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국영과 유덕화, 장학우 등 홍콩스타들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에서도 90년대 잘나가는 청춘 스타들의 음반 발표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차인표, 이병헌, 이종원, 이휘재(심지어 2집까지 나왔다) 등 대부분의 청춘 스타들은 감추고 싶은 흑역사만 남긴 채 가수로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모든 청춘스타들이 가수로서 쓴 맛을 본 것은 아니다. 김민종은 90년대 가수와 배우로 모두 정상급의 인기를 누렸고 손지창 역시 가수겸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94년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면서 드라마 수록곡 <사랑하고 있다는 걸>을 크게 히트시켰다. 배우로는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가수 데뷔곡 <너 하나만을 위해>로 <가요톱텐>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꺼벙이' 구본승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성 배우들에게 가수도전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채시라와 고현정 등이 리즈 시절 시낭송 앨범을 발표했지만 기념앨범 이상의 반응은 일으키지 못했다(엄정화는 처음부터 가수 겸 배우로 데뷔했기 때문에 예외). 하지만 이 길었던 여성배우 앨범 징크스를 한 방에 날려 버린 배우 출신 가수가 20세기가 끝날 무렵 혜성처럼 등장했다. 바로 새천년을 앞두고 대한민국을 테크노 열풍에 빠트린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이 그 주인공이다.

범상치 않은 연기로 데뷔한 여고생 배우 이정현
 
 1999년 이정현의 가수데뷔는 1996년 배우로 데뷔했을 때만큼 파격적이었다.

1999년 이정현의 가수데뷔는 1996년 배우로 데뷔했을 때만큼 파격적이었다. ⓒ 한국음반산업협회

 
90년대 초·중반 장선우 감독은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 독창적인 시각의 작품을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1994년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통해 정선경이라는 걸출한 신인 배우를 발굴한 장선우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파격적으로 신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정현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장선우 감독의 신작 <꽃잎>의 주인공에 캐스팅됐다. 이정현은 <꽃잎>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계엄군의 총에 맞은 엄마가 내민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비극적인 운명의 '소녀(극 중 이름조차 안 나온다)' 역을 맡아 엄청난 열연을 펼쳤다. 이정현은 <꽃잎>을 통해 청룡상, 대종상을 비롯한 수 많은 영화제의 신인 여우상을 휩쓸었다.

이정현은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음악토크쇼 <이문세쇼>에 출연해 넘치는 끼를 발휘하기도 했다.영화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난 후 진행자 이문세는 이정현에게 노래를 청했는데 이정현은 여성배우의 '품위' 따위는 버린 채 작은 몸을 이끌고 성큼성큼 무대로 걸어 나와 엄청난 샤우팅을 선보이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불렀다.

이후 이정현은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 드라마 <일곱 개의 숟가락>, <야망의 전설>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활동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강렬했던 데뷔작의 깊은 인상에 비하면 배우로서 이정현의 행보는 다소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평범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이정현이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 계기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이정현은 1999년 3월 구피 3집에 수록된 <게임의 법칙> 뮤직비디오에서 보컬 이승광의 대역으로 출연해 현란한 춤과 립싱크를 선보였고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참여한 <하나 되어>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조PD 2집 타이틀곡< Fever >의 피처링을 맡아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로 후렴구를 책임졌다.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끼만 있는 줄 알았던 배우 이정현이 생각보다 노래도 잘한다는 느낌을 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대중들이 이정현의 새로운 재능과 끼에 놀라는 사이 이정현은 가수로 데뷔하기 위한 솔로 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1999년 10월, 새천년을 불과 3개월 밖에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본인이 출연했던 영화 <꽃잎>을 능가하는 충격적인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20세기의 마지막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가수 이정현'이 대중들에게 등장한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을 테크노로 물들였던 이정현
  
처음 이정현이 앨범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또 한 명의 배우가 가요계에 슬쩍 발을 담갔구나'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정현 이전에도 채정안 등 배우들의 앨범 발표가 비교적 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테크노 음악에 국악기 아쟁의 소리를 접목시킨 이정현의 데뷔곡 <와>는 신나는 음악과 독한 가사, 그리고 이정현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맞물려 발표와 동시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앨범 자켓 모양을 딴 커다란 외눈박이 부채와 새끼손가락에 연결된 초소형 마이크는 순식간에 이정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물론 실제로 이정현은 손가락 마이크를 끼고 대부분의 무대를 립싱크로 소화했다). 

사실 테크노 댄스는 국내에서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장르였다. 이미 채정안의 <무정>과 고 유채영의 < Emotion >, 백지영의 <부담>등을 통해 대중들은 테크노 댄스에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이정현은 <와>를 통해 다른 가수들의 테크노 댄스곡들을 전부 삼켜 버렸다. 그만큼 이정현이 무대에서 보여준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이정현은 <와>를 통해 KBS <뮤직뱅크> 3주 연속 1위, SBS <인기가요>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배우 출신 가수'라는 수식어를 완전히 떼어냈다(이정현은 생애 첫 지상파 1위가 결정되던 날, 앙코르곡을 부르면서 무대에서 관객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강렬한 컨셉트와 무대의상 덕분에 새천년을 상징하는 여전사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희망찬 새천년이 시작되자 이정현은 활동곡을 <와>에서 <바꿔>로 변경했다. <바꿔>는 가사를 쓴 최준영이나 노래를 부른 이정현 모두 녹음 당시엔 배신을 당한 여자의 슬픈 사랑이야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강렬한 제목과 가사, 그리고 무대에서 보여준 이정현의 폭발적인 무대매너 때문에 <바꿔>는 상당히 반항적인 노래로 변질(?)되고 말았다. 특히 <바꿔>는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국회의원 후보들의 홍보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앨범의 시작과 반환점, 끝을 알리는 <– 00001>, <-00001.5>, <-00002>는 이정현이 직접 작사에 참여했다. 여기선 뜬금없이 이정현의 이탈리아어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다. 이탈리아어 혹은 이탈리아와 뭔가 특별한 사연이나 이유가 있을 거 같지만 단순히 여러 언어 중 이탈리아어 발음이 이정현에게 예쁘게 들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3번트랙 < Bird >는 이정현과 함께 < Fever >를 작업했던 조PD의 곡이다. 조PD 특유의 시크한 감성이 가사에 잘 녹아 있지만 희망을 찾아 떠나겠다는 노래의 주제는 2집 <평화>와 연결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 I Love X >는 조PD와 이정현, 그리고 정식 데뷔를 하기 전 '월드스타' 싸이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매우 진귀한 곡이다. 물론 다소 파격적인 가사 때문에 방송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정현 1집은 53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는 이정현의 역대 앨범 중 가장 높은 판매기록이자 1999년에 발매된 여성 솔로 가수의 앨범 가운데 최다 판매량 기록이었다. 이정현은 늦가을인 10월에 앨범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세기말 각 방송국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간단하게 말해 20세기의 마지막 2~3달 동안 대한민국의 가요계는 이정현이 지배했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앨범마다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는 퍼포먼스의 여왕
 
 이정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반도>는 코로나 정국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38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정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반도>는 코로나 정국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380만 관객을 동원했다. ⓒ (주)NEW

 
비록 1집만큼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가수로서 이정현의 전성기는 계속 이어졌다. 2집에서는 이집트공주로 변신한 타이틀곡 <너>에 이어 바비인형 컨셉트의 귀여운 러브송 <줄래>를 히트시켰고 3집 <미쳐>에서는 여성 마술사로 변신하기도 했다.

이정현은 3집의 후속곡이었던 <반>까지 인기 여가수의 위엄을 유지했지만 4집 <아리아리>부터 조금씩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정현은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테크노 여전사'라는 대중들에게 익숙하고 검증된 이미지에 묶이지 않고 야성녀, 라틴 댄서 등으로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며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정현은 가수 활동 외에도 배우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11년에는 '거장'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했고 2014년에는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 <명량>을 통해 '1700만 배우'로 등극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무대에서의 강렬한 눈빛연기와 다양한 퍼포먼스 역시 이정현의 뛰어난 연기가 바탕이 된 것이다. 

사실 이정현은 전성기 시절 무대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 적이 많지 않았다. 독특한 음색을 가진 이정현이 보컬리스트로서 썩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정현은 스스로 '보컬리스트'보다는 '엔터테이너'와 '퍼포머'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언제나 독보적인 무대 장악력과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대중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이정현은 무대에서 립싱크를 한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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