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는 가수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음악적인 부분으로 보나 대중적인 인기로 보나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가왕' 조용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다양한 개성을 가진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대중적인 인기로는 '발라드 황제'의 계보를 이었던 변진섭과 신승훈, 그리고 단일앨범 최다판매 기록을 보유한 김건모가 우위에 있었다. 록음악 마니아들은 밴드 보컬 출신의 임재범과 김종서, 김경호 등에게 열광했다.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가왕' 조용필은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 '공연의 제왕'으로 이승철을 지목했다(실제로 이승철은 '콘서트 황제' 이승환과 함께 오랜 기간 '공연계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했다).

2000년대로 접어든 후 가장 뛰어난 가창력의 남성 보컬은 크게 4명으로 압축되고 있다. 이들은 음악팬들 사이에서 '김나박이'라는 닉네임을 얻어 '노래본좌 4대장'으로 불리고 있다. 호불호를 가리지 않는 교과서적인 보컬을 자랑하는 김범수와 흑인소울을 가장 잘 살리는 'R&B의 적자' 나얼, 초인적인 피지컬을 앞세운 고음의 최고봉 이수, 그리고 허스키한 진성과 부드러운 가성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노래대장' 박효신이다.

허스키한 창법과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주목 받은 고교생 가수
 
 데뷔 전부터 '업계'에서 소문났던 준비된 신인 박효신은 2000년 1월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데뷔 전부터 '업계'에서 소문났던 준비된 신인 박효신은 2000년 1월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 케이앤씨뮤직

 
박효신은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축제 가요제에 출전해 박승화의 <넌 웃을 수 있었니>를 불러 대상을 받으며 노래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박효신은 고척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7년 부천 청소년가요제에 출연해 이기찬의 < Please >를 불러 대상을 차지했고 각종 크고 작은 노래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박효신은 고1 때 한 기획사에 들어가 가수 데뷔를 준비했지만 소속사의 재정난으로 한 차례 데뷔가 무산됐다.

이미 고교 때부터 준비된 신인으로 유명했던 박효신은 고3때 데뷔 준비를 위해 아현직업학교(현 아현산업정보학교)를 다녔다. 이 때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가 바로 플라이투더스카이의 환희와 휘성, 그리고 UV의 뮤지 등이었다. 그리고 박효신은 1999년 12월 1집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로 데뷔했다.

박효신의 데뷔곡은 윤사라 작사·신재홍 작곡의 <해줄 수 없는 일>. 박효신 특유의 허스키한 창법을 극대화한 곡으로 이 노래를 들은 대중들은 열이면 열,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래 활동한 '늦깎이 신인'이 데뷔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목소리에 관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어색하게 기른 머리를 5:5로 나눈 고등학생 소년 박효신이었다. 

박효신은 데뷔곡 <해줄 수 없는 일>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박효신은 2000년 봄 활동곡을 <바보>로 바꾸면서 '무서운 아이'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보컬리스트'로 진화했다. 데뷔 당시 박효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남성들마저도 <바보>에서 들려준 박효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매료돼 팬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박효신은 1집 발표 후 단 두 달 만에 레파토리가 얼마 없는 상태에서 단독콘서트를 개최할 정도로 공연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데뷔앨범을 통해 새 시대를 이끌어 갈 보컬리스트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뽐낸 박효신은 서둘러 2집을 준비했다. '뮤지션이 존경하는 뮤지션' 윤상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앨범 제작을 지휘했고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박효신의 두 번째 앨범은 2001년 1월 세상에 공개됐다.

윤상·김동률·유희열 등이 참여한 박효신 2집
 
 박효신 2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그 시절의 인기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박효신 2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그 시절의 인기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 케이앤씨뮤직

 
박효신 2집은 갓 스물을 넘긴 신예가수의 앨범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스타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다. 2집 타이틀곡은 프로듀서 윤상이 작곡하고 그의 오랜 파트너 박창학이 가사를 쓴 <먼 곳에서>였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나게 되는 남자가 제목처럼 '먼 곳에서' 그녀를 지켜 준다는 이야기로 박효신의 풍부한 감성과 허스키한 목소리의 매력을 잘 살린 슬픈 발라드곡이다. 

하지만 박효신 2집은 타이틀곡 <먼 곳에서> 외에도 앨범 전체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오랜 기간 잔잔하게 사랑을 받은 곡들이 많다. 대표적인 노래가 솔로 1집 활동을 마치고 버클리 음대에서 유학을 하던 김동률이 만든 후속곡 <동경>이었다. '짝사랑 노래의 절대지존'이라고 표현해도 좋은 <동경>은 최근까지도 박효신이 공연에서 많이 부르고 김동률 역시 개인 콘서트에서 부를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김동률이 만든 <동경>이 짝사랑의 처절함을 노래했다면 또 한 명의 음악천재 유희열이 만든 <위안>은 이별의 아픔이 잘 담겨 있는 곡이다(편안해 보이는 제목에 속으면 곤란하다). 연애시절 그녀에게 들었던 '사랑해'라는 한 마디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녀를 잊지 못한다는 유희열의 가사가 박효신의 목소리에 실렸다.

전소영과의 듀엣곡 <변심>은 'Bad boy'라는 부제처럼 이별을 통보하는 나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박효신 2집에서는 그나마 비트가 빠른 곡이다. 냉정하게 이별을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바보, 나를 사랑해선 안됐어'라고 울부짖는 박효신의 샤우팅이 압권이다. 이 한 소절로 인해 <변심>은 잔인한 이별 노래가 아닌 듣는 사람에 따라 수많은 사연을 담을 수 있는 애절한 곡으로 변신했다. 

박효신 2집은 한층 안정되고 깊이가 생긴 보컬과 프로듀서 윤상이 구현해 낸 세련된 사운드, 그리고 조규만, 김동률, 유희열 등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으로 37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효신 2집은 박효신의 팬들 사이에서도 소장가치가 높은 앨범으로 꼽힌다.

티켓 예매 사이트 서버 다운시키는 노래대장
 
 박효신은 무대에서 언제나 감정을 최대치로 분출시켜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박효신은 무대에서 언제나 감정을 최대치로 분출시켜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 KBS 화면 캡처

 
박효신은 2002년 3집 <좋은 사람>을 통해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차지하며 첫 지상파 순위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고 2004년에는 4집 타이틀곡 <그 곳에 서서>로 MBC <음악캠프>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2004년 11월에는 처절한 멜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드라마의 슬픔을 살린 OST <눈의 꽃>을 부르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눈의 꽃>은 많은 동료가수들이 박효신처럼 부르려다가 좌절을 겪은 노래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휘성, SG워너비와 함께 '소몰이 창법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던 박효신은 <눈의 꽃>을 기점으로 창법을 조금씩 바꿔 지금은 상당히 얇은 음까지 소화가 가능한 보컬리스트가 됐다. 실제로 초창기 곡인 <해줄 수 없는 일>과 작년에 발표한 <연인>을 비교해서 들으면 '정말 같은 가수가 부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목소리가 다르다. 물론 박효신은 혹사로 음색이 완전히 변해 과거의 목소리를 잃은 가수는 아니다.

보컬리스트로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박효신은 이제 콘서트를 하면 티켓을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가수가 됐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됐고 박효신 역시 올해는 한 번도 개인 단독 공연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박효신의 단독 공연은 언제나 전회매진은 기본이고 어지간한 인기아이돌 콘서트에 버금가는 예매전쟁 및 사이트 서버다운을 각오해야 한다. 

박효신의 팬클럽 이름은 영혼의 나무라는 의미의 '소울트리'인데 박효신은 팬들을 '나무님들'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에 팬들도 여기에 화답하는 의미로 박효신을 '대장나무'라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박효신의 별명이 '대장'으로 굳어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박효신이 노래를 제일 잘해서 '대장'으로 불린다고 알고 있는 대중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원에 상관없이 박효신은 가요계에서 '노래대장'으로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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