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돌 가수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 가까운 연습생 생활을 거친 후 정식으로 데뷔한다. 연습생들에게 투자하는 규모나 방법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아이돌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보컬과 춤뿐만 아니라 연기 트레이닝도 함께 받으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키워진다. 미스에이의 수지나 애프터스쿨의 유이, 걸스데이의 혜리 같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은 데뷔 전후로 꾸준히 연기 트레이닝을 받아온 '준비된 연기돌'이다.

하지만 80, 90년대까지만 해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노래 실력이 나쁘지 않은 연기자가 앨범을 내거나 외모가 출중한 가수들이 연기에 도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와 배우로 모두 성공한 사례는 굉장히 드물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극히 드문 사례 속에 보란 듯이 가수와 배우, 그리고 예능인으로 커다란 성공의 길을 걸었다.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예계를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군림하고 있는 임창정이 그 주인공이다.

쉽지 않았던 연예인의 길, <슈퍼 선데이>·<비트>로 대반전
 
 임창정(왼쪽)은 영화 <비트>에서의 열연을 통해 배우로서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임창정(왼쪽)은 영화 <비트>에서의 열연을 통해 배우로서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 삼성영상사업단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을 꿈꿔 온 임창정은 1990년 영화 <남부군>의 빨치산 역을 통해 데뷔했다. 이후 영화 <게임의 법칙>, 드라마 <해 뜰 날> 등에 출연하며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 임창정은 1995년 1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임창정은 자작곡 <이미 나에게로>를 통해 매력적인 보이스와 시원한 가창력을 뽐냈지만 대중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기엔 다소 부족했다.

임창정은 1996년 <혼자만의 이별>이 수록된 2집 앨범을 발표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임창정은 넘치는 끼로 예능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KBS의 예능 프로그램 <슈퍼 선데이>였다. 임창정은 <슈퍼선데이>의 시트콤 <금촌댁네 사람들>에서 이영자, 정선희, 홍진경 등 당대 최고의 여성 예능인들과 호흡을 맞추며 예능인으로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금촌댁네 사람들>은 데뷔 후 7년 간 무명에 가까웠던 임창정을 인기 예능인으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 촬영과 3집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1997년의 시작과 함께 임창정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1997년 5월에 개봉한 허영만 원작의 영화 <비트>가 방황하는 청춘들을 대거 극장으로 끌어 들이며 '배우 임창정'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정우성이 연기한 주인공 이민의 절친한 친구 환규를 연기한 임창정은 "너 어디서 좀 놀았냐 XXX아?", "내가 예전에 17:1로 싸울 때 말이지"같은 주옥 같은 명대사(?)들을 쏟아내며 엄청난 열연을 선보였다. 임창정은 <비트>를 통해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기상과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렸다.

특히 임창정이 직접 부른 <비트>의 OST <슬픈 연가>가 새삼스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임창정은 <비트>의 개봉시기에 맞춰 1997년 5월 3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봄을 휩쓴 <그때 또 다시>, 가을을 지배한 <결혼해줘>
 
 1997년에 발매된 임창정의 3집은 두 곡의 <가요톱텐> 골든컵을 배출한 메가히트 앨범이 됐다.

1997년에 발매된 임창정의 3집은 두 곡의 <가요톱텐> 골든컵을 배출한 메가히트 앨범이 됐다. ⓒ (주)엔에이취기획

 
임창정 3집의 타이틀곡은 애절한 발라드 <그때 또 다시>였다. 박주연의 슬픈 가사와 현악기를 마음껏 사용한 김형석의 웅장한 편곡, 그리고 감정 조절이 한층 능숙해진 임창정의 보컬이 조화를 이룬 <그때 또 다시>는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임창정은 <그때 또 다시>를 통해 KBS <가요톱10> 골든컵(5주 연속1위)을 비롯해 MBC <인기가요BEST50> BEST OF BEST(3주 연속1위),SBS <TV가요20> 왕중왕(5주 연속1위)을 차지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자 임창정은 활동곡을 경쾌한 댄스곡 < Summer Dream >으로 바꿨다. 이 곡으로 한창 인기를 얻어가던 도중 임창정은 교통사고를 당하며 활동을 일찍 중단해야만 했다.

임창정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 치료를 마친 후 활동곡을 감미로운 러브송 <결혼해줘>로 바꿨다. 좀처럼 가사를 쓰지 않는 김형석이 흔치 않게 작사에 참여한 노래 <결혼해줘>는 목에 힘을 뺀 임창정의 달달한 목소리가 더해지며 결혼 시즌을 맞아 다시 한 번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작사가 김형석'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고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인순이의 <이별연습>도 김형석이 가사를 쓴 곡이다).

80, 90년대 최고권위의 순위 프로그램인 <가요톱텐>에서는 조용필과 김민우, 박남정,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한 앨범에서 골든컵을 2회 이상 수상한 가수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임창정처럼 봄에 골든컵을 탄 가수가 한 계절을 쉬고 가을에 3번째 활동곡을 통해 다시 골든컵을 탄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임창정 3집이 오랜 기간에 걸쳐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다.

임창정 3집에는 3곡의 히트곡 외에도 임창정이 공을 들여 만든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혼해줘>의 가벼운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임창정의 자작곡 <지킬게>는 '미처 깨닫지 못한 오해가 있다면 서로에게 자주 표현하는 지혜로 모두 느낄 수 있게 해줄게 그만큼 널 사랑해'라는 진실된 가사가 인상적인 러브송이다. 임창정이 직접 가사를 쓴 <내가 웃는 건>도 희망적인 내용의 신나는 댄스넘버다.

<다 줄 거야>로 유명한 조규만이 작곡한 <너를 잊기로 했어>는 <그때 또 다시>라는 희대의 명곡이 없었다면 타이틀곡으로 내세웠어도 충분했을 발라드 곡이다. 다만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쉬어가는 구간 없이 내지르는 곡이기 때문에 노래방에서 함부로 부르다간 녹초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비트>의 OST로 연초부터 사랑을 받았던 <슬픈 연가> 역시 임창정 3집에 다시 실려 있다. 사실 영화에서는 임창정의 러브라인(환규는 조연답게 민이를 짝사랑하는 선아를 짝사랑했다)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슬픈 연가>가 '환규의 테마'로 쓰이기엔 노래가 지나치게 처절한 느낌이 있다. 임창정은 3집을 통해 1997년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가수 겸 만능 엔터테이너로 떠올랐다.

가요계, 영화계, 예능계모두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
 
임창정, 힘들지 않으면 아닌 임창정표 발라드! 가수 임창정이 1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예스아이엠 엔터테인먼트에서 열린 정규 16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신곡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를 선보이고 있다. 임창정의 정규 16집에는 발라드, 에너지 충전송, 청혼곡, 뽕필댄스곡 등 여러 장르의 곡이 담겨 있다.

▲ 임창정, 힘들지 않으면 아닌 임창정표 발라드! 가수 임창정이 지난 10월 1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예스아이엠 엔터테인먼트에서 열린 정규 16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신곡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를 선보이고 있다. 임창정의 정규 16집에는 발라드, 에너지 충전송, 청혼곡, 뽕필댄스곡 등 여러 장르의 곡이 담겨 있다. ⓒ 이정민


임창정은 3집의 대히트를 통해 남녀노소에게 사랑 받는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가수로서는 4집의 <별이 되어>와 <늑대와 함께 춤을>, 5집의 <러브 어페어>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6집의 <나의 연인>과<기쁜 우리>, 7집의 <날 닮은 너>, 8집의 <기다리는 이유>, 9집의 <슬픈 혼잣말>, 10집의 <소주 한 잔>을 연속으로 히트시켰다. 특히 SBS 가요대전에서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 연속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창정은 배우로서도 <비트>를 시작으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색즉시공>, <위대한 유산>, <시실리 2km>,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1번가의 기적> 같은 흥행작에 출연했다. 특히 2008년에는 영화 <스카우트>로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기도 했다. 어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루저 캐릭터' 연기는 임창정을 따라 올 배우를 찾기 힘들다.

임창정은 2003년 <소주 한잔>이 담긴 10집을 끝으로 가수 은퇴를 선언했지만 6년 만에 11집을 발표하며 컴백했다. 워낙 '가수 임창정'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대중들이 많았기에 임창정의 은퇴번복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임창정은 컴백 후에도 <나란 놈이란>, <또 다시 사랑>,<내가 저지른 사랑>,<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로 큰 사랑을 받으며 여전히 건재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임창정은 1990년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노래와 연기, 그리고 예능까지 모든 분야에서 정상권에 올랐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더욱 대단한 사실은 임창정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정상에 올랐던 소위 '천재형'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철저히 노력을 통해 정상의 자리에 오른 연예인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의 연기나 창법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만들지 않고 노력으로 정상에 오른 '평범한 연예인' 임창정의 성공은 시도보다는 포기가 더 익숙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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