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16> 포스터

<레벨 16> 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레벨 16>은 올해 초 개봉한 <더 플랫폼> 이후 다시 한번 아이디어의 신선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공간 설정과 이를 활용하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더 플랫폼>이 랜덤으로 층이 바뀌는 수직 감옥을 통해 사회가 지닌 계층의 문제를 말했다면, <레벨 16>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기숙사 학교 베스탈리스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복종을 말한다.

베스탈리스의 구조는 회색의 벽과 수많은 문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에는 창문이 없어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학생들은 총 16단계에 따른 교육을 받는다. 각 단계마다 네 개의 반으로 구성되며, 단계가 올라가면 반이 달라진다. 반이 달라지면 공간이 나뉘기에 서로 만날 수 없다. 같은 반 학생들은 공통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숙소에서 잠을 잔다. 모든 문은 잠겨 있고, 밤이 되면 숙소의 문도 안에서는 열 수 없다.
 
 <레벨 16> 스틸컷

<레벨 16>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이곳에서 지내는 소녀들이 교육받는 내용은 복종, 충성심, 인내, 청결이다. 비비안을 비롯한 소녀들의 목적은 모든 교육을 완수하고 '레벨 16'을 지나 좋은 집안으로 입양을 가는 것이다. 유일한 교사 미스 브릭실은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한다. 학생들은 성실하게 수업에 임해야만 가족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그 강압적인 수업을 견딘다. 학생들은 CCTV의 감시를 받는다.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경비원이 나타나 벌을 준다.

수업이 TV로만 진행된다는 점은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여 세뇌하기 위한 목적이다. TV를 흔히 바보상자라 말하는 이유는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의심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화씨 451>이 그린 독재 세상이 책을 불태우고 TV를 필수로 시청하게 만드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비비안을 비롯한 소녀들은 레벨 16 때까지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글을 읽지 못한다.

소녀들에게 가해지는 교육은 중세 유럽의 신부수업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여성에게 중요했던 건 남편을 위한 헌신이었다. 미스 브릭스와 이곳의 운영자인 닥터 미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여성스럽게'다. 여성은 항상 용모가 깨끗하고 단정해야 하며 남의 말에 토를 달지 말아야 한다. 힘겨운 환경에서도 군말 없이 참고 인내해야 하며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게 이곳의 교육 내용이다.
 
 <레벨 16> 스틸컷

<레벨 16>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학생들이 이러한 강압적인 교육에 반항하지 못하는 건 다들 가족을 원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를 사귈 수도 없다. 이곳의 교육은 규칙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 수 없는 환경이다. 남을 도와주면 자신이 손해를 보고, 단계가 지나면 반이 바뀌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유년 시절 비비안은 소피아를 도와주다가 벌을 받았다. 이때의 아픈 기억으로 냉철해진 비비안은 다시 만난 소피아 앞에서 차갑게 행동한다.

레벨 16에서 다시 비비안을 만난 소피아는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곳의 목적이 입양이 아닌 다른 것이며 그녀들이 받는 교육에 위험한 음모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소피아가 이를 알게 된 건 다른 소녀들과 다른 사유를 지녔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왜 자신들에게 가족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그저 가족을 만나는 게 '레벨 16' 이후의 목적이라 배워왔기 때문에 꼭 가져야 한다 생각하는 것이다.

소피아를 통해 비비안은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왜 자신들이 이런 억압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며 베스탈리스란 공간이 지닌 의문을 풀어나간다. 교육내용은 중세, CCTV 등의 설정은 현대, 독특한 공간설정은 미래의 느낌을 보여주면서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을 특정 시대에 한정짓지 않는다. 이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이 특정 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레벨 16> 스틸컷

<레벨 16>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독특한 공간설정을 바탕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스릴러의 면모를 선보이는 이 영화는 <스텝포드 와이브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작품은 스텝포드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남편들이 그 아내들을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로봇으로 만든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다룬 컬트영화다. 주제의식에 있어 완벽한 일치를 이루지는 않지만 여성을 사회적 기준에 맞춰 바꾸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섬뜩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후반부가 초반의 설정만큼의 흥미를 내지 못한다는 점과 다소 바람이 빠지게 만드는 음모의 정체는 극이 지닌 긴장감을 생각했을 때 만족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밀폐된 장소를 통해 심리적인 긴장감을 끌어올렸으나 그 간극을 채울 만한 내용적인 알맹이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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