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nner Takes It All"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는 이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패배자는 승자보다 주목을 받기도 한다.

지난 14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는 팀 대항전이 펼쳐졌다. 이날 1호 벤티와 45호 윤설하는 30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견우와 직녀' 팀으로 묶였다. 이들은 투애니원(2NE1)의 히트곡 '어글리(Ugly)'를 선곡했다.

앞선 방송에서 윤설하가 "어느 가수 오디션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불이익을 봤다"라고 인터뷰한 사실을 떠올린 벤티의 제안이었다. 취지는 좋았으나 윤설하는 연습할 때부터 적잖이 흔들렸다. 데뷔한 지 36년이 흘렀지만 기타 없이 하는 무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건 연습밖에 없었다.

'견우와 직녀'에 맞서는 팀은 37호 태호와 50호 윤영아가 뭉친 '부모님이 누구니'였다. 먼저 무대에 선 '부모님이 누구니' 팀은 박진영의 댄스곡 '어머님이 누구니'를 섹시하고 멋지게 소화해내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유희열은 "완성도라든지 실력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싱어게인>하면서 지금까지 봤던 무대 중에 제일 감동적이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윤설하와 벤티의 'Ugly' JTBC '싱어게인' 방송화면 캡처

▲ 윤설하와 벤티의 'Ugly' JTBC '싱어게인' 방송화면 캡처 ⓒ JTBC

 
앞 팀의 선전으로 더욱 긴장한 견우 벤티와 직녀 윤설하. 이들은 손을 꼭 잡은 채 무대에 올랐다. '어글리(Ugly)'의 전주가 흐르고 윤설하가 먼저 첫 소절을 불렀다. 심사위원들은 나지막한 윤설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심사위원인 다비치 이해리는 눈물이 맺힌 상태로 무대에 집중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무대는 훌륭하지 못했다. 노래가 조금씩 엇박이 난 것은 물론, 윤설하는 영어 가사를 놓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 것. 심사위원은 물론 시청자들도 같이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윤설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벤티가 윤설하와 눈을 맞추며 윤설하의 몫이었던 노래를 대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벤티의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에 의지하며 윤설하는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 노래가 끝난 후 벤티는 윤설하를 다독이며 "고생했다. 정말 잘했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벤티의 표정에는 무대를 망친 아쉬움보다 윤설하가 상처 받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심사위원들은 질책 대신 격려를 보냈다. 심사위원 김이나는 "박자를 놓치셨을 때 그것마저 장면이 되게 만든 건 우리가 모르는 두 사람만의 시간이 거기서 보였기 때문이다. 45호가 실수하는 순간 1호님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45호를 보시더라. 어떤 실수는 히스토리를 보여주기도 하는구나 싶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무대였다"라고 평했다.

유희열은 "MR이 원곡과 많이 다르더라. 1호님에게는 키가 높다. 오히려 45호님께 최적화되어 있다. 45호님은 평생 기타를 치면서 감정대로 리듬을 타 왔던 분이셨기 때문에 대단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45호의 노력과 1호의 배려가 만들어낸 최고의 무대였다"라며 '견우와 직녀' 팀을 치켜세웠다. 

MC 이승기도 "이제껏 가수로서 실수 없이 완벽하게 무대를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무대를 보면서 실수란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대결이 아니라 그 이상을 보여준 무대였다"라고 인상깊은 감상평을 내놓았다.

다음날까지 회자된 이름, 벤티

다른 매력으로 감동을 선사한 두 팀이었지만 승패는 가려야 했다. 결국 '부모님이 누구니'가 승리했다. <싱어게인> 도전을 마치는 '견우와 직녀'에게 이승기가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윤설하는 45호라는 이름에 가려진 본인의 이름을 공개하며 "'김창완과 꾸러기들' 활동을 했고 1991년에 '벙어리와 바이올린'이라는 곡으로 솔로 데뷔를 했던 윤설하다. 너무 오랜만에 서 보는 무대였고 노래였다. <싱어게인> 하면서 다시 노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생각해봤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제 노래의 시작을 열어줘서 감사하다"라고 인사했다.

벤티도 1호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게 해 주신 심사위원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 무대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해 준 45호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14일 밤늦게 방송된 <싱어게인>은 다음 날인 15일 저녁까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특히 많이 회자된 이름이 있었다. 바로, 탈락자 벤티였다. 누리꾼들은 "제일 와 닿았다", "노래 하나로 펑펑 울었다", "벤티의 배려와 인성에 감동했다"라고 칭찬을 이어갔다. 실수한 45호는 그렇다 하더라도 벤티는 합격시켜줘야 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싱어게인>의 룰상 탈락한 팀의 멤버를 부분 합격시키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 자리에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위해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공정하게 누가 다음 라운드를 진출할 만한 인물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시청자들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심사위원들은 소신대로 판단하라는 임무를 받고 그 자리를 빛내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가창력이 아직 설익게 느껴지는 가수라면 아무리 감동을 줬더라도 탈락을 시키는 편이 공정하다.

무명가수에게 더 중요한 것

무명가수에게 라운드 진출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는 것이다. 데뷔 36년 차 윤설하도 5년 전 첫 앨범을 낸 벤티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자 <싱어게인>에 도전했다. 비록 이번에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시청자들을 든든한 우군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행보를 기대하는 팬들이 생긴 것이다. '데뷔 36년 차'라는 딱지가 버거워 차라리 떼 버리고 싶었을 윤설하에게도, 가벼운 입담꾼 이미지의 벤티에게도 기적같이 싱어게인의 순간이 왔다.   

예능 <싱어게인>의 가치는 주목받는 1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최선을 다해 꿈틀대는 무명가수들의 이름을 한 번 더 반짝이게 하는 데에 있다. 이들에게 벌어지는 기적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어느 시청자에게도 희망을 불어넣어 줄지도 모른다. 먼지 쌓인 내 이름의 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덕분에 매주 순위를 매겨야 하는 서바이벌 형식임에도 <싱어게인>에서는 훈김이 돈다. 다음 화에서는 어떤 무명가수가 빛나는 탈락을 보여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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