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시리즈 <리얼 디텍티브>는 진짜 형사들이 등장해 내레이션을 맡는다. 강력계 형사들이다. 그들은 과거 자기가 직접 수사했던 강력사건(주로 살인)들이 자기 인생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큐멘터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재연' 장면인데, 배우들이 연기한다. 연기파 배우들을 아주 제대로 캐스팅해서 그런지, 재연된 사건과 인물들이 모두 실감나게 다가온다.

에피소드들은 각각 하나의 사건을 보여준다. 예외적으로 두 건 이상의 살인사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경우 형사의 실수로 놓쳐버린 사람이 범인이었다. 무려 9년 전 용의자였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 재범을 저지른 후 다시 붙잡힌 그 사람을 보면서, 형사는 붙잡은 기쁨보다 9년의 시간 차를 두고 동일 범죄가 일어났다는 것에 대하여 몹시 안타까워한다. 

40분가량의 에피소드 한 편이 끝나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해당 사건 관계자들(범죄자, 피해자, 형사)의 가족사진 등이 공개된다. 그리고 사건 이후 뒷이야기도 짤막하게 자막으로 보여준다. 어떤 범죄자는 86년 형이나 94년형을 받았고, 또 다른 범죄자는 120년 형을 받았고, 어떤 이는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살해된 것이 확실하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까닭에 실종상태인 자신의 아이를 수십 년 동안 여전히 기다리는 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후일담을 알려주기도 한다.

현재 시즌2까지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있으며, 각 시즌당 8편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그리고 강력계라는 특징 때문인지, 총 16편 중 여성형사의 내레이션은 단 두 편뿐이다.

이 다큐멘터리 시청자들은 누구나 각 에피소드의 등장인물인 강력계 형사들에게서 공통점을 세 가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그들은 '난 훌륭한 형사!'라는 것을 떠벌이지 않는다. 24시간 내내 수사에 매달렸다, 강박적일 정도로 사건에 몰입했다, 영구미제사건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긴 한다. 그렇지만, '나 정도 되니까 해결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대놓고 오만한 표현을 사용하는 형사들은 없다.

오히려 파트너의 훌륭한 점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칭찬하고, 자신의 실수담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한숨짓는다. 수사하는 동안 얼마나 피로했는지 괴로웠는지, 그리고 허술했는지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고백한다. 물론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사전에 잘 협의했을 수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들의 태도를 보고 있으니, 오히려 더 신뢰감이 든다.

두 번째 공통점은 형사들이 하나같이 오랫동안 강력계 형사로 활동하며 살인사건 해결에 성심성의를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자와의 심리적 대치 끝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되어 조금 이르게 은퇴한 형사도 있는데, 그는 은퇴 이후에도 범죄수사 컨설턴트로 활동한다. 형사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남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공통점은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이기도 한데, 바로 '눈물'이다. 다큐멘터리 에피소드의 자료이자 주인공인 그들-냉철한 강력계 형사들이 대체로 참 잘 운다.

이 강력계 형사들은 피해자 가족이 느끼는 슬픔에 공감하기도 하고, 피해자가 죽기까지 느꼈을 고통에 공감하기도 한다. 그 공감의 기억이 내레이션 도중에 그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럴 때 그들은 내레이션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른다. 수사 도중 파트너가 살해당하는 경험을 한 형사도 있었는데, 그 일을 회상하면서 그는 서럽게 흐느낀다. 간혹 형사가 너무 울 경우엔 화면이 바로 암전된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다시 화면에 등장하면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상해있다. 편집과정에서 웬만큼 걸러졌을 텐에도 불구하고 울보 형사들의 모습이 확연하다.
 
그에 반하여, 이 강력계 형사들이 체포한 범죄자들은 '눈물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범죄자들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으며, 공감하지 못한다. 자기자신의 느낌에도 무덤덤하다. 형사들의 강압수사에도 움찔은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간혹 죄책감을 느끼는 범죄자도 있었으나, 극소수였다. 형사들은 자신이 체포한 범죄자들이 대체로 공허한 눈빛, 비어있는 껍질만 있는 존재들같이 반응했다고 증언한다.

강력범죄 수사 후일담으로 구성된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어를 꼽으라면 '공감'이 아닐까 싶다. 공감하지 못할 때 인간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반대로 감정에 충분히 공감할 때 인간은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나아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범죄사건을 샅샅이 수사하고 끝까지 뒤쫓는 형사들은 이성적 추론을 주로 활용하며 예리한 직관도 때로 적용한다. 그런데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동력은 다름 아닌, 인간으로서 따뜻한 감정임에 틀림없었다.

<리얼 디텍티브>를 보노라면 그들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이 정말 잘 느껴진다. 자기의 지능을 잰체하듯 내세우며, 심지어 소시오패스(Sociopath)라고 자신을 소개하기까지 하는 드라마 속 명탐정 셜록(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으로 활약한 <셜록>)은 어쩌면 말 그대로 허구의 드라마 안에서나 가능한 게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하여 타인들 만나기가 많이 꺼려지는 때다. 앞에 불쑥 나타난 사람이 마스크 미착용자라면 불안이나 분노가 일어나는 요즘이다. 안 그래도 별로 안 따뜻했던 사회 분위기가 코로나19 팬데믹을 핑계로 더 차가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갑자기 날도 추워졌다.

이 겨울,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목 및 작품소개 문구에서는 별 매력이 안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력계 형사들의 다소 건조한 듯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감동을 번번이 마주하게 되리란 거, 장담한다. 이 '울보' 형사들이 울보여서 어찌나 고마운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인미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얼 디텍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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