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 tvN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던 때가 있다. 몸과 정신을 이분했던 담론이 지배적일 때, 몸은 정신보다 하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늙어가며 절감하게 되는 진실이 있다. 정신이 몸보다 절대 우월할 수 없다는 것.
 
종종 딸애와 이런 얘기를 나누곤 한다. 우리 서로의 몸이 바뀐다면 어떨까? 관념적으로는 서로 소통하며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절반의 진실일 것이다. 몸은 단지 정신을 운반하는 캐리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딸애의 몸이 되어본다면, 무엇보다 딸애의 몸의 고통에 완벽히 공감하게 될 것이다. 분명 아픈데, 진단되지 않는 무릎과 종아리의 통증을 그리고 부정교합으로 불편한 치아의 상태 등을 생생히 각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딸 또한 내 몸이 되어 본다면, 늙어가며 삐걱대는 관절의 아픔과 금방이라고 주저앉을 것 같은 극단의 피로감 그리고 가끔 걸어 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만드는 어지러움 등을, 지극한 공감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듯 몸은 당사자성을 담지한 정체성이고,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느냐에 따라 달리 정의될 수도 있는 매우 정치적인 대상이기도 하다. 늙거나 젊은 몸의 전환도 굉장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겠지만, 여남의 몸이 바뀌는 성별 체인지가 일어난다면 어떨까. 이거야말로 여성성과 남성성이 격돌하는 치열한 전쟁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이 가정적 논쟁을 극으로 재현하고 있는 드라마가 인기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를 이른다.
 
이백 년의 시간 여행, 그리고 성별이 뒤바뀐 몸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 tvN

 
철인왕후 역의 신혜선이 멱살 잡고 시청률을 견인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는 정말 발군의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물론 <철인왕후>는 방영을 시작하자마자 원작인 <태자비승직기> 작가의 혐한 논란, <조선왕조실록> 비하 논란을 비롯해 신정왕후 조씨가 미신에 빠져 있는 인물인 것처럼 묘사하는 등 각종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제작진은 여러 논란에 대해 사과한 뒤 인물관계도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

착착 감기는 연기에 박장대소를 하다, 문득 아니 신혜선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었나, 혀를 내두르게 된다. 2화 중 소용(신혜선)이 기생과 흐드러지게 노는 장면에선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다. 현재 한국의 바람둥이가 성별이 바뀐 몸이 되어 조선으로 시간 여행을 해도, 난봉꾼의 저급한 습속은 결코 버려지지 못한다는 것을 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용이 몸의 전환과 붕괴된 젠더를 수습하기에 2화는 좀 이를 터,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드라마는 이들이 왜 몸이 바꾸었는지를 긴 설명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몸이 바뀐 상태로 곧바로 진입해 들어간다. 시청자도 몸이 바뀐 주인공들과 함께 동시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예시도 조건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조선으로 던져져 뒤바뀐 몸은 당연히 좌충우돌로 일상을 숨 가쁘게 채울 수밖에 없다.

게다 바뀐 몸이 살살 다루어가며 적응하기엔 너무나 격차가 큰 시공간과 신분, 결정적으로 성별이 바뀌어버렸으니, '멘붕'의 상태다. '상남자' 스타일에 바람기가 다분한 남자가 이백여 년 전 조선의 여자, 그것도 지존의 반열에 있는 중전이 되어버렸으니, 미치기 일보 직전인 것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호, 이 총체적 난국을 철인왕후 소용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드라마는 묘한 쾌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는 분명 여자의 외양을 하고 있으나 언행은 전혀 여자이지 않은 중전의 방약무인한 모습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온화하고 근엄하고 품위 있기를 기대받는 국모인 중전으로서의 여성성이 그야말로 박살 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 말이다. 전혀 조심하지 않는 말본새, 거추장스런 한복 치마를 들어 올리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번잡함, 찰 지게 욕을 던지는 상스러움, 개 버릇 못 버리고 끌리는 여자에게 일단 추파를 던지고 보는 막무가내 들이댐, 결정적으로 남편 그것도 왕(김정현)에게 '놈'자를 붙여 욕하는 것은 기본이고, '꺼져' 등의 비속어를 '양아치' 스타일로 남발하는 모습에서, 야릇하게 통쾌해지고 있었다.

아마도 여자인 내가 어디서 저런 게걸스럽고 천박한 언행을 구사해보겠는가, 상상하며 얻는 대리만족 환희감이 유력했다. '막가파'식 젠더 교란이 일어날 때마다 박장대소하자, 옆에서 같이 시청하던 남편이 아마도 <철인왕후>의 높은 시청률은 나 같은 여자들이 막대한 공을 세우고 있을 거라 장담했다. 비아냥의 혐의가 감지되었으나, 통 크게 패쓰~ 아무려면 어떤가. 나도 저런 거침없는 여자 돼보고 싶고, 재미있어 죽겠는걸.
 
여자 몸이 되어보고서야 몸의 곤경을 알게 되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마구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지만, 한 번씩 툭하고 던져지는 중전의 말들에선 바야흐로, 뒤바뀐 성별의 몸의 한계와 가능성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합궁 후 혹시 남편에게 당한 것은 아닐까, "그걸 하고도 모를 수 있나?"라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철종에게 눈 부라리며 대거리하다, "죽이려는 진짜 이유는 너보다 약하니까"라고 일갈하며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내의 현실에 분노하면서, 일부다처제의 역겨움을 성토하며 "후궁이 장난감이냐?"며 쏘아대는 모습에서, 분명히 봉환의 언어가 차츰 소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씩 여자인 몸이 주는 한계를 극한 체험하며, 여자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부정의를 견뎌야 하는지, 기대받는 여성성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남성중심문화가 구축한 '여성적'이라는 몸의 억압에 대해 깨알만큼의 성찰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200년을 '백 투 더 패스트'한 인지 부조화도 고달픈데, 여자 몸으로 조신하게 사는 일까지 수행해야 하니, 소용은 어서 하루라도 빨리 이 디스토피아를 벗어날 방도를 찾아야 한다. 2백 년 후 청와대 셰프였던 손이 시키는 대로, 순원왕후(배종옥)에게 2백 년 앞선 요리를 선보임으로써 점수를 딴 소용은, 호수에 다시 물을 채우라는 재가를 받고 호수물을 통해 미래로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한다.

소용이 셰프였던 미래는 곤경에 처한 중전의 처지를 돕는 데 기여하도록 설정되는데, 2백 년 전 수라간에서 벌이는 요리 대전은 현재의 요리 쇼 못지않은 재미를 제공한다. 해장 라면을 먹기 위해 구하기도 힘든 기름을 가마솥에 들이붓고 면을 튀겨내 기어이 라면을 만들어 먹는 장면은, '이거 먹방 아냐' 착각하게 만들며 쏠쏠한 재미를 준다. 너무 과하면 안 되겠지만...
 
호수에 물을 채운 소용은 비로소 미래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에 쾌재를 부르지만 쉽게 성사될 리 없다. 미래의 봉환이 물에 빠진 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누워있는 장면이 주는 암시는, 이 드라마가 소용이 2백 년 시공을 타임 슬립 하며 벌이는 소동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봉환이 여자의 몸으로 조선에서 해내야 할 일을 마쳐야만 남자인 제 모습으로 돌아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환이 남자 몸으로 누린 권력은 어쩌면 과거 여자로 호되게 살아 낸 몸이 준 선물일 수도, 징벌일 수도 있음을, 그리하여 소용이 남자의 정신으로 여자의 몸을 어떻게 접수하고 재구성할지가 귀환의 단서가 될 것이다.
 
미래로 진입하려고 호수에 입수한 소용은 봉환의 영혼과 접선 후 귀환하리라 믿었지만, 남편 철종이 연못으로 뛰어들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소용을 구해내며 드라마는 다른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소용에게서 강한 정적을 제거하지 못하니 약한 아내를 죽이려 한 비겁한 놈이라 야유당한 철종은 자신의 치졸한 정치적 선택이 부끄럽다.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왕의 체통을 세워준 중전에게 미안함을 가지기 시작하고, 시간 여행으로 조선에 불시착한 소용의 사정을 알 리 없는 그는, 역모 급으로 거침없이 시대의 규범을 배반하며 "노터치" 부부 생활을 선언한 아내에게 심쿵해지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교란된 젠더의 섹슈얼리티가 펼쳐질 판이다.

바야흐로 중전에게 다가서기 시작한 철종의 구애는 어떤 지형으로 나아갈 것인가. 또한 파벌 싸움에 찌든 조선 말 혼탁한 세상에서 소용은 뒤바뀐 몸으로 어떤 여자의 삶을 펼쳐 낼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제 막 조선 말 '퀴어'께서 담대하게 납시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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