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 ebs

 
15년 동안 거의 매일 밤 아니 새로이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 0시 20분, 꾸준히 시청자들을 찾아온 '지식 보따리'가 있다. 바로 EBS의 <지식채널e>다. 

정보의 흡수가 보다 빨라지고 '인스턴트'화 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한 꼭지당 5~6분여 정도 길이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인문, 사회, 과학, 예술의 내용에 있어서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해석을 내놨다.

2020년을 이야기할 때 코로나19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지식채널e>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시민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이 돋보이는 '브이로그' 11부작을 마련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온 시민들의 삶을 그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지식채널e>는 지난 8일부터 3주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코로나로 바뀐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30일 방송분에선 올 한 해 잠시도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 의료진들의 이야기인 '#덕분에 #고맙습니다'가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의 하루는 레베D 방호복 환복으로 시작된다. 6월의 외부 온도는 23℃ 정도지만 환복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한증막 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고 호소하는 의료진. 하지만 한증막같은 방호복도 그들의 '업무'를 막을 수는 없다. 의료진들은 많게는 하루 120명의 감염의심자들을 상대하며 지난 1년을 보냈다. 

격리 병동이라고 다를까. 코로나 격리 병동이지만, 간호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을 감싼 방호복을 제외하면, 1년 전에 맞이했던 환자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10년 동안 간호사로 일한 심수진씨는 지난 1월에 일을 그만두려 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심 간호사는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허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되자 그는 다시 심기일전해 현장으로 파견을 갔다. 방호복으로 몸을 싸맨 채 코로나와의 전쟁 최전방에 선 상태지만, 심 간호사는 자신이 아직 도움이 되는구나란 생각에 꺼져가던 직업적 소명 의식을 회복했다.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 ebs

 
그런 의료진들의 맞은편엔 코로나 확진자의 이야기 '15일, 아주 특별했던 시간'이 있다. 해외 출장 나흘 전 확진 판정을 받은 JOEY KIM은 감염 경로도 모른 채 입원을 했다. 그는 빵과 우유로 첫 식사를 한 뒤 정해진 시간에 체온과 혈압, 산소 포화도를 측정해 기록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이어갔다. 시간이 흐르자 이내 미각과 후각이 사라지더니 가슴, 위의 통증과 두통, 마른 기침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일차가 지나자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15일을 버치자 다시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됐고 열도 떨어졌다. 홀로 싸웠던 시간 동안 그는 그간 일에 치여 돌보지 못한 자신과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했다고도 덧붙였다. 

코로나가 멈추게 한 일상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 EBS

 
코로나19는 우리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지식채널e> '2020을 살다'의 첫 스타트를 끊은 건 '사는 건 영화 같지 않아서'다. 

부모님이 20년째 해오던 국밥집을 리모델링하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째인 서용대씨는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오피스 상권에 휘몰아닥친 '재택 근무'는 그의 수입을 50%나 급감시켰다. 매일 차악을 갱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용대씨는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단골 손님들이 찾아주던 부모님 시절의 국밥집으로 돌아갔다. 자영업을 하는 47.4%, 직장을 다니는 22.1%가 투잡을 해야 하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 버틸 수 있다는 용대씨는 아내가 하는 작업의 조수 일을 병행하기로 했다. 배달과 택배 일도 생각해보려 한다.

'투잡러'를 넘어 '쓰리잡러'가 된 청년도 있다. 30일 방송된 <스리잡러 아시나요>의 진성씨는 고2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댔다. 그는 엄청난 수의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2019년의 여름을 났다. 할부로 산 차로 시작한 택배 배송 일은 새벽부터 시작해 4차 배송으로까지 이어진다. 이후 귀가한 그는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다시 배송 대행 아르바이트에 돌입한다. 짬짬이 패스트푸드점 알바도 한다. 그렇게 휴가도 없이 살던 그의 일상은 코로나로 인해 멈췄다. 택배와 배송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는 많은 사람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잘렸다. 단지 접촉자가 많다는 우려 만으로.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멈춰버린 건 '마지막 비행'의 이수지씨 역시 마찬가지다. 두바이에서 항공사 직원으로 일하던 이수지는 지난 9개월 간 단 4번 비행을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 그녀에게 닥쳤다. 이씨는 지난 6년 동안 빼곡하게 채워졌던 비행 수첩, 세계 각국의 동료들, 그들과 함께 한 비행의 시간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 직원이 아닌 승객으로 마지막 비행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것들

'나는 이 시국에 고3입니다'는 제목 그대로 올 한 해 코로나로 인해 가장 마음을 졸였던 고3 도나미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미루고 미루어 더는 미룰 수 없어 4월에 개학을 했지만, 도나미는 학교를 가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고3이라는 시절 자체가 부담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코로나로 인해 줌 수업을 했다가 학교에 나갔다 뒤죽박죽인 1년여를 보낸 뒤 사상 최초로 연기된 수능 시험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어려운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올 한 해 달랐을까? '당신이 보지 못했던'은 시각장애인이자 대학생인 우령씨의 이야기를 그린다. 우령씨는 개강 한 달 전 일찌감치 기숙사를 찾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는 그의 일상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되었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에 붙여놓은 부착물이 손끝의 감각을 막아 자신의 방을 찾아가는 것부터 혼란스럽다. 

우여곡절 속에 개강했지만, 화면 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를 이용하는 우령씨에게 온라인 강의실 입장부터가 '미션 임파서블'이다. 이런 상황은 그를 결국 '휴학을 해야 하나'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코로나는 그곳에도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지식 채널 E 연말 특집 11부작 2020을 살다> ⓒ ebs


 
코로나는 나라를 차별하지 않았다. 번잡하던 뉴욕 맨해튼도, 화려하던 파리도 멈춰섰다. '외국에서 부친 편지;는 뉴욕 생활 7년차 최이은씨와 파리 생활 13년차 김지아씨를 통해 그곳의 코로나 이야기를 전한다. 

파리에선 마트에 들어가려면 서류와 신분증이 있어야 하고 그마저도 인원이 제한된다. 그런가 하면 휴지도 1인당 한 개씩만 살 수 있는 뉴욕의 마트에서는 식재료도 구하기 힘들어 사람들을 '내일 당장 먹을 게 없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빠지게 만든다. 확진자 동선을 알 수 없기에 마트에 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다. 이 마트 저 마트를 전전했지만 원하던 먹거리를 얻을 수 없었던 이은씨는 결국 울컥하고 만다. 

독일 여자 줄리아와 한국 남자 최영동은 이른바 '롱디 커플'이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두 사람은 독일에서 함께 지냈지만 코로나가 심각해지는 바람에 결국 영동씨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애써 밝은 모습을 보이려던 줄리아는 결국 공항에서 눈물을 보이고야 만다. 서로 '내가 더 사랑한다'고 하지만, 8시간의 시차가 나는 공간에서 9개월여를 보내고 나니, 서로가 없는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져 간다.

11부작 '2020을 살다'는 11개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우리 사회, 나아가 해외에 이르기까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달라진 삶을 골고루 조명했다. 언론을 통해 수치로만 접하던  폐업율, 실직율 등이 사람들의 사연으로 엮어지니 5~6분 여의 짧은 영상물임에도 코끝이 찡해진다. 

2020년은 이토록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애써 가꾼 삶들을 상실했던 시절이구나 싶다. 코로나로 인해 삶이 불편해졌다지만 바이러스를 위해 붙여놓은 방역 테이프가 시각 장애인의 또 다른 '장애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코로나는 우리의 삶 속속들이 스며들어 지난 1년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그 멈춤 속에서도 학생은 공부를 했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온라인 수업 등으로 고군분투했다('보건교사 손은지, 체육교사 최지인'). 

11편을 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브이로그 속 시민들의 모습이 꿋꿋했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그들은 가족이 있기에, 그래도 찾아주는 단골 손님이 있기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한다. 누군가는 홀로 버틴 15일의 입원 기간을 '감사'로 마쳤고, 누군가는 미친 듯 한달 내내 일을 구해 애완견에게 다시 수박을 사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지만, 그래도 힘든 시기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한다.

아마도 올 한 해 우리 모두 그렇게 지내왔을 것이다. 이만한 것이 어디냐고, 그래도 내게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이다. 그간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저앉는 대신, 그래도 자신들이 아직 가진 것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 한 해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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