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발라드 가수로 이름을 날렸던 '둘리' 변진섭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CF에 출연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물론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변진섭에게 CF섭외가 들어오지 않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변진섭은 물 밀 듯 들어오는 CF섭외를 모두 거절했다. 뮤지션으로서 상업적인 활동에 자신의 이미지를 팔 수 없다는 일종의 '신념' 때문이었다.

변진섭이 인기스타의 척도이자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던 광고를 모두 거절한 이유는 롤모델이자 '초대 발라드황제'로 불리던 선배가수 이문세의 영향이 컸다. 당시 변진섭은 이문세에게 CF 활동에 대해 조언을 구했고 이문세는 '진정한 음악인은 음악 외의 활동은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논리로 변진섭의 CF 출연을 말렸다고 한다(그리고 이문세는 몇 년 후 인기스타 고소영과 함께 음료광고에 출연했다).

변진섭의 'CF 거절사건(?)'은 3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됐다. 하지만 실제로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여전히 외부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가수도 있다. 지난 1990년 데뷔 후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30년 동안 단 한 번의 CF 출연 없이 오로지 음악만을 고집해 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세 번째 '발라드 황제' 신승훈이 그 주인공이다.

'거물' 김현식이 세상을 떠난 날 데뷔한 초대형 신인가수
 
 신승훈 2집의 <보이지 않는 사랑>은 지상파 음악방송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신승훈 2집의 <보이지 않는 사랑>은 지상파 음악방송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신승훈은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초·중·고·대학교 과정을 마친 대전 토박이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키운 신승훈은 충남대학교 진학 후 통기타 동아리와 대전의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면서 무대 경험을 쌓았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일찌감치 대전에서 유명인사가 된 신승훈은 대전MBC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보조 MC와 고정 게스트, 이문세 대전 콘서트의 코러스로 참여했다. 

신승훈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큰 성과 없이 고생만 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내려 갔다. 하지만 당시 음반회사에 돌렸던 데모테이프가 서울 강남 일대에서 DJ를 하고 있던 김창환(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등을 만든 프로듀서, 최근엔 직접 데뷔시킨 밴드의 폭행방조,폭언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에게 흘러 들어갔다.

데모테이프를 통해 들은 신승훈의 목소리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김창환은 직접 대전으로 내려가 신승훈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대전의 밤무대 가수 신승훈은 드디어 데뷔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신승훈이 데뷔곡은 1990년 11월 1일에 세상에 공개됐는데 이는 1987년 세상을 떠난 '천재뮤지션' 유재하의 기일로 신승훈이 평소 존경하는 뮤지션이었던 유재하를 기리는 의미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신승훈이 데뷔하던 그 날 또 한 명의 위대한 보컬리스트였던 '가객' 김현식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뮤지션(유재하)의 3주기였던 1990년11월1일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가수(김현식)가 세상을 등졌고 다음 시대를 이끌어 간 또 한 명의 위대한 가수(신승훈)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운명 같은 우연'들이 겹친 하루였다.

신승훈의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잔잔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신인 같지 않은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신승훈의 노련한 보컬이 돋보이는 명곡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완성도 높은 데뷔곡을 '초짜신인' 신승훈이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지금껏 보기 힘들었던 초대형 신인가수의 등장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91년에는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무대매너를 자랑하는 <오직 하나뿐인 그대>의 심신,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만든 미남 작곡가 출신의 윤상 등 걸출한 신인들이 대거 데뷔했다. 하반기에는 <이별 아닌 이별>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범학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대형 신인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노래 실력을 뽐내던 신승훈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신승훈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에 이어 김창환이 쓴 후속곡 <날 울리지마>까지 크게 히트시켰다(하지만 <날 울리지마>는 훗날 표절시비에 휘말렸다). 이 외에도 <오늘 같이 이런 창 밖이 좋아>, <돌아봐줘> 등 소위 '신승훈표 발라드'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승훈 1집은 데뷔 앨범 임에도 1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1991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됐다.

한 겨울에 시작해 봄까지 1위 유지한 <보이지 않는 사랑>

신승훈은 1집 활동을 하면서 곧바로 2집 앨범을 준비했다. 신승훈의 절친한 친구이자 신승훈의 2000년대 최고 히트곡 <I Believe>를 만든 작곡가 김형석이 독특하게도 작곡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프로듀서로만 참여해 2집에 수록된 전곡을 편곡했다. 그리고 1991년 11월 가요계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신승훈의 두 번째 앨범이 발매됐다.

신승훈 2집의 타이틀곡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불멸의 히트곡 <보이지 않는 사랑>이다. 도입부에 삽입된 베토벤의 가곡 <Ich Liebe Dich>가 시작부터 듣는 이의 귀를 압도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은 신승훈이 80년대 한국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고 곽지균 감독의 <겨울나그네>를 보다가 가곡이 주는 '슬픔의 미학'에 흠뻑 빠져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물론 가사 속 주인공은 신승훈의 옛사랑).

1992년 상반기, 신승훈과 <보이지 않는 사랑>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물론 도입부의 가곡 <Ich Liebe Dich>도 좋았지만 노래 말미의 "내일이면 찾아올 그리움 때문일... 꺼야"가 주는 애절함은 이 노래의 백미였다. <보이지 않는 사랑>은 SBS <인기가요>에서 무려 14주 연속 1위라는 비상식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신승훈의 14주 연속 1위 기록은 한국 기네스 협회에 등재되기도 했다.  

참고로 소녀시대를 일약 국민 걸그룹으로 만들어준 <GEE>가 세운 기록이 9주,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10주 연속(이상 KBS <뮤직뱅크> 기준) 1위가 기록이었다. 따라서 신승훈의 14주 연속 1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기록이다. 쉽게 말해 추운 겨울부터 벚꽃이 필 무렵(정확히 말하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요계에 아무도 신승훈의 경쟁자가 없었던 셈이다.

신승훈의 폭발적인 인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은 후속곡 <우연히>에서도 증명됐다. 이승철의 솔로 데뷔곡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의 작곡가 박광현이 만든 미디움 템포의 댄스곡 <우연히>는 또 한 번 <가요톱텐>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차지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로써 신승훈은 1990년의 김민우(<사랑일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이후 2년 만에 한 앨범에서 골든컵 2곡을 배출한 가수가 됐다.

신승훈 2집은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앨범답게 수록곡 전체가 큰 사랑을 받았다. 신재홍이 작곡한 <영원히 사랑할거야>와 유정연의 곡 <가을빛 추억>은 김형석의 깔끔한 편곡과 신승훈의 맑은 음색이 어우러지는 발라드 명곡으로 여성팬들의 단골 라디오 신청곡이었다. 신승훈 2집에서 유일하게 가벼운 느낌의 노래 <햇살 속으로>는 충남대 통기타 동아리에서 만난 백병교가 만든 곡이다.

신승훈 2집에서 잔잔하면서도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던 숨은 명곡은 바로 신승훈이 직접 만든 7번 트랙 <쉬운 이별>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비롯해 신승훈 2집의 수록곡들은 무거운 앨범 분위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쉬운 이별>은 가사 내용은 슬프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곡과 신승훈의 담백한 보컬로 제목처럼 이 앨범에서 그나마 듣기 편안한 노래였다.

신승훈 2집은 147만장(한국 음악 통계 연감 기준)이 팔리며 1991~1992년에 발매된 앨범 중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신승훈은 1992년에만 3개 지상파 방송국의 순위 프로그램에서 무려 40개의 1위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연말의 1992년 골든디스크 대상과 KBS <가요대상> 대상도 당연히 신승훈의 몫이었다(MBC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10대가수가요제> 가수왕이 됐고 SBS의 연말 가요 대상은 1996년부터 시작됐다).

대중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주는 발라드 황제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신승훈은 여전히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신승훈은 여전히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SBS 화면 캡처

 
신승훈은 2집 앨범을 통해 많은 기록들을 남기며 일찌감치 가수 생활의 정점을 찍었지만 이는 '발라드 황제'의 전성기를 알리는 출발신호에 불과했다. 신승훈은 1993년 3집 <널 사랑하니까>와 <처음 그 느낌처럼>으로 173만장, 1994년 4집 <그 후로 오랫동안>과 <오랜 이별 뒤에>로 164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와 함께 대한민국 가요계의 '삼대장'으로 군림했다.

신승훈 인기의 최전성기는 바로 1996년 4월에 발매된 5집이었다. 신승훈은 5집에서 타이틀곡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비롯해 <운명>, <내 방식대로의 사랑> 등 3곡의 히트넘버를 만들며 역대 2위에 해당하는 248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90년대 중반 김건모와 신승훈이 연이어 이런 황당한 기록들을 터트리는 바람에 당시엔 300만 장 판매 기록도 금방 달성될 줄 알았다).

신승훈은 데뷔 앨범부터 2000년에 발표한 7집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까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유일무이하게 '7연속 밀리언 셀러(100만장 이상 판매)'를 달성했다. 90년대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가요 시장이 가장 풍요로웠던 황금기였음을 고려하면 그 시절 가요계에서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보컬리스트로서 누린 신승훈의 위상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실제로 신승훈의 누적 음반 판매량은 무려 1700만장에 달한다.

그렇게 영원한 발라드의 황제로 남을 듯 했던 신승훈도 7집을 기점으로 대중적인 인기로는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렸다. 앨범을 발매하는 주기도 점점 길어지며 2006년 10집 앨범 발표 후 11집까지 9년이 걸렸고 2015년 11집 앨범을 발표한 후에는 5년 넘게 정규 앨범 발매 소식이 없다(신승훈은 2002년 연예기획사 도로시 컴퍼니를 설립해 2017년 솔로 가수 로시를 데뷔시키기도 했다).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의 '발라드 황제 계보'는 80년대 중반 이문세를 시작으로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로 이어진다. 모두 대단한 가수들이었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신승훈만큼 길고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진 못했다. 그리고 가요계의 흐름이 아이돌 중심으로 완전히 바뀐 지금, 신승훈처럼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갖춘 걸출한 발라드 가수는 어쩌면 영원히 등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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