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먹고 입을 것과 살 곳을 직접 마련하고, 닥쳐올 수 있는 모든 사건도 혼자 마주하는 것이다.

편할 지도 모른다. 애정이란 이름으로 주어지는 속박과 간섭을, 가족이기에 떠안아야하는 책임을 피할 수 있으니.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 삶을 이끌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얽매이지 않는 삶이라니, 가슴 뛰는 일이다.

쓸쓸할 수도 있다. 아파도 돌봐줄 이 없고, 슬퍼도 위로해줄 사람 없다. 그보다 불행한 건 즐겁고 기쁜 일을 함께 나눌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함께 살지 않는 사이엔 나누기 어려운 감정이 분명히 있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라도 제 일처럼 느끼기 어려운 사연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같은 지붕 아래 뭉쳐 산다는 건 그래서 특별한 일이다. 끌로드 베리 감독의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함께이길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주의 라면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은 프랑스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 눈길이 절로 간다. 2004년 출간된 안나 가발다의 동명 소설은 40만부가 팔려 그해 프랑스 최고 인기작이 됐다.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포스터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뜬금 없는 식사초대,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됐다

영화는 소설을 그대로 따왔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다른 사람 품으로 기꺼이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충돌하며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어 줄 수 있는 걸 서로 나누다보니 혼자 있을 때보다 더 나은 삶이 펼쳐진다. 가끔은 더 피곤하기도 하지만.

등장인물은 크게 넷이다. <아멜리에>로 유명한 오드리 토투가 27살 화가지망생 카미유를 연기한다. 굳이 지망생이라고 표현하는 건 그림을 그려 밥벌이를 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카미유는 청소업체 직원이다. 밤마다 빈 사무실에서 쓸고 닦고 휴지통을 비우는 게 그녀의 일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벌이는 대단치 않다.

그런 그녀가 필리베르(로렝 스톡커 분)와 만난다. 추운 겨울날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를 계속 틀리고 선 필리베르에게 먼저 다가가 문을 열어준다. "오늘 저녁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봐요. 제 생일이었거든요"하고 필리베르가 말한다. 카미유는 "생일 축하해요"하고 답한다.

둘은 며칠 후 마트에서 마주친다. 치즈를 고르고 있던 필리베르에게 카미유가 다가가 말을 붙인다. "치즈만 먹어요?" "엄청 좋아하거든요." "안 그래도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가워요." "저를요? 왜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편하게 소풍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소... 소풍 좋지요, 피크닉 바구니도 가져가야겠네요."

영화도, 소설도 카미유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저녁을 대접한 그녀의 제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의 한 장면.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필리베르는 요리사 프랑크(기욤 까네 분)와 함께 산다. 아침 일찍부터 매일 자정까지 쉴 새 없이 일하는 프랑크는 2주에 고작 하루 쉬는 날을 할머니와 보내야 한다.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한 할머니 입원비도 모두 프랑크의 몫이다.

할머니는 늙은 데다 몸까지 말썽을 부려 병원에 입원한 게 불만이다. 다시 퇴원해 마당에 식물을 기르고 닭과 고양이 밥을 주고 싶지만 더는 홀로 생활할 상황이 못돼서 괴롭다.

영화는 이들 네 사람이 서로 함께 살기까지의 이야기다. 우연과 필연이 거듭돼 이들은 만나고 함께 살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운다. 그 과정에서 충돌과 분쟁도 없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고 이해하며 나아가게 되는 보통의 이야기다.

가발다의 소설이 처음 출간됐을 때 그리 대단한 평가는 받지 못했다. 이야기 전체에서 특별한 사건이 없을뿐더러 플롯전개 역시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42개국에서 400만부 넘게 팔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품이 됐다.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의 한 장면.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1인 가구, 혼자이길 원해서일까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이 출간된 2004년, 영화가 제작된 2007년, 프랑스는 1인 가구 비율이 30%를 막 넘어섰다. 수입이 없거나 적은 대학생과 청년들도 독립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2020년 한국은 10여 년 전 프랑스 상황과 매우 가까이 있다. 1인 가구는 2015년부터 2인 가구를 추월해 한국에서 가장 흔한 주거형태가 됐다. 올해 한국 1인 가구 비중은 역대 최초로 30%를 넘긴 것으로 분석된다. 2037년엔 최소 35% 이상이 1인 가구일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프랑스 1인 가구 비중이 35% 내외다.

프랑스에서 소설과 영화가 인기몰이를 한 시점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올해 한국의 상황은 여러모로 유사하다. 독립한 1인 가구 청년들은 홀로서기만큼 관계맺기에 갈망을 느낀다.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영화와 책, 술과 음식을 매개로 월 십수만 원을 지불하며 유료모임을 갖는 사람도 늘어났다. 관련 업체가 십수 개에 이르고 개중엔 수십억대 투자까지 유치한 성공한 모델도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도 집 밖으로 뛰쳐나가 관계맺기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지탄을 받기도 한다. 쉽게 말하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스틸 컷. <마농의 샘>과 <제르미날>의 연출자이자 <아스테릭스> <잠수종과 나비> 제작자로 유명한 클로드 베리가 숨지기 2년 전 직접 감독을 맡았다.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스틸 컷. <마농의 샘>과 <제르미날>의 연출자이자 <아스테릭스> <잠수종과 나비> 제작자로 유명한 클로드 베리가 숨지기 2년 전 직접 감독을 맡았다. ⓒ 영화사 진진

    
함께이길 원하는 모든 혼자들에게

하지만 언제나 이면이 있다. 어느 때보다 많은 1인 가구가 있고,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2030 청년층이다. 지난해 기준 통계에 잡힌 것만 208만 명이다.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 속 카미유처럼 독감에 걸려 괴로워할 때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필리베르처럼 정서적으로 불안할 땐, 프랑크처럼 삶이 팍팍할 땐 누가 도움을 주나.

2030 세대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크의 할머니처럼 쓰러져도 아무도 알지 못해 시간이 흘러서야 발견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요리조리 살펴보아도 범작에 불과한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이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구가한 이면에는 진정으로 함께 있길 갈망한 사람들의 욕구가 자리한다. 공동주택을 적극 보급하고 수입 없는 1인 가구주에게 주거비 지원까지 하는 프랑스에서 그랬다.

문득 궁금해진다. 2020년 한국인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상을 가질지.

혼자 산다는 건 고독하고 때로는 불행해지는 일이다. 그 모든 고독과 불행을 건너 함께 있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영화사 진진 클로드 베리 오드리 토투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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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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