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제>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

영화 <조제>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혹시 일본 영화를 한국에서 리메이크 할 수 있나요? <러브 레터>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 둘 중에 꼭 하나만 고른다면 무엇을 고르실 겁니까?"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6년 전의 질문이 김종관 감독 뇌리에 남았다. 한국에서 사랑받은 일본영화 이야길 하다가 일본 영화 제작사 관계자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너무 완벽한 영화라 리메이크 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둘 중 꼭 하날 하라고 한다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입니다"라고 답했던 김 감독의 말이 현실이 됐다. 2003년 국내 개봉해 7만 여 명의 관객을 모은 이 영화가 17년이 지나 다른 결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원작이 지닌 사람을 향한 깊은 시선이 좋았다"며 김종관 감독은 "일본영화의 원작이 됐던 소설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름의 제 방식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지금의 영화 배경이 된 공간과 배우들을 만나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목포 바다에 인접한 한 동네가 등장하게 됐고 배우 한지민과 남주혁이 각각 조제와 영석을 맡아 영화로 걸어들어왔다.
 
사람의 결이 보이는 이야기
 
원작 속 캐릭터보다 나이대도 올라갔고, 무엇보다 조제가 30대로 등장한다. 그런 조제에게 끌리게 되는 영석은 20대 취준생이다. 원작처럼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이별도 하지만 그 원인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두 사람의 달라진 내면을 주변 인물과 바뀐 공간으로 보여준다. 원작과 꽤 다른 길을 선택한 셈이다.
 
"원작의 플롯을 복사하듯 가져와서 찍는 건 창작자로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 정서를 한국 배우가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표현하면 어색할 것 같았다. 처음엔 캐릭터 연령대를 원작과 비슷하게 가긴 했다. 남주혁씨가 먼저 캐스팅 됐고, 조제 역을 고민하는데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나오는 한지민씨를 봤다. 문득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캐스팅이 들어오면서 설정을 생각했다. 또래 이야기 보단 터울이 좀 있는 사이에서 주는 느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립된 곳에서 30년을 산 조제를 약하지만 강하기도, 쓸쓸하지만 강인한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 너무 조제를 밝게 그린다면 조제가 의존적 사람으로 비춰질 것 같더라. 그래서 지금의 분위기가 나왔다."


무엇보다 감독에겐 원작 자체가 하나의 부담이자 도전이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19 재확산까지 되면서 외부 상황까지 걱정하게 됐다. 하지만 적어도 적어도 작품을 만들 때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더 집중했고, 최선을 다했음을 감독은 강조했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 저예산 독립영화를 밀도 있게 찍은 경험 또한 도움이 됐다고 한다.
 
"외적 조건이 제게 불리한 걸 따지지 않고 창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뭐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었기에 밀고 나간 면이 있다. 두렵긴 하지. 제게 중요했던 원작인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럴 텐데 지금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걸 알아주실까 두려움이 있었다. 현재 시점에서의 해석이 필요하니 시나리오 쓸 때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원작에서 느낀 감정을 품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제가 겪은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갔다. 제목에서 호랑이와 물고기가 빠진 이유도 뭔가 그 제목을 다 가지고 오는 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좀 더 조제에 집중하는 쪽으로 제목을 두고자 했다."
 
 
'조제' 코로나19로 기자간담회 없이 시사회만 남주혁, 한지민 배우와 김종관 감독이 2일 오후 열린 영화 <조제>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날 시사회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지침에 따라 기자간담회는 진행되지 않았다. <조제>는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조제와 그여자의 세계에 들어온 영석이 함께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12월 10일 개봉.

▲ '조제' 코로나19로 기자간담회 없이 시사회만 남주혁, 한지민 배우와 김종관 감독이 2일 오후 열린 영화 <조제>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날 시사회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지침에 따라 기자간담회는 진행되지 않았다. <조제>는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조제와 그여자의 세계에 들어온 영석이 함께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12월 10일 개봉.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감독의 상상력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두 남녀가 사랑하고 이별함에도 <조제>는 감정적 파고가 높지 않다. 오히려 잔잔하면서도 느리게 두 사람과 주변 환경을 보여줄 뿐이다. 카메라에 담기는 각종 공간이 심도와 초점을 바뀌어 갈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고 또 흐려진다. 두 남녀 주인공 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 또한 제법 주요하게 등장한다. 모든 게 감독의 의도였다. 이 역시 원작과는 다른 선택이다.
 
"전작은 대부분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찍었다. 모처럼 멀리 다녔다. 먼 나라도 가보고(웃음).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잡은 건 조제가 사는 집이 마당이 있는데 서울에서 그런 집은 비싸다. 그리고 인적 없는 소도시, 골목, 헌책방 등에서 쓸쓸한 변화가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미술과 소품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저 역시 가난에 대한 기억이 있고, 영화에서 조제 만큼 조제의 집이 되게 중요하기에 제 기억에 있는 가난, 유년시절 봤던 도구를 많이 채집해 놓았다. 관객들이 그 공간의 사실성과 함께 낭만도 느껴야 하기에 그렇다.
 
조제는 책을 많이 읽고 외부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는 인물이다. 원작 소설에서도 상상과 현실 그 경계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잖나. 조제의 상상을 영석이가 또 자연스럽게 받아준다. 조제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놓은 인물이라면 영석은 빛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제는 영석을 만나며 변하지만 영석은 자기 주변 사람을 만나며 변한다. 대학 교수라든지, 후배라든지. 영화에 등장하는 주변인물은 그렇게 영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캐릭터여야 했다."

 
스스로의 속박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 그리고 자신이 누군지 모르다 어느덧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 가는 사람. <조제>는 단순히 남녀의 로맨스를 넘어 그 지점을 건드리고 있었다. 영화가 애써 이별의 이유와 그 상처를 묘사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영화 <조제>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

영화 <조제>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원작처럼 사랑과 이별을 다루지만 사랑을 쌓는 과정을 마치 작은 돌을 계속 놓다가 큰 덩어리가 되듯 그런 감정을 만들고 싶었다. 이별 묘사는 고민이 많았다. 원작엔 상대에 대한 연민과 사랑도 있고, 이기심에서 갈팡질팡 하는 시선이 너무 좋았는데 이 영화 속 이별엔 왜가 없다. 의도한 거다. 우리가 겪는 이별엔 수많은 왜가 있지만 왜가 없기도 하거든. 이별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기 보단 이 영화를 보고난 다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속절없는 세계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서로를 아끼게 되고 소통하면서 조제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영석은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게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사랑에 빠지는 건 찰나잖나. 부지불식간이거든. 큰 서사가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한다. 다들 사랑에 빠져봤으니 말이다. 이별도 그렇다. 다양한 이별이 있잖나. 지금의 열린 설정은 이별에 대한 보편적 기억을 오히려 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조제>는 올해 1월 촬영을 마쳤다. 그러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을 맞았고, 이 영화를 투자배급하는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한국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감독 입장에선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개봉을 앞둔 그는 "이런 시기에서도 관객분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여러 고민이 든다"며 말을 이었다.
 
"멜로를 대중 영화로 하는데 시장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시기적 고민도 있다. 어쨌든 수년간 공이 들어가고 많은 사람의 땀이 들어간 영화니까 열정을 줬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보답을 받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내용이잖나.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게 지금 이 순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간들이 지나 저 역시 다시 책상에 앉아 다른 창작의 시간을 갖고 상상하며 지낼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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