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에 첫 방송된 tvN 드라마 <철인왕후>는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을 선보이고 있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능글능글한 남자 셰프 장봉환(최진혁 분)이 낚시 바늘 섞인 음식을 중국대사 초청 만찬에 내놓은 일 때문에 경찰 수사를 받다가 물속에 빠진 뒤의 사연을 다룬다.
 
수사관들을 피하다가 건물에서 떨어져 물에 빠진 장봉환은 그 속에서 낯선 여성을 만난다. 그는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발견하고 그 여성의 입맞춤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 느낌과 동시에 장봉환은 그 여성의 시대에, 그 여성의 집에, 그 여성의 육체가 되어 나타난다. 단, 기억과 언어만큼은 여전히 장봉환 자신의 것이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물속의 입맞춤과 함께 자기 영혼을 잃고 장봉환에게 육체를 내준 여성은 조선 철종 임금의 부인인 철인왕후(신혜선 분)다. 왕비에 간택된 뒤 책봉식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철인왕후가 창경궁 춘당지에 빠졌다가 '영혼 가출'이라는 변을 입은 것이다. 왕비 책봉식 직전에 장봉환이 왕비의 몸으로 환생했다 했으니, 드라마 제1회의 배경 시점은 철종 즉위 2년 뒤인 1851년이 된다.
 
그런데 장봉환의 기억과 철인왕후의 육체가 하나가 됐다. 이것이 많은 사연을 낳는다. 철인왕후의 시녀들은 물에서 구조된 왕후의 확 달라진 모습에 직면하게 된다. 말하는 태도며 앉아 있는 모습이며 걸어 다니는 자세 등이 너무나 판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궁녀를 쳐다보거나 궁녀와 몸이 닿을 때의 시선. 그것은 이전의 왕후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시선을 두 눈에 담은 채로 드라마 속의 철인왕후, 아니 장봉환은 철종(김정현 분)과 부부로 살아가야 한다.

자기 가문의 정권 유지 역할
 
 tvN <철인왕후> 한 장면.

tvN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철인왕후는 헌종 때인 1837년 어머니 이씨와 아버지 김문근(1801~1863)의 딸로 태어났다. 김문근은 순조의 장인으로서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발판을 구축한 김조순의 7촌 조카벌이다. 원래는 11촌이었지만 김문근의 입양을 통해 7촌으로 바뀐 관계다.
 
김옥균의 갑신정변 이듬해인 1885년에 개화파가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는 책으로, 일본 덴리도서관에 있다가 1987년 국내에 소개된 <흥선대원군 약전>에 따르면, 김문근은 철종시대에 김좌근(김조순 아들), 김병기(김좌근 양자), 김병국(김조순 11촌)과 더불어 안동 김씨 4인방을 형성됐다. 딸이 철종의 왕비가 돼 있을 때 정치적 전성기를 누렸던 것이다.
 
'철종시대의 안동 김씨' 하면 흥선군 시절의 이하응을 핍박하는 권세가들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은 소설가 김동인의 <운현궁>이 빚어낸 잘못된 이미지에 근거한 것이다.
 
흥선군 집안 외에는 마땅한 왕손이 없었던 시절에 <운현궁> 속의 안동 김씨들처럼 흥선군을 박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권력 흐름에 민감했던 안동 김씨 가문이 그런 행동을 할 리 없었다. 김문근 역시 마찬가지였다. <흥선대원군 약전>은 김좌근·김병국과 더불어 김문근이 흥선군을 매우 후하게 대접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왕후로 있는 동안에 아버지 김문근이 가문 사람들과 함께 전성기를 누린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철인왕후는 자기 아버지는 물론이고 안동 김씨 가문의 세도정치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정조가 죽은 뒤인 순조·헌종·철종시대에 경주 김씨, 풍양 조씨, 안동 김씨가 왕도정치(유교적 합법정치)의 정반대인 세도정치(특정 가문의 비제도적 독재정치)를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씨 왕실과의 혼인관계 때문이었다. 힘없는 왕들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사돈가문이라는 지위 덕분이었다. 이런 가문의 지위는 왕실에 시집간 여성한테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도가문 출신 왕후들은 국정에 직접 간여하지 않는다 해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의미가 컸다. 철인왕후 역시 그런 존재였다. 그는 안동 김씨의 권세가 절정에 달했던 철종시대를 살면서 자기 가문의 정권 유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또 다른 의미에서도 그는 역사적 의의를 띤다. 그는 여섯 살 연상인 철종이 죽고 철종의 7촌인 고종이 즉위하고 뒤이어 흥선대원군이 실권자가 되어 안동 김씨 세도는 물론이고 세도정치의 기반 자체를 파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 김문근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던 흥선군이 자기 가문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트리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런 뒤 그는 흥선대원군이 아들 부부의 정치공작에 의해 2선 퇴진을 당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다음에 1878년에 향년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도시대의 몰락 목격한 증인
 
 철인왕후와 철종의 무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경내의 예릉이 이 부부의 무덤이다.

철인왕후와 철종의 무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경내의 예릉이 이 부부의 무덤이다. ⓒ 김종성

 
그런 의미에서, 철인왕후는 안동 김씨 세도가 절정기를 구가했다가 몰락하는 모습뿐 아니라 그것을 몰락시킨 장본인이 아들 부부에 의해 몰락하는 장면까지 다 지켜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도시대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후반부의 상당부분을 목격한 증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같은 정치적·역사적 의의와 대비되는 것은 그의 개인 생애다. 세도정치의 전성기와 몰락기라는 스펙타클한 시대를 산 인물이지만, 그 자신의 삶은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그의 삶은 장봉환과 오버랩된 드라마 <철인왕후>의 주인공과도 달랐다. <철인왕후>의 왕비는 '영혼 가출' 상태에서 장봉환의 능글능글한 모습을 담고 있지만, 실록 속의 철인왕후는 전혀 딴판의 이미지로 기록돼 있다.
 
철인왕후가 죽은 뒤 그의 생을 정리한 지문(誌文)에 따르면, 그는 자기 주관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음력으로 고종 15년 9월 18일자(양력 1878년 10월 13일자) <고종실록>에 실린 이 지문은 그의 성격을 "혹시라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일이 없었다"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어려서부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장봉환의 마인드를 갖게 된 드라마 속 철인왕후는 궁녀들을 대할 때 눈빛이 달라지지만, 실제의 철인왕후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위 지문은 "성장하면서, 침묵하고 말이 적었으며,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만 14세에 왕비가 된 뒤 41세에 세상을 떠났다. 27년간 궁궐 생활을 하면서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된 의무가 있었다. 왕실 어른들을 지극정성으로 공양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가 입궁할 당시, 왕실에는 세 명의 어른이 있었다.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 김씨, 효명세자(추존왕 익존, 순조의 아들)의 부인인 신정왕후 조씨, 헌종(효명세자의 아들)의 두 번째 부인인 효정왕후 홍씨가 그들이다. 지문에 따르면, 철인왕후는 세 사람 모두를 극진히 모셨다. 궁녀들을 시키지 않고 자기가 직접 나서는 그의 모습은 궁궐 사람들을 감복시킬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모신 세 어른은 풍양 조씨, 안동 김씨, 남양 홍씨 소속이다.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는 세도가문이었고, 남양 홍씨는 그 단계까지는 안 갔지만 만만치 않은 가문이었다. 가문을 중심으로 정치 활동이 이뤄진 시절이었으므로 세 사람은 세 정당 혹은 세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들이었다.
 
철인왕후는 세 사람을 대할 때 정치색을 띠지 않았다. 아랫사람으로서 똑같이 대했다. 공정한 아랫사람의 모본을 보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이런 자세는 그의 그릇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또 검소함으로도 유명했다. 지문에 따르면, 역대 왕비들과 달리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겨울에는 무명옷을 입고 여름에는 모시옷을 입었다고 한다. 세도가문 출신 왕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철인왕후는 정치적 비중에 비해 매우 겸손하고 모범적이며 공정한 삶을 보여주었다. 이런 철인왕후를 드라마 <철인왕후>는 능글맞은 셰프 장봉환을 오버랩시킨 상태에서 표현하고자 한다. 철인왕후의 실제 모습이 이 드라마를 통해 어떻게, 얼마나 변형될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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