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남자들은 최선의 여자들과 가능한 한 자주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하지만, 제일 변변찮은 남자들은 제일 변변찮은 여자들과 그 반대로 관계를 가져야 하고, 앞의 경우의 자식들은 양육되어야 할 것이로되, 뒤의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다네. 만약에 우리의 무리가 최상급이려면 말일세.

위 인용문은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의 이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우생학이란, 출산을 통해 우수한 유전자를 퍼뜨리는 한편 열등한 유전자를 줄여나가다가, 마침내 제거되도록 조절하는 게 좋다는 사상이다. 우생학은 19세기에 창시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치 히틀러를 연상케 한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는 독일사회의 우수성이 지속되려면, 유대인 및 장애인 등 이른바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간들을 말살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할 때 우생학을 내세웠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위 인용문을 어쩌면 나치당의 슬로건으로 읽었을 수 있다. 그런데, 아니다. 철학자 플라톤(Plato)의 '말씀'이다(박종현 역주, 플라톤의 국가, 파주: 서광사, 1997, 459c).

요컨대 우생학은 양질의 유전자를 선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대변한다. 병든 유전자나 결함있는 유전형질이 인간사회에 덜 나타나도록 조절하려는 의도를 정당화한다. 우생학은 기본적으로 좋은 유전자를 지닌 인간들의 숫자가 더 많아지게 하려는 선한(?) 목적을 갖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플라톤도 강조했듯, 대부분 인간의 마음 속에는 좋은 유전자에 대한 선망의식 같은 게 있다. 부모에게 혹시 유전적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대물림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하여 '높은 아이큐, 눈코입 균형잡힌 얼굴, 날씬한 체형, 큰 키, 특별한 재능'이 들어있는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이 태어나기를 원하는 건 인지상정에 가깝다.

 
생명과학, 유전공학의 응용 DNA조작기법을 활용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설명한다.

▲ 생명과학, 유전공학의 응용 DNA조작기법을 활용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설명한다. ⓒ 넷플릭스

 
허나, 이 인지상정이 극단화되면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번질 수 있다. 어떤 특징을 가졌든 어떤 결함이 있든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모든 생명체를 유전자 품질을 기준으로 줄세워 차별하는 우생학적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부자연의 선택>은 우선 우생학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우생학을 직접 다루지 않으며, 우생학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생명과학기술 즉 DNA를 조작하거나 수정, 변경하는 기법을 인간에게 적용하자고 할 경우 우생학이 환기되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과 적정한 거리를 둔다.

다큐멘터리 <부자연의 선택>은 선천적 질병(유전자의 결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고자 애쓰는 DNA조작기법의 건전한 의도를 설명한다. 이것은 또, 유해한 곤충이나 동물들을 처리할 때 적용가능한 기술로도 강조된다. <부자연의 선택>은 각각 60분 안팎의 러닝타임을 가진 4편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유전자조작기법이 실제로 활용된 사례들을 풍부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언급하는 과학 다큐멘터리다. 
 
DNA조작기법 설명 DNA조작을 할 수 있는 기법(크리스퍼)을 개발한 과학자.

▲ DNA조작기법 설명 DNA조작을 할 수 있는 기법(크리스퍼)을 개발한 과학자. ⓒ 넷플릭스

   

<부자연의 선택>은 유전적 문제로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 소년, 감각은 있으되 움직일 수는 없는 유전병으로 고통받는 전신마비 청년이 생명과학기술의 혜택을 받기까지 겪는 지난한 과정을 상당 기간 동안 추적한다. 이들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값비싼 치료비다. 

유전적 결함을 치료할 의료기술, 다시 말해 DNA를 변형해서 병을 고치는 치료법이 쓸데없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막상 유전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뿐만이 아니다. 일명 '바이오 해커'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전통적 방식으로 과학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바이오 해커가 된 과학자 '민주적' 유전공학을 주장하는 과학자.

▲ 바이오 해커가 된 과학자 '민주적' 유전공학을 주장하는 과학자. ⓒ 넷플릭스

 

바이오 해커들은 DNA치료법이 지나치게 비싸서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민주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문제삼는다. 그들은 부자들만 유전공학 및 DNA치료법의 혜택을 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바이오 해커들은 그 같은 아이디어를 대중 앞에서 강의하거나, DNA를 조작해볼 수 있는 실험키트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부자연의 선택>은 그들 바이오 해커들이 뿔뿔이 흩어져있지 않고 서로 동등하게 정보를 주고받으며 실험을 주의깊게 진행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물론 실험을 조절하고 관리해주는 전문가 집단이 따로 없으므로 실험에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구할 데가 없다. 무엇이든 개인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DNA조작기법을 포함하여 생명과학(유전공학)의 사용에 관한 생명윤리의 문제는 최근 들어 국제회의에서 꽤 진지하게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가 되어있다. <부자연의 선택>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 중 몇 가지만 간략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방 및 치료에 늘 집중하고는 있지만,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곳 사람들은 끝나지 않는 싸움을 평생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하여, 그곳에 DNA기법이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DNA를 조작하여 말라리아를 옮기는 암컷 모기가 아예 태어나지 않도록 조절하자는 거다. 수컷 모기만 선별적으로 낳게끔 설계된 DNA를 집어넣은 모기들을 자연에 방사하면 모기들이 자유롭게(?) 짝짓기할 때 수컷 모기만 태어나게 된다는 논리다.

국제회의에서 이 방법은 처음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나의 동물종에 변형이 일어날 때 전체 지구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그 논의를 종결지었다. 결국 DNA조작기법이 허락되었고, 부르키나파소 지역에 지난해(2019년)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지구온난화로 급속히 많아진 쥐 때문에 멸종위기에 빠진 새를 구하는 방안으로 DNA조작기법을 사용하면 어떻겠느냐에 대한 찬반토론을 보여준다(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그들이 맹렬히 토론하면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나아가, '3명의 부모'들에게서 좋은 DNA만 선택적으로 뽑아 물려받은 아기를 태어나게 할 수 있음도 알려준다. 정자 혹은 난자에서 병든 DNA를 빼내고 건강한 DNA를 이식해 수정란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생모에게 미토콘드리아 모계유전병이 있어도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음). 
 
3부모(정자1+난자2) 아기가 잉태되는 원리.  미토콘드리아 모계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해 DNA조작기법을 사용하는 것.

▲ 3부모(정자1+난자2) 아기가 잉태되는 원리. 미토콘드리아 모계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해 DNA조작기법을 사용하는 것. ⓒ 넷플릭스

 

<부자연의 선택>은 곳곳에서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유전적 결함이 있는 사람에게 그 결함을 수정·변경할 수 있는 치료기법으로 DNA조작을 사용할 경우, 어느 선까지 사용해야 할까? 유전적 속성에서의 우열이 한 인간의 평생을 결정할까? 인생을 결정하는 다른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요인들은 없을까? 인간이 DNA를 자유롭게 다룬다면 얼마나 ○○까? (○○에 '좋을'을 넣어야 할지, '나쁠'을 넣어야 할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하여 <부자연의 선택>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여러 가지 입장과 의견을 들려주고 보여줄 뿐이다. 수능시험이나 공무원시험처럼 답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골똘히 생각하며 진지하게 추구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출제해둔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부자연의 선택>을 보며 같이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호모 사피엔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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