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 2020 방송연예대상 >의 한 장면

MBC < 2020 방송연예대상 >의 한 장면 ⓒ MBC

 
방송인 유재석이 '2020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또다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29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전현무, 박나래, 김성주, 이영자, 김구라 등과 후보에 오른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MBC에서만 7번째 대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상파 방송 3사를 통합하면 총 16회 수상으로 독보적인 1위다.

사실상 올해 유재석의 수상은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대강자가 없었던 SBS나 KBS의 경우, <런닝맨>의 김종국과 <사장님귀는 당나귀귀>의 김숙같은 이변의 수상자들이 등장했다. 반면, MBC에서는 일찌감치 '유산슬'과 '싹쓰리', '환불원정대'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 <놀면 뭐하니>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가수, 매니저, 제작자, 리더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팔방미인의 면모를 과시한 유재석 외에 다른 경쟁자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최근 몇년간 유재석은 MBC <무한도전>, KBS 2TV <해피투게더> 등 오랜 기간 이끌어온 프로그램들의 연이은 폐지로 침체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2020년 활약은 위기설을 극복하고 또 한번의 전성기를 당당히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유재석의 장점으로 꼽히던 진행 능력, 착한 이미지에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무한도전>의 영광을 함께한 김태호 PD와 재결합한 <놀면 뭐하니>는 이른바 '유재석 혼자하는 무한도전'으로 불린다. 말 그대로 고정된 포맷 없이 유재석이 계속 해서 다른 미션에 도전하는 구성은 <무한도전>과 동일하다.

<무한도전>은 유재석을 국민 MC의 반열에 올려준 대표작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극복해야 할 장벽이기도 했다. 유재석이 30대 초반이던 초창기 <무모한 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표방하며 거침없이 망가지는 몸개그 위주로 가볍게 웃고 즐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무한도전>으로 프로그램 명을 변경하고 인기를 끌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이라는 과도한 부담을 안게 되기도 했다. 또한 아이디어 고갈과 매너리즘 등 여러 가지 문제점에 시달려야 했다. 유재석 또한 개성 강한 멤버들을 아우르고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하는 1인자 혹은 MC의 역할에 더 집중하느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쳐보이지 못했다.

'유재석 한 명만 있어도 충분히 무한도전이 가능하다'는 말은 이미 <무한도전>의 전성기부터 팬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상상이었다.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포맷이 바로 <놀면 뭐하니>였다. <무한도전>과의 차이점이라면 고정 멤버들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프로그램 제작의 유연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 1인자의 부담을 내려놓은 유재석이라는 캐릭터를 얼마나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지 증명했다는 것이다.

<놀면 뭐하니>의 성공비결은 이른바 '부캐릭터'(부캐)라는 역할극을 예능의 주류로 구현했다는 데 있다. 주로 온라인 게이머들이 쓰던 표현에서 유래한 '본캐릭터'(본캐)는 본인의 진정한 자아에 가까운 존재라면, '부캐'는 '본캐'로 해보지 못한 것을 할 때 쓰는 다른 캐릭터로서 일종의 페르소나(가면)를 의미한다. 브루스 웨인과 토니 스타크가 슈트를 입으면 각각 배트맨과 아이언맨이라는 또다른 자아를 형성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과 정체성으로 변신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라는 인물이 '유두래곤' '유산슬' '지미유' 유팡' 등의 다양한 부캐로 변신하는 모습들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이러한 부캐들을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배경으로 대중 음악이라는 무대를 선택한 것도 매우 영리했다.

여기서 유재석은 트로트 가수가 되기도 하고, 복고풍 혼성그룹의 일원이 되어 뉴트로 감성을 자극하는가 하면, 프로젝트 걸그룹의 제작자가 되어 개성 강한 여성 멤버들을 이끄는 제작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놀면 뭐하니>는 비, 이효리, 제시, 엄정화, 화사 등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뜻밖의 조합들을 잇달아 배출해내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 그동안 시청자들이 알지 못했던 스타들의 새로운 매력을 재발견 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놀면 뭐하니>가 불러온 부캐릭터 열풍은 방송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여러 프로그램에서 부캐릭터 콘셉트가 쏟아지는 현상을 이끌어냈다.

부캐릭터라고 해서 본캐와 전혀 다른 별개의 자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에서 보여준 수많은 부캐들은 알고보면 유재석이 데뷔 이래 보여준 여러 변화를 집대성한 것에 가깝다.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착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의 국민MC로 각인되어 있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유재석은 강자들 앞에서 깐족대고 할 말 다하는 '얄미운 악동' 캐릭터에 더 가까웠다. 메뚜기 탈 등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입고 몸 개그를 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MBC < 2020 방송연예대상 >의 한 장면

MBC < 2020 방송연예대상 >의 한 장면 ⓒ MBC

 
<놀면 뭐하니>에서 보여준 수많은 부캐들이 각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묘하게 유재석이라는 교집합 내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느낌을 준 이유다. 또한 유재석이 오랜 세월에 착실하게 구축해온 호감과 신뢰도는 다소 과장된 설정이나 동료 출연자들의 단점도 자연스럽게 감싸안아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는 <놀면 뭐하니>가 예능의 재미와 공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즉 <놀면 뭐하니>라는 또다른 인생 프로그램을 만난 것은 유재석에게도 큰 행운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오직 유재석이었기에 가능했던 프로그램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놀면 뭐하니>에서의 활약상이 강한 인상을 남기기는 했지만, 유재석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충분히 선전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코로나 19'로 인해 야외에서 실내 위주의 토크쇼로 변화했지만, 유재석은 특유의 안정적인 입담과 진행능력을 발휘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tvN 새 예능 <식스센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진실게임 식의 단순한 구성이지만, 개성 넘치는 멤버들을 자연스럽게 이끈 유재석의 리더십으로 성공을 거뒀다. 어느덧 장수 예능으로 자리잡은 SBS <런닝맨>에서 역시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20년 넘게 방송가 정상의 자리를 유지해 온 유재석에게 2020년은 어떤 한 해일까. 그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점도 포기하지 않는 '영리한 진화'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유재석처럼 오랜 세월 최고의 자리에서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웃음을 만들어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시청자들이 지금도 매일같이 TV에서 만날 수 있는 유재석만의 '착한 웃음'과 '성실한 도전'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또다시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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