가이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방탄소년단의 곡을 스트리밍하여 감상하는 방법을 정리했다. 아미 매거진은 비영리와 자발적 참여를 지향한다.

2020년 개설된 '아미 매거진'에 올라온 'BTS 아미들을 위한 스트리밍 가이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방탄소년단의 곡을 스트리밍하여 감상하는 방법을 정리했다. 아미 매거진은 비영리와 자발적 참여를 지향한다. ⓒ ARMY Magazine 캡처

 
2020년 내내 스탠의 활약은 계속됐다. 레이디 가가의 팬덤 '리틀 몬스터(Little Monster)'들은 신보 <크로마티카(Chromatica)>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싱글 '스튜피드 러브(Stupid Love)'를 사전 유출시켰고, '스위프티스'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발표한 앨범 <포크로어(folklore)>에 대해 극찬하지 않은 음악 웹진 피치포크(Pitchfork)를 공격했다. 

케이팝 팬덤은 2020년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Atter)'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 BLM 지지 선언을 요구했고, SNS 상 인종차별적인 메시지와 시스템을 공격하여 무력화시켰다. 이어진 6월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개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경선은 케이팝 팬들의 백만 건 이상의 가짜 참석 신청과 조롱으로 엉망이 되었다. 

글로벌 팬덤 '아미'는 방탄소년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체계적인 조직 행동으로 오늘날 방탄소년단을 세계적인 팝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의 성과를 위해 자발적인 라디오 방송국 홍보와 효과적인 스트리밍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돈이 없어 음악을 듣지 못하는 아미들을 위한 기금이 조성됐다. 올해 설립된 비영리 웹진 아미 매거진(ARMY Magazine)은 영어,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의 5개 국어로 제공된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한국 아티스트 최초의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 쾌거를 차지한 '다이너마이트(Dynamite)'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스탠의 커져가는 힘과 반대로 우려할 지점 역시 포착된다. 스탠의 주 행동은 앨범 구매, 싱글 구매 등 자본과 소비에 상당수 기초하고 있기에,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이들은 아티스트들의 행보를 직접적으로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피치포크를 공격한 '스위프티스'처럼 건전한 비평 및 토론 문화 형성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 역시 고민해야 할 숙제다. 

스탠을 겨냥한 다양한 어뷰징(음원 시장 조작) 행태도 팽배했다. 2020년은 리믹스 편법, 라디오 방송국에 돈을 주고 방송 횟수를 늘리는 페이올라(Payola), 1달러 이하의 싱글 음반을 복수 제작하고 상시 할인을 지속하며 차트 순위를 올리는 싱글 덤핑 행위 등이 성행한 한 해였다. 유명 팝스타부터 무명 가수들까지 가리지 않고 적용된 이 편법은 유통사들의 행위임에도 팬덤 간의 경쟁과 갈등을 부기며 책임을 전가한다는 데서 향후 더욱 심각한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백현의 두번째 솔로 앨범 '딜라이트'는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2001년 발표된 김건모 7집 이후 19년 만에 솔로 가수 밀리언셀러 작품에 등극했다.

백현의 두번째 솔로 앨범 '딜라이트'는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2001년 발표된 김건모 7집 이후 19년 만에 솔로 가수 밀리언셀러 작품에 등극했다. ⓒ SM엔터테인먼트

 
우리 음악계도 올 한 해 2020년 팬덤 파워를 실감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임영웅, 영탁, 김호중, 이찬원 등이 중장년 팬덤의 적극적인 지지와 강력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수십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며 팬덤 문화가 10대, 20대 케이팝 그룹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케이팝 팬덤 역시 음원 시장에서는 차트 개편으로 과거 같은 높은 순위에 아티스트들을 올리진 못했으나, 대신 전년 대비 30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구입하며 코로나19로 인한 콘텐츠 갈증을 해소했다. 앨범 판매량이 팬덤 규모와 직결된다는 일념 하에 이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세 장의 밀리언셀러 앨범을 탄생시켰다(방탄소년단 '맵 오브 더 솔 : 7',  세븐틴 '헹가래', 백현 '딜라이트).

해외의 스탠 문화와 한국의 팬덤 문화는 공통점도 있으나 차이점도 많다. 정치 사회적 발언을 촉구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 팬덤은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기획사 역시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철저한 중립을 요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도를 높여가는 케이팝의 경우 올 한 해 BLM, 미국 대선, 문화 전유 논쟁 등 케이팝을 바라보는 해외 팬덤과 국내 팬덤 간의 갈등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던 한 해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도록 팬덤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빠순이'라는 멸칭처럼 여성 비하적인 표현으로 취급받았으며 극단적인 사생팬과 동급으로 묶여 비하받아왔다. 팬덤을 대하는 기획사들 역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소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2020년은 그 팬덤, 더 나아가 괴짜로 취급받던 스탠들이 음악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확실히 거듭난 해였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의 이 집단이 음악계의 새로운 10년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나갈지 주목해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 메일 : zener1218@gmail.com /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