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에 소크라테스라니, 가수 나훈아가 '테스 형'을 부를 때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열광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테스 형의 그 말 한 마디가 그토록 통쾌했던가.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는 건 테스 형만이 아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MBTI(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 붐이 일고 있다. 인터넷의 무료 검사지에서 확인한 자신의 성향에서부터 꽃, 별 등을 매개로 한 '나' 알아가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경계를 허문다.

2020년, 왜 사람들은 새삼스레 '나'를 찾는 것일까?
 
 <sbs스페셜 - 나를 찾아줘 # MBTI>

ⓒ SBS

 
16가지로 구분된 인간 유형 

1) 나는 다른 사람과 자주 어울리는가? 아니면 혼자 시간을 보내는가?
2) 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가? 아니면 상상을 즐기는 창의적인 사람인가?
3) 논리적이고 분석적인가? 아니면 감정적이고 정서적인가? 
4) 일을 함에 있어 계획적인가? 아니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을 잘 하는가?

 
여기에, 외향적(E)인지·내향적인지(I)·감각적인지(S)·직관적인지(N)·사고형인지(T)·감정에 따라 행동하는지(F)·판단형인지(J)·인식형(P)인지 등 사람의 성향을 판단하는 8가지 서로 다른 지표를 조합하여 16가지 성격 유형을 구분한다.
 
 MBTI16가지 유형

MBTI16가지 유형 ⓒ MBTI

 
MBTI의 시초는 칼 융이다. 그는 사람에겐 저마다 타고난 심리 유형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칼 융의 사상을 캐서린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가 16가지 인간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우리나라에는 30년 전 김정택 신부가 도입했다. 

자기 안의 어떤 특성이나 장점을 먼저 이해하고 수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검사도구라는 게 이를 국내에 도입한 김 신부의 취지였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자면 약간 의문이 든다. 히틀러와 간디가 같은 심리 유형이라는데 과연 맞는 이야기일까?

지난 6일 방송된 < SBS스페셜 > '나를 찾아줘 # MBTI'에 등장한 젊은 층들은 MBTI에 대해 "신기하다"·"소름 끼친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짚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요즘 시대의 명함'이라는 표현처럼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 남을 이해하는 유효한 도구가 된다고 장담한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만능'이라는 것이다. 
 
 <sbs스페셜 - 나를 찾아줘 # MBTI>

ⓒ SBS

 
세상을 보는 렌즈가 다른 사람들 

MBTI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유형을 알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즉 각자가 가진 렌즈가 다르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젊은 층은 이렇듯 MBTI가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를 만든 이사벨 마이어스는 '장벽처럼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다'고 우려를 표한다. 즉 나를 발견하는 기쁨,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동질감과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유형들에 대한 '편견'의 색안경을 끼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MBTI를 알고 나니 아무나 못 만나겠다'란 일부의 고백은 이사벨 마이어스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방송은 MBTI에 열광 젊은 층의 모습을 조명하며 이 현상을 세대론을 통해 분석한다. 이른바 MZ세대,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와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Z세대를 합친 이 세대는 살아오며 성적과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게 익숙한 이들이다. 

즉 끊임없이 '나'에 대한 자극과 질문을 받은 세대로 그만큼 자신을 납득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래서 나를 찾는 MBTI를 놀이 문화이자 트렌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했던 이 세대에 MBTI는 스스로를 찾아가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준 것이다. 
 
 <sbs스페셜 - 나를 찾아줘 # MBTI>

ⓒ SBS

 
왜 MBTI일까? 

물론 '나'를 확인해주는 도구가 MBTI만 있는 건 아니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신뢰했던 사주, 그리고 동양 사상에서 유래된 '사상체질', 그리고 MBTI에 앞서 젊은이들에게 사랑받은 '타로'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을 확인해 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온라인 무료 검사지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해 '나'를 알아가는 그 검사 방식이 사실은 진짜 MBTI가 아니라면 어떨까? 다큐 제작팀이 문의해 본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그 MBTI 검사를 만든 곳은 처음 MBTI를 만든 마이어스-브릭스 재단과는 상관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검사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자신의 인스타를 통해 MBTI의 효용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똑같은 사람이 검사를 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등 결과의 유효성 자체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최승원 교수 역시 회의적이다. 몇 개의 질문에 본인이 답을 다는 방식 자체를 심리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인구를 유형별로 나누면 한 유형당 부산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그들을 동일한 정체성으로 재단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또 다른 심리 전문가는 MBTI 검사의 결과보다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과를 나의 모든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평가하고 재단하는 기준이 아니며, 그 유형 안에 나를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큐를 이끈 '쭈니 형' 박준형씨는 MBTI를 비롯하여, 사주, 사상체질, 타로를 체험하고 모두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맞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말한다. 다큐 상에서 등장한 MBTI, 사주, 타로, 사상 체질은 박준형씨에 대해 모두 다른 정의를 내린다. 그런데 본인은 맞다고 한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즉, 박준형이라는 한 사람이 가지는 다양한 면 때문이다. 박준형이라는 사람은 MBTI로 보면 분위기를 잘 띄우는 사람이지만, 사주로 보면 또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사람이고, 타로로 보면 한 번 하기로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해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결국 MBTI는 우리가 가진 성격의 한 면을 반영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심리를 공부하며 오랜만에 MBTI 검사를 해봤다. 올 초에 한 번 해봤고, 올 중반에 다시 한 번 해봤다. 올 초에 내향이던 성격이 중반에 이르러서는 외향으로 나타났다. 가장 기본이 되는 성향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생각해보니 주변 상황이 변했다. MBTI 검사가 외향적 성격으로 나오던 시기 기자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 자신의 생각들도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MBTI가 반영한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상황·경험에 따라 변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 MBTI를 알고나면 편하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니 '결정'을 해야 되는 과정에서 덜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나'는 변한다.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나'가 변했을 수도 있다. 결국 내 스스로에 대한 답은 지표가 아닌 내가 정하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SBS스페셜 - 나를 찾아줘 # MBTI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