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25일, 포탄이 빗발치는 흥남부두에서 한 척의 배가 필사적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60인승 미국 화물선인 그 배에는 정원의 200배가 훨씬 넘는 1만4000명의 피난민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항해는 훗날 '가장 작은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오른다. 역사의 회오리를 온몸으로 맞으며 치열하게 살아낸 메러디스 빅토리호 사람들, 이들을 추적해 한 편의 방송으로 만드는 기획안은 올해 '한국 콘텐츠 진흥원 방송 제작 지원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1년여에 걸쳐 방송 제작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를 싣고자 한다.[기자말]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1950년 12월,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에 나오는 가사처럼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는 남쪽으로 피난 가려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승선 인원이 겨우 60명에 불과했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는 1950년 12월 22일, 중대 결정을 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화물칸에 '화물' 대신 '사람'을 태우기로 결정한 것. 그리고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1만 4천 명의 피난민들로 꽉 찼다. 23일 오전, 배는 드디어 흥남부두를 떠나 필사의 탈출을 시작했다. 밤낮을 꼬박 달린 배는 12월 24일 오후 12시 30분,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그러나 연합군 측에서는 목숨을 걸고 탈출해 온 이 배의 부산 입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산 앞바다에서 하룻밤을 꼬박 대기한 배는 25일 다시 거제도를 향해 출발했다. 1950년 12월 25일 성탄절 오후, 배는 거제도 앞바다에 닿았다. 그런데 피난민들이 배에서 내릴 당시, 피난민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배에서 신생아가 태어난 것이다. '지옥의 항해'를 '기적의 항해'로 만든 메러디스 빅토리호, 그 영웅담 뒤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배에서 태어난 '김치 1호'

일흔의 나이지만 변함없이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손양영(70)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의 대표 종합상사에 들어가 대한민국 최고의 생산품인 철을 세계에 팔아왔다. 같은 업종으로 자영업을 시작한 후에는 무역의 날 행사에서 '오백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할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생일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0년 12월 25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의 부모님이 '크리스마스의 기적'라고 불리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탑승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탈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손양영씨의 부모님도 이 배에 탔다.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탈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손양영씨의 부모님도 이 배에 탔다. ⓒ 로버트 러니

 
70년 전, 손양영씨의 부모를 비롯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몸을 실었던 1만4천명의 사람들은 모두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거세게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피하고 싶었던 평범한 이들이었다. 

손씨의 아버지는 흥남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부모님에게는 9살 난 아들과 5살 난 딸이 있었다. 당시 손씨를 임신하고 있는 어머니는 만삭이라 피난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0만이 넘는 중공군이 밀어닥치고 유엔군의 퇴각이 급박하게 이뤄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전쟁의 한가운데서 모두들 젊은 사람이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잠시 몸을 피했다가 오라고 재촉했다. 부모님과 의논 끝에 아버지는 큰 아들과 딸을 부모님께 맡기고 어머니와 함께 단 둘이 배에 올랐다. 그 배가 피난민을 싣고 흥남부두를 떠난 마지막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그 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그 이별이 길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배에 거의 마지막으로 승선한 젊은 부부는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갑판 한 켠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밤새 함포 사격으로 불덩이가 날아다니고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갑판에서 이틀을 보내고 있는데, 아직 출산일이 남아 있던 어머니가 진통을 하기 시작했단다.       

"어머니가 갑자기 산기를 느껴서 진통을 시작했대요. 그런데 배에 의사가 있습니까? 주변에 계시던 피난민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감싸고 아기를 받아낸 거죠. 그게 접니다."     

미국의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48명의 미국인 승무원들이 타고 있었다. 미국 승무원들은 의사도 없이, 평범한 여인들이 능숙하게 아이를 받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뒷날 회고했다. 

그러나 기적의 역사를 쓴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을 하면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당시 승무원들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 몇몇이 한국에 초청을 받아 왔다.   

그때 손양영씨가 메러디스 빅토리호 2등 항해사 로버트 러니씨를 만났다고 한다. 자신이 배에서 태어난 아기라고 말하자 로버트 러니씨는 아주 반가워하며 그를 끌어안았다고 한다. "당신이 김치 1호군요"라면서 말이다. 손씨는 그때까지 자신이 '김치 1호'로 불렸던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배에서는 5명의 아기가 태어났어요. 통역이 없어 말도 통하지 않던 당시 우리들은 김치 1호, 2호 이런 닉네임으로 불린 거죠. 의무실에 옮겨졌던 제가 바로 김치 1호였어요."    

북에 두고 온 자식 잊지 못한 어머니
 
 젊은 시절 김치 1호 손양영씨의 어머니의 모습

젊은 시절 김치 1호 손양영씨의 어머니의 모습 ⓒ 추미전

 
남한으로 올 때 32살이었던 젊은 엄마는 북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을 잊지 못해 평생 눈물바람을 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북쪽을 향해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히 비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자랐다. 어머니는 북쪽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남쪽에서 더 이상 아이를 낳지도 않았다. 거제도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간 이유도 언제든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손양영씨가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을 의정부의 한 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 꼭 이 자리에 묻어달라는 말을 하며 직접 찾은 묘자리를 보여주었다. 보통 산소들이 남쪽을 향하는 것과 달리 그 산소는 북향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서는 북쪽의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죽어서라도 아이들을 지켜보고 싶다며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나면 이곳에 합장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의정부에 있는 부모님의 산소. 고향땅 북쪽을 바라보도록 북향으로 조성돼 있다.

의정부에 있는 부모님의 산소. 고향땅 북쪽을 바라보도록 북향으로 조성돼 있다. ⓒ 추미전

 
남북한 화해무드가 조성될 때마다 희망을 가지고 뉴스를 지켜보던 두 분은 결국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남긴 유품 가운데 하나를 손양영씨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이 도착해 먹고살기가 힘들었던 거제도에서 찍은 손양영씨의 백일사진이다. 아버지가 난리통에서도 백일 사진을 찍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제가 북에 있는 형님, 누나 얼굴을 모르니 이 사진을 잘 간직하라고 하셨어요. 저의 어릴 적 모습이 형님을 닮았으니 형님을 만나면 이 사진을 보여주라고 하셨죠."  
   
 
 손양영씨의 백일 사진 뒤에 아버지가 남긴 친필 글씨- 이것은 소중한 사진이니 태영을 만날때까지 소중히 간직할 것

손양영씨의 백일 사진 뒤에 아버지가 남긴 친필 글씨- 이것은 소중한 사진이니 태영을 만날때까지 소중히 간직할 것 ⓒ 추미전

 
사진 뒤에는 아버지가 직접 적은 형님과 누나의 이름이 남아 있다. 얼굴도 모르는 형제를 만났을 때 징표로 삼으라는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간절한 바람과 달리 사진은 아직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의 생일이 왔다. 12월 25일 성탄절, 포탄과 기뢰를 뚫고 거제도에 도착한 배 위에서 태어난 기적의 상징 '김치 1호', 그가 아버지의 간절한 유언을 지킬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일지, 그의 기다림이 한없이 길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및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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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작가 협회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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