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영화 포스터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영화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메라비(레반 겔바키아니 분)는 여자친구 마리(아나 자바히슈빌리 분)와 함께 어릴 적부터 보수적이고 엄격한 조지아 국립무용단의 댄서로 경력을 쌓았다. 어느 날, 섬세하고 우아한 춤을 추는 메라비와 달리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넘치는 이라클리(바치 발리시빌리 분)가 무용단에 나타나며 둘은 경쟁에 놓인다. 본부에서 한 사람을 뽑는 오디션을 앞두고 메라비와 이라클리의 관계는 선의의 경쟁자에서 우정을 나누는 친구,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변한다.

영화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춤이 인생의 전부였던 국립무용단 단원 메라비가 갑자기 나타난 경쟁자 이라클리로 인해 감정의 파고를 겪으며 마침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담을 그린다. 연출은 스웨덴의 촉망 받는 시네아스트로 떠오르고 있는 레반 아킨 감독이 맡았다. 

조지아 출신의 스웨덴 사람인 레반 아킨 감독은 "2013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프라이드 퍼레이드(성소수자들의 권리 인정을 위한 행진)'를 벌이던 용감한 사람들이 조지아 정교회가 조직한 수천 명의 군중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이 주제에 대해 뭔가 만들어야겠다는 결심했다"고 작품의 출발점을 설명한다. 

처음엔 다큐멘터리로 만들 요량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지만, 만났던 성소수자들이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걸 원치 않아 극영화 형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극영화의 형식을 가졌으나 영화의 모든 것은 실제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다고 감독은 부연한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영화의 한 장면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영화의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바뀐 춤의 의미

춤과 성소수자를 소재로 삼은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캐릭터와 전개는 조금 상투적이다. 춤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사회적 분위기로 연결한 구성은 <빌리 엘리어트>(2001)의 영향을 받았다. 두 남자의 만남과 사랑, 헤어짐의 화법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독창성은 전통을 강조하고 종교를 중요시하는 국가 조지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과 서유럽에선 성소수자를 대중문화에서 다루는 것이 낯설지 않지만, 조지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는 성소수자 문제를 여전히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보통 춤은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라 일컫는다. 반면에 조지아에선 교회, 전통 노래, 전통적인 국가 무용을 국가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엔 "우리 춤은 완벽함이 전부가 아니라 나라의 혼을 담아야 해"란 대사까지 나올 정도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첫 장면엔 조지아의 전통 무용을 담은 영상이 나온다. 이후 "처음부터 다시"라는 외침이 들린다. 마치 복종하라는 듯이 말이다. 선생은 남성인 메라비에겐 힘을, 여성인 마리에겐 처녀의 순수함을 보여주길 원한다. 또한, 조지아 무용엔 섹시함이 없다고 말한다. 개인의 욕망을 표현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영화의 한 장면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영화의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메라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과 주변의 만류로 때론 좌절하나 열심히 춤을 연습하며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형태의 댄서, 아들, 남자친구, 시민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에게 춤은 표현 수단이기 보단 국가와 사회가 주입한 억압과 통제 기제에 가깝다. 그런데 이라클리가 등장하면서 메라비는 춤으로 기쁨, 좌절, 사랑, 아픔 등 감정의 희로애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춤의 의미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성소수자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제작부터 상영까지 줄곧 어려움을 겪었다. 제작 중에는 영화의 메시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살해 위협 등으로 세트장 내 경호원이 있을 정도였다. 트리빌시 국립 발레단을 비롯한 기타 국립 무용 발레단은 '조지아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촬영에 협조하지 않았다. 개봉할 당시엔 극우 세력과 조지아 교회 사람들의 극심한 개봉 반대 시위에 부딪히기도 했다.

레반 아킨 감독은 "이 영화를 사랑으로 만들었다"며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기존의 전통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그는 국가와 사회의 통제와 억압에 굴하지 않고 꿈과 사랑, 자유를 향해 도전적으로 달려가는 청춘들을 통해 보수적이며 경직된 조지아 사회에 '변화'란 화두를 던졌다. 영화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이끌고 토론의 장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제72회 칸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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